평론을 하고 싶다면 말부터 똑바로

오랫만에 GQ 를 한번 읽어보다가 다시 실망했다. 날이 갈수록 망가져 가는 것을 보는 기분이다. 신제품(TECH & GEAR) 소개야 예전부터 엉망이었지만, 그나마 GQ가 자랑할 수 있었던 비평(CRITIQUES)들마저 망가져 가는 모습을 보는 마음이란. 그 가운데 대중음악 평론가 최세희씨가 쓴 엄정화 음반 리뷰는 좀 지독했다. 글의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별로 길지도 않은 글이 나쁜 문장으로 가득하다. 중간부터의 전문을 인용해 본다.

그러나 청취의 측면에서 본 앨범 <Prestige>는 마돈나의 코스프레 이상의 의미를 획득한다. 훵크와 테크노로 업그레이드한 복고 디스코 사운드부터, 균일하게 디지털라이징한 엄정화의 목소리는 마돈나에 필적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데뷔시절인 ‘눈동자(1993)’를 부르던 때와의 새로운 재회를 꾀한 인상이 짙다. 회고의 맛은 적당히 키치적이면서 적당히 세련되다. 곡 하나 하나의 ‘듣는 재미’에 주력한 송라이팅도 좋다. 그런 가운데 14년에 달하는 자신의 역사 안에서 트렌드를 경유하려는 한 중견 가수의 성실함이 느껴진다.

여러모로 스탠더드를 넘지는 못하지만, 아이러니나 냉소에 섣부르게 기대는 법 없이 이렇게 레트로와 댄스의 원칙에 충실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그 충실함이 내적 완결성을 가지는 데 미흡하다는 점은 아쉽다. 지누의 송라이팅은 결정적 공로에도 불구하고 가끔 치명적으로 불거진다. 가령 ‘거칠게, 로멘틱하게’의 가사는 <처녀들의 저녁식사>처럼 형식보다 어젠더가 앞서 있고, 엄정화의 노래 역시 하기 싫은 역을 맡은 배우처럼 불편하게만 들린다. ‘바람의 노래’는 급하게 조원선(롤러코스터)의 옷을 빌려입은 양, 엄정화 고유의 페르소나를 흐린다. 자고로 뚝심있는 프로페셔널리즘이 대가(大家)를 만든다.

– 월간 GQ 2006년 12월호, 음악신보비평에서

넘치는 한자투의 말투, 쓸데없이 남발하는 영어단어들, 맞지 않게 선택된 단어들, 뭐라고 말하는 지 알 수가 없는 문장. 글이 되지 않은 글을 실은 용기가 대단하다고 GQ를 칭찬해 줘야 하는 걸까. .. 이 글을 편집해 실은 기자는, 이런 글을 읽게 만드는 것 자체가 읽는 사람에 대한 모욕이라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 검색해보니 이글루스에 블로그가 있다고 나온다. 트랙백이라도 걸려고 찾아갔더니 없는 블로그로 변해있었다. 혹시라도 최세희씨가 단지 블로그 주소를 바꿨을 뿐이라면, 그리고 이 글에 기분이 나쁘다면 트랙백이라도 걸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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