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1등 같은 것은 싫은데
앉아서 공부만 하는 그런 학생은 싫은데
난 꿈이 따로 있는데,
난 친구가 필요한데난 인간인데
난 친구를 좋아할 수도 있고
헤어짐에 울 수도 있는 사람인데
모순, 모순, 모순이다
경쟁! 경쟁! 공부 공부
순수한 공부를 위해서 하는 공부가 아닌
멋들어진 사각모를 위해
잘나지도 않은 졸업장이라는 쪽지하나 타서
고개들고 다니려고 하는 공부공부만 해서 행복한 건 아니잖아!
공부만 한다고 잘난 것도 아니잖아!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해 이 사회에 봉사하고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면 그것이 보람있고 행복한 거잖아
꼭 돈 벌고 명예가 많은 것이 행복한 게 아니잖아
나만 그렇게 살면 뭘해난 로보트도 아니고 인형도 아니고
돌맹이처럼 감정이 없는 물건도 아니다
밟히다 밟히다, 내 소중한 삶의 인생관이나
가치관까지 밟혀 버릴땐
난 그 이상 참지 못하고 이렇게 떤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1986년 1월 15일 새벽, 15살의 한 소녀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1월 22일, 각 일간지에는 그 소녀의 유서가 실렸다. 전교 1등이었던 그 소녀가 남긴 유서는 ‘난 1등 같은 것은 싫은데..’로 시작하고 있었다. 그때의 충격은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공부 잘하는 아이까지 죽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이 나라 교육이 얼마나 썩었는지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이 어린 아이들을 죽음으로까지 몰고가는, 경쟁이란 이름하에 외로움의 극단까지 몰고가는 이 사회에 대한 경종. 그때 청소년 자살자의 숫자는 1년에 110명이었다. 아마, 전교조를 결성해야겠다고 선생님들이 세상에 쏟아져 나왔던 것도 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어느덧 20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 O양의 친구였던 이들이 어느덧 부모가 될 나이가 되었다. 그렇지만 세상은 그리 좋아지지 않았다. 2004년 통계청의 집계에 따르면, 10~19세 청소년의 자살수는 246명(15세 이상 205명)이다. 아이들의 숫자는 줄었는데 죽어가는 아이들은 두배로 늘어났다. 경찰은 이를 가정불화나 자살사이트의 탓으로 돌리지만, 근본적으론 스트레스를 강요하는 이 사회에 문제가 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
…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들에게 관심을 쏟지 않는다. 부모들의 비뚤어진 욕망은 아이들에게 투영되고, 세상의 삐뚤어진 기준으로 아이들을 일렬로 줄세우려고 한다. 청소년들의 교육 문제를 다루면서도 그들이 얼마나 힘들어할지, 외로워할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도 사람인데, 사람이 아닌 우량종으로 키워져야 하는 가축 취급을 받는다.
얼마전 중학교에서는 일제 고사가 치뤄졌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초등학생들에게 일제 고사가 치뤄진다. 치뤄진 결과는 전국적으로 등수가 매겨져 아이들에게 통보가 된다. 이에 반대해 한 교사는 일제고사 답안지 제출의 결정권을 학생들에게 줬다.””너희들에게 일렬로 줄 세워진 성적표를 나눠주고 싶지 않다. 사회 과목에 한해서만 선생님이 직접 채점해 주겠다. 석차를 알고 싶은 학생은 제출하라.” 라고 말하며.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전교조 교사의 탈선은 학부모가 바로 잡“아야 한다고 사설에서 주장하며, “학부모가 전교조를 손보는 수밖에 없다”고 권유한다. 모든 것을 전교조라서 그랬다고 어깃장 놓으며 몰고가는 어리석음은 이제 지적하기도 지치니 그만하기로 하자. 하지만, 교사를 학부모가 손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 어이없는 선동짓에는, 정말 신물이 날 지경이다. 조선일보가 사교육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를 줄 안다고 생각하나 보다. 그러니까 제발, 니네는 언론인 척 좀 하지 마라.
“시험 점수나 등수 때문에/ 자신이 바보라는 걸 깨닫게 된 건/ 정말 처음이라던 혜영이” 때문에 쓰린 가슴을 부여잡았던, 정영상 시인이 죽은지도 벌써 15년이 되간다. 대통령 하나 바뀌었다고 세상 모든 것이 자기들 것인양 장난치는 데에는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얼마나 더 많이 죽어야 세상이 변할까. 정말 고등학생들이 스크럼짜고 거리로 뛰쳐나오기라도 해야하는 걸까. 얼마나 더 많이 방황하고 학교를 떠나야 세상이 변할까. 그 아이들 가슴에 못을 박으며, 잘난 엘리트들 몇몇 더 키우면 그게 좋은 세상일까. 꼭 그래야만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