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태안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촛불시위 자리에 있다가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도중, 태평로 삼성 본사 앞을 지나게 되었다. 어두운 밤거리, 누군가가 쓰러져 있었다. 아픈 사람인가-하고 가까이 다가가는데, 왠걸,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다. 처음엔 굉장히 특이한 노숙자인줄 알았는데, 주위를 살펴보니 그게 아니다. … 몰랐는데, 삼성에 의한 서해안 기름 유출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단식 농성에 돌입하신 분이었다.

단식 농성 5일째라는 팻말과 함께, 차가운 바닥에 담요 한 장 깔고 누워계셨다. 이건 알려야할 일이다-싶어서 사진을 찍는데, 본관 앞에 있는 사람이 와서 사진 찍으면 안된다고 말을 한다. … 어쩌면 이 분의 인권이 침해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더 셔터를 누르지 않았다.


조금 지나가니, 태안군민들이 걸어 놓은 다른 안내판이 보인다. 이거라도 찍어가야 겠다-생각하며 사진을 찍는데, 아까 사진 찍기를 말렸던 사람이 다시 와서 사진 찍으면 안된다고 한다. 가만 보니 경비업체에서 나온 모습이다. 사람도 아니고 선전물 찍는데 뭐가 문제냐-라고 했더니, 배경에 삼성 본관 건물이 나오기 때문에 안된다고 한다.

컥, 하고 어이가 없어져 버렸다. 이제 보니 사람 걱정해서 사진을 못찍게 했던 것이 아니라, 삼성 앞에서 농성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알려지는 것이 싫었던 거다. 나도 모르게 소리 질러 버렸다. 지금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배경으로 누구나 삼성 건물임을 인지할 수 있다면 모를까, 입간판 배경 정도에 나오는 건물 모습 가지고 무슨 상관이냐고.

며칠전 시청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한 시민이 자유발언대에 뛰어들어서 조금 소란이 났던 적이 있다. 그 시민은, 태안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삼성은 아직 한번도 사과한 적이 없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뛰어들었다고 했다. 사회자가 대신 전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맞아, 아직 끝나지 않았었지-하고 생각했는데, 아뿔싸, 삼성 본관 앞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집에 들어와 살펴보니, 조선일보와 민중의소리 두 군데에서 작성된 기사가 보인다. 광우병 관련 시위가 이명박 정권 퇴진 시위로 변하고 있는 요즘, 본의 아니게 이들은 소외받고 있었다. 촛불문화제에 오셔서 사태를 알리는 팜플렛이라도 한번 돌리셨으면 좋았을련만…. 그래, 태안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하나만 보지 말고, 자분자분, 자신의 주변을 살피면서 가야할 때다.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지만, 가끔 관심을 가져야만 할 것엔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혹시라도 촛불 시위가 끝나고 택시 타러 이 앞을 지나갈 사람들이 있다면, 아니, 평소에라도 태평로 삼성 본관앞을 지나쳐갈 사람들이 있다면, 이 분들을 외면하지 않아주길 바란다. 그리고 이 분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알려주길 바란다.

어차피 세상은, 누가 무엇을 말하는 가보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메아리치게 하는 가가 더 중요한 시기로 이미 접어들었다. 이 분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긴다면, 그 사진이 다시 당신의 블로그와 미니홈피와 게시판에 담긴다면,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순 없다고 해도, 응원은 충분히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 삼성에 대한 불매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처럼, 태안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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