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스티로폼. 그게 바로 민주주의 입니다.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작가의 전작 ‘은과 금’을 보면, 한 부패한 정치가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나옵니다.

…그래, 확실히 민주주의는 너무 느리단 말이지.

어제 제가, 광화문앞에서 있었던, “스티로폼 산성 쌓기” 퍼포먼스(?)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느낀 것도, 딱 이런 기분입니다. 물론, 부패 정치가의 입장-_-에서 느낀 것은 아니지만… 🙂

예, 민주주의는 너무 느립니다. 사공도 너무 많고, 단번에 딱딱 결정되어 흘러가지도 않습니다. 헛 것 같은 논쟁에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온 결과는 그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는, 대충 중간쯤에서 합의한 모습으로 나오는 것도 비일비재합니다. … 하지만, 그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지루하고 따분해 보이는 그 과정이 바로, 우리가 그렇게 원하는 민주주의입니다.

사실 어제 명박산성에 처음 접근했을 때에는, ‘인권단체 연석회의’분들과 ‘다음 아고라 비폭력 대책위(? 가칭)’ 분들이 평화롭게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평온스럽고, 그냥 다들 관광지에 놀러와 기념 사진 찍는 분위기였답니다. 속담 그대로 ‘하룻밤에 컨테이너장성을 쌓은’ 장관을 구경하는.


▲ 다음 아고라에서 나오신 분들


▲ 인권단체 연석회의에서 나오신 분들

스티로폼을 둘러싼 논쟁의 시작

하지만 분위기는, 서대문쪽으로 잠깐 행진을 하고 돌아온 사이에 많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kyoko님이 스티로폼을 가지고 오시면서, 다음 아고라 분들과 논쟁이 붙었고, 그 과정에 인권단체 연석회의 분들이 끼어들어 중재를 시키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아래 동영상은 초기에 진행되었던 토론입니다. 인권단체 연석회의분(이분 중간까지 계속 사회보셨죠?)의 사태에 대한 간략한 정리와, 아고라에서 나오신 듯한 분의 주장이 담겨 있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인권단체연석회의에 계신 분들은 기본적으로 ‘스티로폼을 쌓아야 한다’라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밑의 동영상은 스티로폼을 가져오셨다는 분과, 그에 대한 한 학생의 반대 발언입니다. … 저도 이 분 발언 듣고 스티로폼을 이 분이 가져오셨나? 했는데- kyoko님 글 읽어보니 이 분은 ‘옮겨오는’ 일을 함께 하셨던 모양입니다.

공식적인 토론(?)장밖에는, 스티로폼을 둘러싼 아고라 분들과 다른 분들의 조금 쎈 논쟁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여기는 ‘스티로폼을 쌓자’와 ‘쌓으면 위험하다’라는 분들 사이에서 조금 소란스러운 분위기였는데, 어느 순간 그럼 ‘3M 정도 떨어진 곳에다 쌓자’로 정리가 됐습니다. … 그래서 3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옮겼는데, 한 아저씨가 강하게-_-;;; 안된다고 반대하시고(이 분은 얘기가 안통하는 타입), 다른 한 분(아마도 kyoko님?)은 단을 쌓으려면 스티로폼이 더 필요하다-라는 이야기에 그럼 가져오겠다고 휙-달려나가신 상태….

한 개 있었던 스티로폼을 서로 뺏기지 않기 위해 나름 애쓰고 있는 상태에서, 두 분이 자유발언을 하러 그 위로 올라가셨을 때 찍은 동영상입니다. 초기 현장 근처의 분위기는 이랬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더 쌓지 못하고, 몇개 정도 쌓아놓은 상태에서 양쪽(마이크 있던 쪽, 없던 쪽)의 토론장을 통합, 하나의 토론장으로 만들고 논의가 다시 진행되었습니다. … 사실 서로 뻔한 –;; 이야기들이긴 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양쪽의 입장은 서로 합의될 수 없을 것처럼만 보였습니다. 기본적으로 아고라 분들은 ‘누가 흥분해서 올라갈지 모른다’라는 전제를 바탕에 깐 상태였고, 다른 분들은 ‘시민의 정당한 저항 행위를 다른 시민들이 막아설 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거든요.

불복종과 비폭력의 사이에서

잠시 빠져나와서 시청쪽을 둘러보고 오니, 어느새 명박산성 앞에는 스티로폼으로 산성이 쌓여져 있더군요. 🙂 사실 여기부터는 많은 분들이 생중계로 다 보셨을테니, 제가 뭐라고 더 드릴 이야기는 없을 것 같습니다. 대신 뒷쪽에서는 좀 다툼이 있어서… 여기서 다른 분들 격해지는 것 말리느라고 막상 동영상은 찍지 못했네요. 작지만 프락치-_-로 시민기자분을 오해하는 사건도 있었구요.

…그러니까, 안티MB 카페의 한 분이 인권단체 연석회의에 격렬하게 항의를 하고 계셨습니다. 이 스티로폼 산성을 쌓은게 안티MB 카페 사람들인데, 컨테이너쪽에 쌓는다고 해서 도와줬는데, 왜 자기들 맘대로 산성을 만들었냐고- 해명하라고 -_-;;; 다행히 몇몇 분들의 현명한 대처, 차분한 설득으로 일은 무난하게 풀렸습니다.

사실 이 논쟁은 따지고 보면, 우리가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비폭력’과 ‘불복종’의 사이에서, 우리가 그 수위를 어느 정도로 이끌어갈 것인가-가 배경에 깔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불복종’과 ‘자율’의 힘을 좀 더 믿는 분들은 당연히 명박산성에 대한 저항의 의미에서 ‘다양한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반면 ‘비폭력’의 힘을 좀 더 믿는, 조중동에 이용당할 빌미를 주기 싫으신 분들은 ‘충돌없는 평화’를 선택하실 겁니다.

결국 지난한 논쟁이 이어지고, 새로 조금씩 더 스티로폼을 쌓기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발언이 있었지만, 결국 사람들 사이에서 간간이 터져나오는 ‘동의’와 ‘이의’의 목소리들 가운데, 더 많은 동의를 얻었던 의견이 채택되었습니다. … 그래서 스티로폼 추가 공수작전 시작.

그 이후 이야기는 여러분이 아시는 것과 같습니다. 🙂 우리는 산성을 해체하고 명박산성에 오르는 계단을 냈고, 그 위에 깃발들을 올려보냈으며, 날이 밝자 멋진 퍼포먼스로 마무리 했습니다. 느리지만 합의를 이뤄냈고, 서로 조금씩 불만스럽지만 양보하며, 서로가 가지고 있었던 원래 목적을 모두 이루는 성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여성적 소통의 가능성을 확인하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논쟁의 뒷 편에서, 어떤 여성적 소통의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니까, 서로 말로 싸우며 다투고 상대를 이기려는 것이 아닌, 상대를 설득하고 동의를 이끌어내는 소통의 가능성이랄까요. 사실 인권단체연석회의 분들은 고생 많이 했습니다. 안티MB 카페 분들과 아고라-로 상징되는, ‘불복종’과 ‘비폭력’의 대치점에서 가능한 합의를 이끌어내느라 맘고생이 심하셨던 것, 알고 있습니다. … 게다가 많은 인권단체연석회의 분들이 ‘불복종’에 가까운 입장을 가지고 계셨다는 점을 감안하면 말이죠.

하지만 새벽, 2시쯤부터 사회를 보셨던 분의 언행에는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기존 시민단체에서 관행적으로 보여주는, 시민들을 ‘설득’의 대상이 아닌 ‘선동’이나 ‘계몽’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달 까요. 단적으로, 그렇게 사회자가 말 많은 자유발언은 처음이었습니다. -_-; ‘우리 지금까지 인권 지키기 위해 노력했으니, 우리 믿고 (따라달라)’라는 식의 말이라던가, 억지로 동의를 끌어내는 어법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여성적 소통의 가능성은, 오히려 논쟁이 격렬했던 연단의 뒷 편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서로 목소리 높이고, 오해가 오해를 낳는 상황에서, 몇몇 분들의 차분한 설득과 그에 대한 동의는… 직접 보고 있는 제게는, 거의 감동이었달까요. 남자들이라면 주먹다짐이 오가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 … 그 와중에도, 차분히 한분 한분 설득해내는 한 사람의 언행에, 많이 감동했습니다. … 뭐, 그렇다고 -_- 뒷쪽의 전체 분위기가 달라지진 않았지만…

바로 그곳이, 민주주의가 머무는 곳입니다.

따분하고 지한 논쟁 속에서, 서로 다른 대안이 나오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합치시키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상대에 대한 설득이 이뤄집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동의를 구하고, 합의를 넓혀나갑니다. 동의를 구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 그 자체가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누가 옳은 말 한마디 했다고 옳소-하고 몰려가버리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거겠지요. 🙂

어제 스티로폼을 둘러싼 논쟁이 불편하셨나요? 저는 정말 좋았답니다. 바로 그 과정에서, 우리가 스스로 얼마나 성숙해가고 있는 지를 볼 수 있어서, 정말로 좋았답니다. 🙂 그 자리에 함께 해주셨던 많은 분들, 수많은 논쟁속에 지치고 짜증나셨던 분들, 하지만 여러분들은, 정말 소중한 자리에 계셨던 거랍니다. 저는 이 분들에게, 비난이 아니라 박수를 쳐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정말 멋지셨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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