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 폭력행동에 대한 간단한 입장 정리

이미 다른 분들이 좋은 말은 다 해주셨으니까, 별다르게 할 말은 없습니다. 그냥, 간단하게 제가 생각하는 부분만 덧붙이는 선에서 넘어가려고 합니다.

사실, 80년 광주도 그랬지만, 2008년 촛불 집회도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으면서 이 정도로 질서를 유지하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그것도 어떤 조직이나 동원된 군중도 아닌 사람들이 말입니다. 이건 솔직히 미스터리입니다. 자율의 힘이 강하다고 해야할지, 자기 규율이 쎄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조직된 행동에 워낙 익숙하다고 해야할지. 이건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지만, 현 시기에서는 분명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놀랄 정도로 이성적이었던 촛불 집회 참가자들

그렇지만 우리는 철의 규율을 가진 군대가 아닙니다. 각자 다른 이유와 다른 생각으로 모인, 잠시 모인 촛불 공동체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그동안 시위 과정에서도 가끔씩 보여지는 돌출 행동은 늘상 있었습니다. 아래 영상은 5월 28일에 열린 촛불 집회때 찍은 영상입니다. 이때 경찰은 촛불 집회가 끝난후 행진하지 못하도록 청계천의 모든 곳을 막고 있었는데, 그 막고 있음을 항의하던 중에 잠시 시비가 붙었습니다.

많이 흥분하신 것 같아서 한 학생이 시비 붙는 것을 말리는데, 그 말리는 학생을 프락치가 아니냐고 몰아부치시더군요. -_-; 결국 동영상을 찍다말고 가서 말리긴 했지만, 나중에 경찰들이 길을 열어놓은 다음에도 혼자서 한참을 경찰들과 싸우시는 것을 봤습니다.

다만 여럿이 모였을때 나타나는 ‘급흥분’ 상태는 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여럿이 모여있을때 나타나는 급흥분 상태가 솔직히 가두시위에서 가장 무서운 상태인데, 정말 놀랄 정도로 -_-;; 이성적으로 그것을 컨트롤 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래 영상은 6월 6일밤에 찍은 영상입니다. 동십자각쪽으로 진입하던 시민들이 경찰버스에 가로막히자, 누군가가 버스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렇지만 -_- 시민들의 자제 노력에 의해 무사히(?) 내려오게 됩니다.

…하지만 이날 밤부터, 조금씩 과열이 붙는 기미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금요일밤과 토요일밤은 모두 전경 버스를 밧줄로 끌어내고, 청와대로 가자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전경버스 일부를 밧줄로 끌어내기도 했습니다. 그로 인해 전경들과 마찰이 빚어졌으며, 그 가운데 여러가지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고, 흥분한 경찰과 흥분한 시위대간에 폭력적(?)인 몇가지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프락치론은 우리를 구원할까?

그동안 시민들이 보여줬던 이성적인 행동에 비해, 지난 토요일밤의 충돌은 이해가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프락치’가 심어져서 폭력 시위를 유도했다-는 쪽에 많은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개인적으론 어떤 판단도 하기 어렵습니다. … 사실 제가 보기엔 낮은 수준의 충돌-_-에 불과했거든요. 그러니까, 전체 시민들이 폭력적으로 참여했다기 보다는 몇몇 분들의 돌출 행동쪽에 더 가깝습니다.

하지만 그런 돌출행동이라도 사진 찍히기 좋은 그림을 만들어줍니다. 이런 이미지가 언론에 보도되고, 그 이미지를 빌미삼아 정권은 폭력시위-로 규정하려고 합니다. 단단히 실수를 저지른 셈입니다. 주변에서 꽤 많은 분들이 그들을 말렸음에도, 제대로 말리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 스스로에게 꽤 높은(?) 도덕적 규율을 강제하면서, 그것으로 시위의 정당성에 대한 명분을 얻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명분을 조금 흔들어 놓을 사건이 생긴 겁니다.

그렇지만, 프락치론은 우리를 구하지 못합니다. 차라리 우리 스스로 흥분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런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막을 행동을 취하는 것이 낫습니다. 솔직히 프락치 없었던 적 없습니다(경찰은 정보수집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 프락치가 선동을 했다/안했다 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프락치가 있었다고 해도 우리들중 일부는 그 선동에 동조한 것이 사실이며, 프락치가 없었다면 우리는 프락치도 없는데 서로서로를 의심하고 누가 적일지도 모르는 의심증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프락치가 있든 말든 상관없습니다. 프락치보다 무서운 것은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흥분한 누군가를 자제시킬 정도의 힘이 우리에게 있으면 됩니다. 이런 집회면 다시 안나가단-는 선동에도 휘말리지 마세요. 가장 저급한 수준의 모략질입니다. -_-; 다른 분들이 말해주셨던 것처럼,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화 시위’라는 방법을 택한 것이지, ‘평화 시위’를 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것이 아닙니다. -_-;

…여전히 비폭력 불복종이 우리의 힘입니다.

솔직히 왜 흥분하게 되었는 지는 이해가 갑니다. … 많은 분들이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가두 시위가 일주일 이상 이어진다는 것은 꽤 보기 어려운 일입니다. 게다가 똑같은 대치가 이어졌습니다. … 광화문 뒷풀이(?)라고 해야할까요. 결국 광화문에 가서 경찰과 대치, 그러다 새벽에 진압…이라는 패턴이 며칠째 반복되고 있습니다. 지난 일주일처럼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렇지만, 비폭력 불복종이 여전히 우리의 힘이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이미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벼르고 있는 정권은, 알바를 풀고 여론전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돈 주겠다는 떡고물을 던져놓고(대체 고유가 대책이 개개인에게 돈 주겠다는 거라니…황당하네요.), 한편으로는 보수단체를 동원해 일부러 충돌과 갈등을 조장하도록 판을 짜고 있습니다.

▲ 촛불집회에 참석했다가 밤을 새던 한 피씨방에서 찍은 사진.
옆 자리의 짧은 머리 사람은 이 화면을 틀어놓고 잠을 자고 있었다.
폭력시위반대카페…라는 곳이었고, 동영상은 시민이 전경을 폭행하는 장면-이라는 제목이었다.

작은 충돌과 갈등이 계속되면 판이 지리멸렬해지며, 지친 사람들은 둘 다 나쁜 놈들이다- 똑같은 놈들이다-라고 생각하며 회의론으로 빠지게 됩니다. 우리에게 정말 무서운 것은 이 것입니다. 사람들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결국 세상은 안바뀔 거라고 생각하는 것 … 어차피 희망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

…우리는 지금, 피곤하고 지쳐 점점 시들어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다시 힘을 줘야만 합니다. 그리고 생활에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만 합니다. 어차피 싸움은 굉장히 길게 갈지도 모릅니다. 아직 5년입니다. 많이 남았습니다. 정권은 자기 사람들로 공기업과 언론을 채워나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독재는 아니더라도, 독점 정권(?)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조중동에 대한 광고주 불매 운동을 비롯, 한나라당 의원들에 대한 항의등, 해야할 일이 많습니다. 프락치 색출은 재미있을 지는 몰라도,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진 않습니다. 차분하게, 좀 더 많은 고민을 모으며,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거, 왠지 욕먹을지도 모르겠네요…-_-;;;; 프락치 잡는 것에 신경쓰지 말자고 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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