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훈은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1.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농업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이긴 하셨지만, 그 자신이 감귤과 약용작물을 키우는 농부이기도 하셨다. 아버지 장례식을 마치고 할머니께 인사하러 들린 집에서, 우연히 집 뒷편의 작은 창고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할아버지가 쓰시던 호미며 낫이며 하는 농기구들이, 여전히 반짝반짝, 윤이 흐르고 있었다. 100세를 꽉 채우고 돌아가신 분이니 계속 농사를 지으셨을리도 없건만, 돌아가실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그 농기구들은 한번도 녹이 슨 적이 없었다.

2. 작년 미얀마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을 때, 군부의 발포로 인해 9명이 사망했다. 그 가운데에 AFP 사진 기자였던 나가이 겐지도 있었다. 그는 옆구리에 총알을 맞았으면서도 끝까지 사진을 찍었다. 죽어가면서도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 무릇, 쟁이들이란 그런 법이다. 정인숙 선생님에게 사진을 배울 때, 처음 들었던 이야기도 그 비슷한 것이었다. 카메라는 생명이다. 나는 다쳐도 내 카메라는 다쳐선 안된다.

3. 가수 김장훈이 태안 서해안 살리기를 위한 공연 도중, 쓰러졌다는 기사를 읽었다. 쓰러진 그의 모습을 보는데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몸을 다쳐 춤을 출 수 없게 되자 자살했다는, 라스트 포 원의 한 비보이도 생각이 났다. 공연 전에 김장훈이 그랬다던가? 지금 흘리는 이 땀은 더워서 나는 것이 아니고 아파서 나는 거라고. 아파서 죽을 것 같으면서도 그는 무대에 올라갔다. 약속을 지키고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올라갔다. 그리고는 무대위에서 쓰러졌다. …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그는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그는 정말, ‘쟁이’였다.

쟁이들에겐 ‘그렇게 산다는 것’ 자체가 삶의 의미다. 환쟁이는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쟁이는 펜으로 글을 쓴다. 사진쟁이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노래쟁이는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른다. 쟁이로 산다는 건 그런 거다. 쟁이들에게 하고 있는 것을 그만두라는 것은, 살지 말라는 말과 같다.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놓아버리면 아무 것도 아니듯, 학자가 책을 읽지 않으면 학자가 아니듯, 춤쟁이가 춤을 출 수 없게되면 절망에 빠지듯.

4. 내 낡은 카메라를 다시 만지작 거려본다. 펜과 메모장을 준비하고, 키보드를 다시 한번 청소해 본다. 21세기의 글쟁이는 글만 써도 말만 해도 안된다.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편집하고 인터넷 공간의 사람들과 수다를 떨어야만 한다. 어쩔 때는 조금 피곤하다. 가끔은 왜 블로그를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글쟁이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글쟁이다. 그리고 블로그에는 내가 쓴 글을 고맙게도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 그 정도면, 충분, 하다.

… 어차피 쟁이로 살다가 쟁이로 죽을 작정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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