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욕쟁이 할머니는 슬프다

중앙 선데이에, 이명박 대통령 CF를 찍은 욕쟁이 할머니 인터뷰가 실렸다. 욕쟁이 할머니는 아직도 이명박 대통령을 믿고 있고, 현재 경제가 나쁜 것을 촛불 집회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아, 그게 왜 대통령 탓이야? 저 지랄들을 허니 뭔 장사가 되겠어? … 아주 이달부터 매상이 팍 줄었어. 시위하고 부텀. 시국이 이렇게 시끄러운데 어떻게 경제를 살려?”


촛불 집회는 5월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할머니는 언론에 크게 보도가 나가기 시작한 6월부터 시위가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6월은 물가상승이 본격화되고, 서민들이 미래에 거는 희망이 크게 꺽이기 시작한 달에 불과하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 잘못됐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에 대해서는 굳이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

“응, 우리 가게 손님도 환율이 어쩌고 그러던데 난 어려워 뭔 말인지 모르겠더라고…”


할머니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믿음’이다. 하지만 그 믿음의 이면에는 ‘자신에 대한 합리화’가 존재한다. 할머니는 이명박을 찍자고 CF를 찍었다. 그 이명박은 지금 대통령이 되었고, 정책 실패로 많은 이들에게 비판을 받고 있다. 자신이 찍자고 말한 사람이 비판을 받는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비판을 받는 것과 같다.

말의 힘이란 그래서 무섭다. 한번 공개된 자리에서 내뱉은 이상 자신이 책임을 져야만 한다. 자신의 입장이 바뀌기 위해선,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 비판’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난 촛불집회때, 자유발언대에 올라간 수많은 시민들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채찍질 해야만 했다.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나도 이명박을 찍었다고. 그가 이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남은 것은 침묵 외에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할머니는 둘 다 거부한다. 
 

가게 벽에는 이 대통령과 함께 찍은 커다란 흑백 사진이 걸려 있다. 광고회사에서 준 그 사진을 할머니는 ‘가보’라고 했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 이후 그 가보를 떼버리라는 손님이 있었다. “ 내가 그랬지. ‘야! 왜! 뭐가 나쁜데? 그 사진 땜에 니가 술을 못 처먹냐?’ 그 총각은 서울대 나온 엘리튼데 나는 무식해 잘 모르지만, 쇠고기 수입 안 하면 우리 서민들은 맛도 못 본다고 그랬지. 촛불집회 나간다는 걸 그 냥반(이 대통령)이 그래도 열심히 하려고는 하지 않느냐, 그래 가지고 결국 말렸어.”

결국 그 믿음은 거짓 고백을 낳는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게되는 꼴이다. 자고로 ‘보고 믿게 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확인’에 불과하니까.

“나는 당뇨가 있어서 고기는 잘 안 먹어. 그래도 테레비 보니까 등심 100g에 900원인가 한다며? 그렇게 싼데 왜 안 사 먹어? 그건 나도 사 먹을껴.”


그렇지만 현실은 그대로 존재한다. 믿음은 결국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 하나씩 켤때마다 나오는 환상과 다르지 않다. 촛불 시위 하는 사람들 때문에 대한민국이 망하는 거라는 환상도 마찬가지다. 현실을 그냥 그대로 알 수는 없지만, 무엇인가가 존재하긴 한다. 환상은 결국 그 현실의 눈치를 볼 수 밖엔 없다.

“인터넷에서 보면 또 막 머라 그러겠지? 난 신문도 안 받아보고 TV도 잘 못 보는데 손님들이 와서 말해 주더라고. 주방 아줌마가 매상 떨어진다고 인터뷰하지 말라고 했는데…아, 저 지랄들을 허니…. 그만큼 했으면 대통령도 느낀 게 있을 거 아녀.”


하지만 자신이 땅 위에 둥둥 떠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환상만을 먹고 살 수는 없다. “그 내각…그거는 잘못하셨지. 너무 사람들이…그런데 다 사표 수리를 하셨지? 응? 그 냥반도 뉘우치신 거야.”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내각 전체가 사표를 냈으나 수리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할머니에겐 존재하지 않는다. 할머니는 당연히 그 사표를 수리했을 것이라고 믿고, 그 사표를 수리한 것은 잘못을 뉘우친 것이니, 이제 용서를 받아도 되지 않겠냐는 뉘앙스로 말한다.

자신이 뽑아달라고 말해준 사람이,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지 할머니는 이미 알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욕쟁이 할머니는 슬프다. 알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돌리고 돌리면서 말을 할 수 밖에는 없다. 눈 앞에 보이지 않는 환상을, 실제론 믿고 있지 않으면서도 믿고 있는 척. 마치 사고친 아들을 감싸고 돌며 ‘그래도 우리 애가 집에서는 착해요’라고 말하는 늙은 어머니의 마음이랄까. 

결국 마지막, 할머니는 “만약 이 대통령을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면 … 무슨 말을 하고 싶”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을 한다.

“응…국민이 원한이 맺힌 그런 저기는 하지 마시라고. 응? 뭔 말이냐고? 긍게…그 뭐시랄까…국민이 싫다는 일은 굳~이 안 하셨으면 좋겠어. 시끄러우니께. 앞으로는 그러셨음 좋겠어.”


강 밑바닥에 깊숙이 묻혀있던 진실이, 흙탕물을 헤치며, 겨우 수면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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