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셰프를 보며 무례함과 다정함에 대해 생각하다

당신의 무례함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지난 1981년, 스티브 잡스가 TV 토론회에 나온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잡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컴퓨터의 미래가 인류의 미래라고. 컴퓨터는 인간의 특정 지적 능력을 증폭시키는 도구이며, 지루한 일에서 벗어나 좀 더 인간이 잘할 수 있는 일, 창의적인 일을 하도록 도와줄 거라고. 지금 컴퓨터를 배우며 성장하는 아이들은 실제로 창의적으로 이용하고 있고, 그걸 보면 이게 해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라고. 앞으로 모든 사람이 컴퓨터를 다룰 수 있다면. 정부나 기업의 오용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http://trustthisrobot.com/2019/05/21/how-did-steve-jobs-feel-about-privacy-and-computers-in-1981/

그 후 40년이 지났습니다. 컴퓨터는 정말 인간의 창의력을 성장시켰을까요? 우리는 지루한 일에서 벗어나 새롭고 흥미로운 일을 골라 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쓰는 스마트폰은, 당시 보급되던 개인용 컴퓨터 애플2+(CPU 속도 1MHz)보다 1,000배에서 2,000배 빠른 프로세서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특정 지적 능력은 더 나아졌나요? 아니 그 전에, 그때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영화 ‘아메리칸 셰프’는 맛있는 음식과 함께 우리에게 그런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스마트 기기를 가지고 무엇을 하고 있냐고. 혹시 사람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생각하는, 무례한 짓을 하고 있진 않냐고. 당신이 인터넷으로 하는 험담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들이 있는 건 아냐고. 

SNS에서 시작된 비극

아메리칸 셰프(원제 : CHEF)는 2014년 개봉한 음식+여행+가족+코미디 영화입니다.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홈 커밍, 어벤져스 등을 감독한 존 패브로가 감독이자 주연(칼 캐스퍼 역)을 맡았죠. 덕분에 조연이 아주 호화롭습니다. 분명 저예산 영화 같은데 더스틴 호프만(리바 역), 스칼렛 요한슨(몰리 역)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마빈 역, 우정 출연), 소피아 베르가라(이네스 역)까지, 여기저기 익숙한 얼굴이 스쳐 지나갑니다. 제작비 1,100만 달러의 저예산 영화인데도요.

아메리칸 셰프 포스

이런 호화 멤버가 일하는 레스토랑은 미 로스앤젤레스에 있습니다. 오랫동안 지역에서 인정받은 식당이죠. 주인공 칼은 이 레스토랑 셰프입니다. 실력도 좋고, 같이 일하는 직원들에게 평판도 좋습니다. 이혼은 했지만 아들과도 함께하려고 합니다. 나름 나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찾아온 유명 요리 비평가이자 블로거 램지 미첼(올리버 플랫 분) 때문에 열받게 됩니다. 애써 만든 음식에 별 두 개짜리 리뷰를 주면서 비난했거든요. 그가 쓴 글은 당연히 그의 트위터에도 올라갔고, 그 글은 수많은 램지 미첼의 팔로워들에게 공유되면서 칼에게 망신을 줬습니다.

여기에서 끝났으면 그나마 나았을 겁니다. 트위터를 모르던 칼이 이 사건으로 트위터 계정을 만들고, 1 대 1 메시지라고 생각해 램지 미첼에게 통한의 욕설을 날립니다. 그렇게 서로 욕을 주고받다가 칼이 재대결을 신청하지만, 레스토랑 오너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오히려 직장에서 잘리게 됩니다. 안 그래도 화났는데 레스토랑을 다시 방문한 미첼이 비웃는 트윗을 올리자 아예 폭발해, 레스토랑에 쳐들어가 그와 큰소리로 말다툼을 하게 되고, 그 말다툼 영상이 SNS에 다시 올라가며 인터넷 스타로 거듭나게 됩니다.

예, 누군가가 몰래 찍어 재미있다고 올린 영상 때문에, 칼의 인생과 커리어가 한 방에 날아갔다는 말입니다. 이 사건을 보고 도움을 청한, 이혼한-전 아내-이네스가 아는 SNS 홍보 담당자는 이제 남은 길은 ‘헬스 키친’ 같은 화난 셰프가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거나, 숨어서 가만히 사건이 잠잠해지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할 정도입니다. 자리를 알아본 다른 레스토랑에선 하나도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에선 지금도 칼의 영상이 돌아다니고, 신문 기사가 되어 팔립니다. 적당히 좋고 적당히 나빴던 인생이, 갑자기 롤러코스터를 탔습니다.

무례함이 당연해진 인터넷 세상에서

“당신은 내 자존심을 빼앗았고, 내 경력과 존엄성을 빼앗아 갔어요. 당신 같은 사람들은 신경도 안 쓰겠지만. 그래도 당신은 알아야 해요. 그러는 건 우리한텐 상처에요. 우린 노력한다고요.”

  • 영화 아메리칸 셰프, 주인공 칼 캐스퍼가 평론가 램지 미첼과 다시 만났을 때 한 말
아메리칸 셰프 영화 장면

인터넷은 어떤 곳일까요? 보통 쌍방향성, 개방성, 익명성을 가진 곳이라 말합니다. 이런 특징은 전에는 묻혀 있었을 많은 작은 목소리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도 인터넷은 가장 참여적인 시장이고, 표현촉진적인 매체라고 말했습니다. 편하게도 만들어줬죠. 우린 스마트폰으로 인터넷과 연결해 물건을 사고, 금융 거래를 하고, 친구와 얘기하며, 영화와 게임, 음악을 즐기는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코로나19 시대에 인터넷이 없었더라면, 과연 버틸 수 있었을까요?

반면 인간의 악한 마음도 그대로 드러나게 됐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상처받았죠. 몰랐던 것도 아닙니다. 사이버 폭력은 인터넷 통신 초창기부터 문제가 됐으니까요. 1981년의 잡스도 이런 문제를 짐작했을 겁니다. 다만 모두가 컴퓨터를 다룰 줄 알게 되면, 그런 문제를 해결할 방안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겠죠. 우리는 서로 직접 대면하지 않는 인터넷 공간에서, 인간이 얼마나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간과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사이버 괴롭힘이나 비아냥거림, 악성 댓글 같은 일이 점점 평범해져 갑니다. 때론 우쭐해져서 하면 안 될 얘기까지 별생각 없이 적기도 합니다.

… 오죽하면 영화 속 요리 평론가가 당당하게 “나야 원래 독설이 직업인데, 그게 뭐라고 싸움을 걸어요?”라고 말할까요?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심리학자 에린 버클스는 인터넷에서 악의적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크게 4가지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사이코패스, 권모술수, 자기애와 함께 가학증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이들에겐 상대방을 괴롭히는 일-무례함도 놀이입니다. 본인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남에게 고통을 줘서 나의 우월함을 증명(했다 생각)하고, 그런 가학적인 재미를 위해 노는 거라고. 때론 자신은 정의를 실천하고 있다고 믿는 사디스트도 있습니다만, 역시 핑계에 가깝습니다. 

무례함이 우리를 괴롭히는 이유

여기서 잠깐, 재미있는 사실 하나 알려드릴까요? 다름 아니라 이 영화는, 존 패브로 감독이 자기 인생을 돌아보고 싶어서 찍었다는 겁니다. 영화를 찍고 나서 패스트컴퍼니와 한 인터뷰를 보면, 그런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큰 시스템의 부품처럼 영화를 찍다가 질린 감독이, 손수 자기가 다 손댈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건 너무 재미없어서 요리사 이야기를 했다고. 아빠가 되고, 이혼하고, (현실과) 갈등하는 이야기, 영화판에서 살아온 20년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그런 영화의 갈등이 트위터 어뷰징으로 시작됐다는 건, 우리 시대의 주요 갈등이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고 있다고 얘기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뭐, 각본 역시 존 패브로가 썼으니까요.

아메리칸 셰프 영화 홍보 이미지

다만 이 이야기가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건, 주인공 칼이 그렇게나 화났음에도 불구하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벼운 욕설을 날리긴 했지만, “이 음식이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만든 건지 네가 알기나 하냐?” 정도였지, 넘어야 할 선을 절대 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그를 욕하고 괴롭히지도 않았고, 드러내고 미워하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만약 인터넷에 올라간 그 영상에서, 그가 지켜야 할 선을 넘었다면, 그건 재미있는 영상이 아니라 혐오스러운 영상이 됐을 겁니다. 혐오스러운 말을 내뱉은 사람이라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트위터에 푸드트럭을 홍보했다고, 그리 많은 사람이 몰리지도 않았을 거고요. 

왜 그럴까요? 선을 넘은 무례함은 관계를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파괴의 대가는 모두 함께 감당해야 하고요. 분쟁을 일으키는 특정 회원 때문에 망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본 사람은 많을 겁니다. 진실이 아니라 선동, 분란을 조장하는 악플러도 자주 경험하셨을 거고요. 개개인에게도 영향을 끼쳐, 퓨리서치 센터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 성인 10명 중 4명 이상이 온라인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아메리칸 셰프 영화 트레일러의 한 장면

무례함은 일터에서도 영향을 끼칩니다. 실제로 리그 오브 레전드를 만드는 라이엇게임즈에서 직원들의 채팅 기록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게임에서 드러내는 유해성과 직장에서 보이는 나쁜 언행 사이에 높은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전년에 해고된 직원의 25%가 비정상적으로 게임 내 독성이 높은 사람이었던 겁니다. 그들이 주로 했던 행동은 비꼬는 말이나 폭언이었고, 때론 타인을 위협하기 위해 직원의 권한을 남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악영향이 크니, 선을 넘은 무례함을 사람들이 싫어할 수밖에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무례한 사람은 적다는 겁니다. 수는 적은데, 왕성한 활동력으로 세상을 나쁘게 만들 뿐이죠. 미 코넬 대학 연구팀이 미국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Reddit)에서 40개월간 쌓인 데이터를 가지고 커뮤니티 간 분쟁 발생 구조를 조사한 연구가 있습니다. 이 보고서를 보면, 전체 분쟁의 74%를 1%의 커뮤니티가 일으킵니다. 예전에 중앙일보에서 분석한 기사를 보면, 네이버 뉴스 헤비 댓글러는 전체 작성자의 0.1%인 123명에 불과합니다. 이들이 36만 개 댓글의 16.6%를 작성했습니다. 댓글을 다는 사람이 전체의 10%도 안 된다는 걸 생각하면, 카카오 등에서 연예 뉴스 댓글을 폐지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셈입니다.

결국, 상냥함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이쯤에서 고백하나 할까요? 아까 스티브 잡스도 이런 문제를 생각했을 거라고 말했지만, 솔직히 정말 많은 이는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1990년대 인터넷 도입 초기만 해도, 우리가 생각했던 문제는 ‘인터넷 공간을 정부나 특정 회사가 독점/검열’한다거나, ‘사람들이 인터넷에 빠져 방 바깥으로 나올 생각을 안 한다’거나, ‘개성이 사라지고 집단주의에 빠져드는’ 거였습니다. 현실과 사이버 공간을 딱 분리해놓고 생각했죠. 현실은 그냥 다 우리 삶에 영향을 서로 끼친다-였지만요. 까놓고 말해 반도체 기술이 (지금과 비교하면) 하찮았던 세상에선, 기술 발전만 신경을 써도 모자라서, 그게 어떻게 영향을 끼칠지는 나중에 생각하자고 뒤로 미뤘거든요.

아메리칸 셰프 영화 홍보 이미지

그렇다고 이제 와 ‘그럼 인터넷을 쓰지 말자!’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세상은 변했고, 변한 세상에 어떻게든 적응해서 살아가야죠.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건의 시작도 SNS였지만, 해결책도 SNS에 있었습니다. 

칼이 전 아내의 권유로 전 아내의 전전 남편을 통해 사들인 푸드트럭을 고쳤을 때, 그는 옛날식 홍보만 생각했습니다. 트럭을 세우고, 확성기를 통해 주변 사람을 모으는 거였죠. 여기서 아빠와 함께한 아들 퍼시(엠제이 안소니 분)는, 새로운 세대답게 트위터를 활용해 고객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아메리칸 셰프의 요리 장면을 자문한 로이 최,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고기(Koki)라는 한-멕시코 타코 푸드트럭을 고안하고, 구르메 푸드트럭 운동을 창시했던 그가 썼던 방법입니다. 

… 무엇보다, 무례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웃겼던 칼의 동영상은, 이미 그를 유명한 셰프로 만들어 버렸다는 걸 아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더 셰프 쇼 홍보 이미지

아쉽게도 현실은 영화와는 다릅니다. 많은 SNS는 어뷰징 때문에 망가졌고, 이들 서비스 대표는 때론 국회 같은 곳에 나가서 증언해야 할 처지가 됐습니다. 무례한 글을 덜 쓰게 시스템을 개편해야 했는데, 그건 돈벌이에 안 좋으니 내버려 둔, 아니, 오히려 그런 글을 더 쓰게 장려한 탓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큰 시스템을 쉽게 바꿀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도 바꾸려고 해야겠죠. 많은 커뮤니티는 존댓말 사용을 원칙으로 하거나, 비속어를 쓰는 사용자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속 칼이 보여준 것처럼, 무례하지 않게 살기를 택할 수 있습니다. 욕을 해야 돈을 버는 세상이어도, 내가 거기에 묻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현실과 가상에서 서로 다른 사람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 태도는 결국 언젠가는 드러납니다.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막말 하지 않기. 내 이익을 채우려 남을 욕하지 말기.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지키기. 나 자신이 정중해야 무례한 사람에게 대처할 힘이 생깁니다. 무례하게 굴었던 사람을 도와줄 사람은 없으니까요. 더 많은 연봉을 받고 싶거나, 더 좋은 회사에 가고 싶거나, 더 빠르게 승진하고 싶다면 더 그래야 합니다. 당신이 존경하는 사람 중에 무례한 사람이 있었나요?

그리고 … 그래야 우리가 행복해집니다. 무례함으로 인해 서로의 신뢰가 깨진 곳에서 살고 일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니까요. 아 물론, 맛있는 요리를 먹어도 행복해지지만요.

* 전에 SK하이닉스 블로그에 기고한 글입니다. 악플 문제를 다루고 싶어서 ‘많이 돌려 말하며’ 썼습니다. 요즘 이런저런 사건 속에 악플러 이야기가 다시 나오는 것을 보고 생각나, 옮겨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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