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컴퓨터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 물론 보고서를 작성할 때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하고 가끔 경찰 데이터베이스를 참고하기는 하지만, 월스트리트의 화이트 컬러 범죄자 전담반이 아닌 이상 컴퓨터에 관련된 사건에 말려드는 일은 거의 없다.
‘거의’라고 한 건 바로 한 달 전에 그런 사건에 말려들었기 때문이다. 은퇴한 뒤 혼자 사는 전직 주식 중개인이 살해된 사건이었다. 지금까지 이 직업으로 밥 먹고 살아오면서 살인 현장을 수도 없이 봐왔지만 이처럼 끔찍한 시체는 본 적도 없었다. 물건들이 없어지긴 했지만 단순한 강도사건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여기엔 그 이상의 지독한 악감정이 숨어있었다.
집안의 많은 물건들이 증거물이 되어 경찰서로 옮겨졌다. 그 중에는 당연히 그의 노트북 컴퓨터도 있었다. 컴퓨터에는 꽤 실력이 있는 부하 녀석 하나가 나 대신 그 컴퓨터를 검사하기 시작했다. 검사한 지 15분도 되지 않아, 그 녀석이 탄성을 질렀다.
“죽은 게 당연하네요. 이 친구는 NitroZap이었어요!”
“그게 누군데?”
“인터넷 세상의 말썽꾼이죠.”
“해커야?”
나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게 고단위의 친구도 아닙니다. 단지 말썽꾼이죠. 최근 인터넷 상에서 일어난 감정 싸움 중 아마 10분의 1은 이 친구의 책임일 거에요. 천박하고 사람을 짜증나게 만들고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서 치사할 정도로 교활하죠. 여기 그 사람의 홈페이지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전력을 모두 올려놨으니 한 번 보세요.”
그 홈페이지라는 걸 읽고 나니 ‘죽은 게 당연하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NitroZap은 아프리카 계 미국인 포럼에 KKK단 예찬을 올려놓고 페미니스트 뉴스 그룹에 남성 우월주의 예찬을 쏟아 붓는 게 자기가 태어난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천박한 의견과 유치한 아이디어, 그리고 사악할 정도로 사람 마음을 긁는 트릭들이 모두 그 안에 들어 있었다. 나 자신이 특별히 어떤 이슈에 몰두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 친구의 글을 읽노라니 서서히 신경이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NitroZap의 살인범을 찾는 일은 그래서 더 막막해졌다.
그는 온라인에 적들을 만들고 다녔다. 그의 목을 칼로 따고 싶은 사람들은 전 세계에 한 5천만명쯤 될 것이다. 그 중 컴퓨터에 밝은 누군가가 그의 주소를 알아낸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누가 그랬을까? 우리는 NitroZap에 원한을 가질 만한 몇 명을 뽑아 조사를 시작했지만 결국 어떤 것도 입증할 수 없었다. 거의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마 내가 인터넷이란 것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일단 들어가 보니 참 신기한 세상이었다. 얼굴을 밝히지도 않고 귀찮은 뒤끝도 생각하지 않고 지구상의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다. 나는 사건과 관계없이 ‘떠돌기’ 시작했고 곧 이런 것도 알콜처럼 중독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몰두하지 않았더라면 이 사건의 단서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단서는 어느 뉴스 그룹에 올라간 짤막한 게시물이었는데, NitroZap의 죽음을 통쾌하게 생각하는 여러 게시물 중 유일하게 그의 생각을 옹호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글을 보고 있노라니 뭔가 이상했다. 그 게시물의 문장과 스타일은 분명 NitroZap의 그것과 틀렸다. 틀려도 너무 틀렸다. 하지만 지나치게 틀려서 오히려 비슷하게 보였고 전혀 다른 외모와는 별도로 이상하게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다시 이런 분야에 조예가 깊은 전문가를 불러들여 그 게시물을 검사하게 만들었다. 그는 한 10분쯤 들여다보고 있다가 같은 사람이 썼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흠.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가. NitroZap이 아직 살아있다는 걸까? 죽은 사람이 NitroZap이 아니라는 걸까? 일단 의심이 나기 시작하자 사건이 쉽게 풀려나갔다.
결국 범인은 잡혔다. 그는 피살자의 조카였다. 도박 빚 때문에 돈이 필요했고 그에게 유일한 희망은 삼촌의 유산이었다. 뻔한 사건이었다. 유일한 상속자였으므로 그는 경찰의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야했다. NitroZap은 그러기 위한 고안품이었다. 그는 몰래 삼촌의 이름으로 서비스에 가입한 뒤, 정말로 죽이고 싶을 정도로 추악한 인물을 만들어냈다. NitroZap이 충분히 만들어졌다고 생각 되었을 때, 그는 삼촌을 죽였고 자기 노트북 컴퓨터와 그 밖의 자잘한 증거들을 이용해 삼촌을 NitroZap으로 조작했다. 괜찮은 아이디어가 아니었냐고?
하긴 우리도 한 동안 속았으니 그랬다.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가 걸작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디테일이야말로 진짜 걸작의 필수 조건인 것이다. 살인범은 디테일의 측면만 따졌을 때 형편없이 서툴렀다. 그는 자신의 알리바이를 입증할 수 없었다. 우리는 그가 사용한 흉기 중 일부를 찾아냈고 구입 경로를 밝혔다. 그의 삼촌은 모뎀 사용자였으므로 그가 컴퓨터를 사용한 시간과 NitroZap가 온라인에서 활동한 시간을 대조해보면 살해된 사람이 NitroZap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증명할 수 있었다. 역시 같은 방법으로 조카가 NitroZap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가장 고약한 실수는 NitroZap의 존재를 지나치게 가볍게 여겼다는 데에 있었다. 그는 NitroZap을 그냥 단순한 발명품으로 여겼지만 세상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NitroZap의 행세를 하면서 그는 서서히 이 싸구려 악당에 동화되기 시작했으며 결국 진짜로 그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결국 그는 인터넷상의 감정 싸움에 진짜로 말려들었고 NitroZap이 죽은 뒤에도 여전히 온라인에 남아 다른 이름으로 그 싸움을 시작하려 했던 것이다. 도대체 누가 창조물이 창조주보다 미약하다고 했는가?
나는 여전히 인터넷에 매력을 느끼고 있고 여가 시간의 상당수를 거기에 할애하고 있지만 종종 불안해지곤 한다. 과연 광섬유를 오가는 이 다양한 디지털 정보들 중 몇 퍼센트가 진짜일까?
– 듀나, NitroZap 을 아세요? 하우피씨 1998년 9월호, 듀나의 일기 에서
* 웹상에 자료가 없어서, 자료 차원에 남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