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안보,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제목에는 역사라고 이름 붙였지만, 굳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바로 15년전에 일어났던 쌀수입개방 반대 집회를 다시 돌이켜보고 싶어서다. 93년말, 국제적인 자유 무역을 위하여, GATT 체재를 대신할 WTO 체재를 출범시키기 위해 이뤄졌던 UR(우르과이 라운드) 협상에서, 한국의 쌀 시장 개방은 가장 첨예한 사안이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걸어서라도 막겠다던 쌀 시장 개방은 아주 허무하게 무너지고, 전국 곳곳에서 수입개방 반대에 대한 저항이 일어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서명운동 역사상 백만명이 반대 서명을 했던 것도, 전체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해서 싸웠던 것도, 당시 김수환 추기경마저 반대했던 것도 기억한다. 

결국 우리나라는 농업개발도상국(?)의 지위를 인정받아 10년간의 관세유예를 얻어냈다. 그 다음 2003년 멕시코에서 었던 DDA(도하개발아젠다) 협상에서도 농산물 관세 철폐가 집중 논의되었지만, 한국 농민(이경해님)죽음과 유럽/미국의 입장차이로 인해 협상 자체가 결렬되고 말았다.   

그리고 2004년, 노무현 정부에서는 10년후 전면 개방을 조건으로 새로운 쌀협상 비준 동의안을 내놨다. 곳곳에서 농민들의 격렬한 시위가 이어졌고, (구)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강력한 반대속에서도 국회 표결이 이뤄져 비준 동의안은 처리되었다. … 그렇지만, 농민들의 저항을 의식해서 만든 ’10년후 전면 개방, 그때까지는 점진적 개방’이란 조건이 지금 우리에겐, 아슬아슬한 행운이었다.

2008년 1월까지만 해도, 2014년까지 기다리지 말고 빨리 조기 관세화를 해서 수입개방하자-라는 경제계의 의견이 대세였다. 그들은 정말 때가 될때마다 이 안건을 제기했다. 그때도 들먹인 이유는 역시 ‘경제’였다. 미국과 캐나다등 우리가 FTA를 맺길 원하는 국가들이 주된 곡물 수출국이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우리나라는 수출 중심 국가 이므로, 빨리 농업 시장을 내주고 FTA를 맺는 것이, 국가의 이익(?)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2008년 봄이 되면서 완전히 변했다. 유가 상승과 함께 식량 안보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세계는 이미 식량부족의 시대로 접어들었고, 각국은 농업보호를 위한자구책을 더욱 강화해나가고 있다. … 식량은 민족의 자주권을 지키고, 국민의 안정된 삶과 건강을 담보하는 나라의 정치경제문화적 자산이다. … 진정한 국익은 개방이 아니라 ‘식량자급’“이라 주장했던 민주노동당의 성명서는 옳았다.

93년만해도, 일본 우익들은 아사히 신문에 광고를 게재하며 ‘식량 안보’는 좌파들의 헛소리일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가장 세계화에 충실했던 필리핀은 그로 인해 지금, 값비싼 댓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세계화로 인해 값싼 수입 농산물이 밀려들자 일부 국가의 농민들이 경작을 포기하면서 식량파동에 취약한 구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필리핀은 농민들이 관광산업으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쌀 수출국에서 세계 최대 쌀 수입국으로 전락했다.

아쉽지만, 결국 모든 것은 지나봐야지만 알 수 있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당장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그나마 밥이라도 안심하고 지어먹을 수 있는 쌀값은, 지난 10년간 지난하게, 심지어는 어떤 시민들의 욕을 들어먹으면서도 싸워왔던, 바로 그 사람들이 이뤄놓은 결과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눈 앞에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실망하지 말자. 

…역사는, 항상 천천히 흘러가게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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