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정을 위한 변명

1. 재미있는 상상을 하나 해볼까요. “야오이 유우”란 여배우가 있습니다. 일본 배우이지만, 예쁘고 귀엽고, 그녀가 출연한 영화가 한국에서도 꽤 많이 히트해서, 한국에서도 좋아하는 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에서 배우 협회가 결성되고, 그 배우 협회에 가입한 배우들이, 제작자들에 의해 대거 영화 출연을 보이콧 당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일본에 있는 유학생들이, 조금이라도 힘이 되볼까 하는 마음에, 일본 배우들에게 서명을 받습니다. 그러자 서명을 해주던 일본 영화 관계자들이 야오이 유우를 찾아가 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으니, 그녀의 발언은 한국 사람들에게 많은 지지를 불러일으킬 거라고. … 그런데 알고봤더니 그녀는, 일본에서도 우익으로 소문난 배우였습니다. 그리고 서명을 받기 위해 찾아간 사람들은 ‘조센징은 역시 그것밖에 안된다’는 폭언을 듣고 돌아옵니다.

…자, 이제 한국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반응할까요?

2. 냉정하게 몇가지만 따져봅시다. 목수정이 올린 첫번째 글을 읽고 불쾌했던 것은, 그 안에 어떤 이데올로기적 장치를 너무 눈에 보이게 심어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를 좋게 보이고 누구를 나쁘게 보이게 할 것인지가 너무 명백하게 드러나서, “그래서 어쩌라구- 당신 생각대로 나도 생각하라고?”라는 생각이 들어버렸던 거죠.

이는 두번째, 목수정이 블로그에서 올린 글에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애시당초 진지하게 정명훈의 서명을 받을 생각이 있긴 있었는지 궁금해 집니다…만, 아마,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그런 대접 받을 거라고도 생각하진 못했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목수정의 글은 ‘기사’라기 보다는 ‘기고’에 가까운 글이었습니다. … 취재를 위해 간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겪은 사건을 전달한 것이니까요.

물론 여기서 정명훈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자체는 전달이 가능한 사안입니다. (한국에서 진중권이 그랬다고 생각해 보세요. 🙂 하지만 기성 언론의 기자가 자신의 신분을 숨긴 상태에서 그런 식으로 서명을 받으러 갔다면, 아주 호되게 비판을 받았을 겁니다. 무례한 취재일 뿐만 아니라 취재원의 프라이버시가 일부분 침해되었기 때문입니다.

… 목수정씨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취재원이 내 자신의 의견과 정반대되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취재원은 끝까지 존중받아야만 합니다. … 하지만 이건, 목수정을 기자로 보긴 어려우니 일단 이해해주고 넘어가기로 하죠. 어차피 기사가 아니라 자기가 이런 일 겪었다는 기고였고…-_-;

3.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화가 난 건 이해하겠지만, 씌여진 목수정의 글은 온통 정명훈을 까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걸 가지고 사람들 사이에 논쟁이 붙었습니다. 정명훈이 잘못했다는 것은 다들 동의하지만, 그럼 목수정은 잘했는가- 라고 서로들 투닥투닥. 그랬더니 어떤 사람들은 ‘국립 오페라 합창단 해고 사태’는 안보고 목수정의 과격함만 본다고 나무랍니다.

…아니, 그 사건이 발단이 되긴 했어도, 그 글이 해고 사건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지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들 보고 어쩌라구요? 목수정의 글에서 세워진 프레임을 충실히 따라간 사람들을, 그 사건의 배경이 된 내용은 보지 못한다고 뭐라고 하면, 어쩌라구요…-_-;; 그게 더 중요하다면, 그 사람들을 깔 것이 아니라, 해고 사건에 촛점을 맞추도록 설득하는 글을 쓰는 것이 더 맞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그 글들 가지고 투닥투닥. -_-; 제가 보기엔 아무리 봐도 “같은편 감싸기”로 밖에 안보이는데, 그게 옳은 말이라고 또 투닥투닥. -_-; 아 놔 이 분들….-_-;; 그러다가 분위기가 “니네는 어째 그것밖에 생각 못하냐?” vs “진보신당 애들은 원래 다 이래?”로 또 나뉘어서 투닥투닥…-_-;;

…잘못한 것 억지로 감싸주는 거나, 끝까지 잘했다고 우기는 거나, 또는 니네가 뭘 몰라서 그런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거나… 별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몇몇 사람들의 모습을 “진보신당 전체”의 모습으로 확대해석하는 것도 경계합니다. … 거기도 여러 사람들 있는 곳이고, 사람 사는 곳엔 원래 여러 사람들 다 있게 되어있으니까요…-_-;

4.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오페라 합창단 해고 사태”가 “그나마” 알려지게 된 것은, 목수정…-_-; 씨의 도움일 겁니다. 그렇지만 알려졌다고해서 끝날 일도 아니고… 뭘 어떻게 함께해야하는 지도 모르니,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그런 일이 있구나” 정도로만 여겨질 겁니다. 모든 일에 “연대”를 외치며 달려나갈 만큼 사람들이 투사도 아니고…(뭘 바라시나요…)

실은, 목수정의 글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갔던 것이, 결국 당원 게시판에 써야할 글을 밖으로 가지고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목수정 글이 가지는 장점과 단점은, 어느 정도 이해 기반이 같은 사람들이 보는 곳과, 평범한 다수가 바라보는 곳에서 쓰는 글은 달라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실수라고.

… 쉽게 말해 선전 선동을 위해 씌여진 글이라는 것. -_-; 그리고 대다수의 선전선동은 타인을 설득하는 것이 아닌 ‘적을 만들어 내부를 단결시키는’ 목적으로 씌여집니다. 그런 글을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보는 곳에 툭 던져놨으니, 좋은 소리가 나올리가 없지요. 사람들을 바보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_-;

… 저라면, 이런 사건이 생겼을 경우, 다른 기자에게 취재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쪽을 택했을 겁니다. 박스로 오페라 합창단 해고 사태가 뭔지 설명하는 기사라도 하나 달아달라고 부탁하고.

5. 만약 제가 이렇게 서명을 받아야만 할 일이 생각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우선 서명을 해줄지 안해줄지 고민해 볼겁니다. 서명해준다는 판단이 들면 좋은 거고, 아니라면 또 고민을 했을 겁니다. 그래도 서명을 받아야만 할까, 아닐까를. 서명받아봤자 소용없는데 무리하지 말자-라는 판단이 들면 당연히 안받으러 갈거고.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서명을 받는게 유리하다고 생각한다면…

…무릎이라도 꿇었을 겁니다. 그게, 정말로 꼭 필요하다고 여겼다면은. 뭐, 이건 제 방식이니 남들보고 이렇게 하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목적이 ‘서명을 받는 것’이었다면, 그리고 그 서명이 정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면… 어떤 식으로라도, 서명을 받기 위해 노력했을 겁니다. … 뭐, 서명 가지고 정말 어떤 일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는 의심하고 있습니다만.

그렇지만,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수정이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 그러니까, 정명훈을 까면서 세우고 싶어했던 어떤 전선- 그리고 그 기반에 되었던 사건에 대한 시선…에는 동의합니다. 그가 했던 방법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 것과,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것은 다른 문제니까요.

…그럼 이쯤에서, “자 이제 목수정이 말하려고 했던 것을 말해보지?” -_-;; 라는 질문이 나올 것 같아서.. 간단하게 거기까지만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목수정이 정명훈을 까는 글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요? 그건, “손톱만큼만한 연대, 아니, 연민의 감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저 역시,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응당 그 정도 연민의 감정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모국에서 억울하게 해고를 당한 후배 같은 사람들을 위해, 펜 한번 움직이면 될 일을, 어떤 정치적 계산까지 머릿속에서 이미 끝내버린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긴 하지만… 괴팍함이고 뭐고 다 떠나서, 노블리스 오블리주- 말 그대로, “고귀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 아무튼, 일이 무난하게 잘 마무리 되기는 바라지 않습니다. (응?) 이번 일로, 나와 생각이 다를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쓰는 글은, 어떤 글이 되어야 되는지, 더 많이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물론 실컷 고민하고도 안변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냥 자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랑만 담 쌓고 살겠다면 그것 또한 말리지는 않겠습니다-만.

* ….그런데 이거, 왠지 글 쓰다 보니… 제목은 그냥 “훼이크”가 되버렸네요….-_-;; 제목만 보고 낚이신 분들에겐 죄송;; 제목만 보고 댓글 다실 분들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인사를.

* ‘정명훈은 안 고귀한 사람이에요’라는 댓글은 반사 -_-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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