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무선랜으로 접속하면 예비범죄자일까?

서울 경제에 「무선랜 단말기 ‘사전 등록제’ 추진」이란 기사가 떴습니다. 내용은 “무선랜(와이파이ㆍWiFi)의 무단 이용을 막기 위해 사전에 인증된 휴대폰이나 노트북 등을 통해서만 무선공유기(AP)에 접속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사전에 등록된 단말기만 무선랜에 접속할 수 있다는 내용.

…세계 어디에서도 추진된 적이 없는, 대단한(?) 발상입니다.

사실 초고속 인터넷을 이용하시는 분들이라면 한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처음 초고속 인터넷을 개통할 때, 기사님들이 와서 설치하면서 보게되는 화면. 바로 MAC 어드레스를 이용해서 컴퓨터를 인증하는 모습을. … 그래서 공유기를 이용하지 않으면, 집에 컴퓨터가 아무리 많아도 한 대만 인터넷에 접속할 수가 있었지요. -_-;

▲ 이젠 카페에서 접속하려고 해도, 이름이랑 주민번호 넣고 인증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스타벅스에서는 이미 그러고 있지만…

남의 무선 인터넷, 함부로 이용하면 죄가 된다?

이런 방안이 나오게된 근본적 배경은 인터넷 공급자들의 로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 심증밖에는 없습니다. 그 보다는 이번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무보안 무선 공유기’에 대한 집중적인 대책을 추궁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일 것 같습니다.

실제 한나라당 최구식, 허원제 의원등은 이번 감사에서 갑작스럽게(?) ‘무선랜 보안 대책’을 추궁한 바가 있습니다. 이들이 내세우는 주장의 근거는 세 가지입니다. ① 무선랜을 이용한 범죄가 증가함에도 추적할 방법이 없다. ② 네트워크 품질이 저하된다. ③ 통신시장 수익성이 감소되며 이로 인해 IT산업 자체가 위축될 것이다.

이 가운데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지난 인터넷 정액제 논란이나 사설 공유기 논란때도 계속 나왔던 이야기로, ‘통신 사업자’들의 10년묶은 레파토리입니다…-_-; 반면 첫 번째는 주의깊게 살펴봐야할 문제입니다. 실제로 2007년, 싱가폴에서 남의 무선인터넷을 이용하던 학생이 처벌받은 사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싱가폴 무선 인터넷 처벌 사례

지난 2006년 11월, “Garyl Tan Jia Luo(당시 17세)” 라는 소년이 체포되어 징역 3년에 1만 싱가폴 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은 사례가 있습니다. 2007년 4월, 최종 판결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긴 했지만.. 남의 무선 인터넷을 이용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은 아시아 지역 첫번째 사례입니다.

* 미국에서 약간 비슷한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만,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이 이후에 다른 사례가 있었는 지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때도 약간 논란이 있었지만… 싱가폴 법정의 입장은 간단했습니다. 뭐랄까, 뭐든 훔쳐 쓰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다…-_- 랄까요. 하지만 당시 사건을 다룬 채널뉴스아시아-의 기사를 보면, 재밌는 것들이 여럿 발견됩니다.

  • 채널뉴스아시아_Wireless piggybacking case sets precedent: experts

우선 이렇게 타인의 무선인터넷을 이용하는 트래픽이 전체의 약 10% 정도를 차지한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는 보안이 설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하지만 이렇게 인터넷을 이용했다고 하는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법을 가진 나라는 홍콩과 한국(응?) 뿐이며, 실은 이들 나라조차도 “해킹 방지”에 주목적이 있지 무단사용자체를 처벌하려는 목적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이런 정책(?)을 수행하는 이유는, 이런 디지털 범죄까지 처벌할 수 있는, IT 허브로서의 자존심을 내세우기 위한 것이라는 것…

▲ 이 정도면 충분한 것이 아닐까?
(미국 앤아버 대학앞의 에스프레소 로얄 카페에서)

모든 무단 접속을 범죄로 모는 나라는 없다

위 기사에서 지적했다시피, 무단 인터넷 접속 자체만을 가지고 처벌하는 법을 가진 나라는 없습니다. 허원제 의원은 자신이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미국의『컴퓨터 사기 및 남용방지법』, 영국의 『컴퓨터오용금지법』, 일본의『부정액세스 행위의 금지 등에 관한 법률』을 예로 들었지만, 이는 무조건 무선랜 보안 강화를 외치는 법률들이 아닙니다.

1986년에 제정된 미국의 『컴퓨터 사기 및 남용방지법(Computer Fraud and Abuse Act, 2001년 개정)』은 연방 컴퓨터에 대한 무단 접속과 컴퓨터 해킹, 또는 컴퓨터 패스워드 유통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법입니다. 일본의 『부정액세스 행위의 금지 등에 관한 법률』 역시 컴퓨터를 해킹할 목적으로 부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한 법안이구요.

제가 지식이 짧아서일 수는 있지만, 저는 아직 이 법률들에서 ‘무보안 무선공유기의 접속을 규율’할 수 있는 내용을 찾지 못했습니다. 위 기사에 나온대로, 해킹을 처벌하는 법이 있는 나라는 있어도 무선 인터넷 무단 이용 자체를 처벌하는 나라는, 제가 알기론, 거의 없습니다.

무선 인터넷 단속 규정이 가지고 올 위험성

서울경제 기사에 나온 방통위의 대안대로라면, 민주당 변재일 의원의 주장대로 이용자들은 꽤 많은 부담을 져야만 합니다. 당장 사설 공유기(?)가 무력화 될테고, 자신이 사용하는 모든 단말을 인증받아야만 합니다. 통신업체에서는 1회선당 인증 단말기 3대 이하- 그 이상은 추가 요금-이라는 정책을 내걸 가능성도 있겠지요.

길에서 무선 인터넷을 쓰기 위해선 추가 요금을 부담하거나, 새로운 서비스를 가입해야만 할 겁니다. 대부분 해킹이 아니라 잠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 무선인터넷에 남이 들어오는 건 무조건 안된다-라는 분은 공유기에 암호 거시면 됩니다.)

…말 그래도, 사람들에게 범죄를 핑계로 꽤 심한 부담을 지우려고 하는 겁니다.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그렇지만 자신이 쓰고 있는 무선 인터넷 회선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는, 그 자신이 결정할 일입니다. 보안이 문제라면 보안을 잘 설정하도록 홍보하면 됩니다. 인터넷 전화를 설치하시는 기사님들에게 서로 다른 암호를 지정해 주도록 교육하면 되구요. 그런데 왜 그것을 법으로 꼭 강제해서,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려는 걸까요?

…게다가 이런 조치는, 결국 “무선 랜에 접속하는 사람들은 다 범죄자가 될 우려가 있으니, 통제를 받으셈”하는 것과 하나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깨끗하고 정직하지만, 니네는 언제 나쁜 짓을 할지 모르니 통제하겠다-라는 발상. 그리고 그것이 어떤 문제를 가져오게 될지는 하나도 고려하지 않은 발상.

아까 얘기했던 Garyl Tan Jia Luo에 대해 한번 더 이야기해 볼까요? 당시 17세였습니다. 온라인 게임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부모님이 화나서 인터넷 모뎀을 뺏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새벽 2시에, 노트븍을 들고 길가에 나와 아무거나 잡히는 무선랜을 이용해서 컴퓨터 게임을 즐겼습니다. …. 그게 그 아이가 지었다고 하는 죄의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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