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여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인터넷 여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인터넷에서 만들어진 여론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루저 발언이나 예전에 지하철에 버려진 애완동물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아 이슈가 되었던 개똥녀 사건등도 모두 인터넷을 통해 이슈가 만들어진 사례다. 더 넓게는 곧 출시될 휴대폰인 아이폰 역시 인터넷 여론이 기업과 정부부처를 움직여 출시가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해 진 것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인터넷 자체가 가진 특징 때문이다. 인터넷에서는 다른 어떤 매체보다도 정보를 빠르고 신속하게,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가능하다. 누군가가 글을 써서 인터넷에 올리고, 그 글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면, 그 글은 삽시간에 퍼지게 된다. 때론 사건 사고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것도 가능하다. 몇 십 년 전에 국제 전화 한번 하기 위해서 한참 고생했던 것이나, 교환수를 통해서 전화가 연결되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발전이다.

다른 하나는 이런 인터넷의 특징들 때문에, 인터넷의 광범위한 보급과 함께 사람들이 교류하고 관계 맺는 방식이 변했다는 사실이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방법은, 인터넷을 모르는 사람들이 친구 관계를 맺는 것과 다르다. 예전에는 전화하고 가끔 만나서 밥 먹거나 술 한 잔 하는 것이 인간 관계의 전부였다면,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친구들과 거의 매일 함께 논다.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서로 대화하고, 트위터를 통해 정보를 나누며, 미니홈피를 통해 아이의 사진을 함께 본다.

마지막 하나는, 이런 생활방식의 변화 때문에 미디어의 기사 작성 방법이나, 미디어가 청취자들과 소통하는 방식 역시 변했다는 사실이다. 소설가 이외수씨가 트위터에 올린 짧은 이야기가 기사화되거나 메신저,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를 하는 것은 고전적인 방법에 속한다. 2PM 재범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 연예부 기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연예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한다. 다시 말해 인터넷은 사람들의 생활공간이 되었고, 때문에 인터넷이 기자들의 또 하나의 취재처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알겠다. 그렇지만 취재 방식이나 라이프 스타일이 바뀌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을까. 예전에 해오던 것이 그냥 더 편해졌다고 볼 수는 없는 건가

맞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현실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연장선에서 봐야한다. 인터넷을 현실과 분리되거나 동떨어진 공간으로 생각하는 것은 조금 곤란하다. 하지만 어떤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까 취재 방식의 변화가 있다고 했는데, 저는 완전히 변했다고 본다. 예전에는 기자나 편집장이 무엇이 중요한 사건인지를 판단해서 취재할 것을 결정하고, 그렇게 취재된 내용을 사람들에게 보도하는 시스템이었다. 그 과정에서 정보를 전달받는 사람들은 익명 속에 묻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반대다. 어떤 사건이 사람들에게 먼저 알려지고, 그것이 화제가 되면 미디어에서 취재를 한다. 어떤 사건이 더 중요하고 더 재미있는 지를 네티즌들이 먼저 결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까 말한 개똥녀 사건이나 루저녀 사건도 그렇지만, 급식 반찬에 맹물이나 다름없는 국만 담겨 있어서 문제가 되었던 여고 맹물 급식 사건, 신생아를 괴롭히며 찍은 사진을 올려 분노를 샀던 신생아 학대 사진 사건 등 예전 같았으면 언론에서 주목하지 않았을 사건들이 인터넷을 통해 이슈가 된 것은 수도 없이 많다. 얼마 전에 있었던 TV 연예 프로그램의 가짜 월척 사건이나 TV 고발 프로그램의 허위 취재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연예 프로그램이나 연예인들은 인터넷에서 살고 인터넷에서 죽는다. 다시 말해 평범한 사람들의 입소문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이슈가 되는 시대가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움직임이 한국만의 특징인가 아니면 세계적인 추세인가?

사실 인터넷에서 이슈가 되었던 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는 것은 한국만이 아닌 세계적인 추세라고 볼 수 있다. 다만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빨랐기에, 한국이 여러 가지 변화를 가장 먼저 경험했던 것은 맞다. 예를 들어 웃자고 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미국은 2008년에야 네티즌의 지지를 받은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지만, 한국은 이미 2002년에 네티즌의 지지를 받은 대통령이 당선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어느 나라나, 인터넷을 이용해 소통하는 사람들의 여론이 점점 부각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 다른 한국만의 특징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집합 행동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대규모 직접 행동이다. 2002년의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 때문에 일어났던 촛불 집회나, 작년의 미국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가 대표적인 사건이다. 이렇게 인터넷을 통해 대규모의 집회가 조직되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대 사회학과 장덕진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런 집합 행동의 배경에는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의 경험이 있다. 이때 경험한 대규모의 길거리 응원 경험 때문에 대규모 집회를 예전처럼 정치적 의사표현의 장이라기보다는 함께 즐기는 퍼포먼스로서의 집합 행동으로 여기게 되었으며, 그래서 비교적 쉽게 친구들의 손을 잡고 나오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점점 신문이나 TV 같은 매체들은 힘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아까 말했듯이 인터넷은 현실과 동떨어진 공간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현실과 밀접한 연관 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인터넷의 영향력이 나타날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 이슈가 되는 사건은 대부분 둘 중 하나라고 볼 수가 있다. 하나는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이 네티즌들에 의해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것이 언론에 의해 기사가 되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기존 매체와의 관계 맺기는 필수적이다.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무시하고 기사를 쓸 수도 없지만, 기사화되지 않으면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고 마는 것이 또 인터넷 여론이다. 따라서 상호 보완 또는 경쟁 관계에 놓여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미국 부시 대통령의 병역 비리 의혹에 대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2004년 미국 CBS 방송에서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의 병역 의혹을 제기한 적이 있었다. 이로 인해 전 미국이 떠들썩 했었는데, 이때 CBS에서 증거로 제시한 문서에 대해 먼저 의혹을 제기한 것이 바로 인터넷에 글을 쓰는 블로거들이었다. 이때 블로거들 사이에서 문서를 찍은 타자기의 활자체 모양까지 조사할 정도로 치열한 공방이 있었고, 그런 토론 끝에 병역 의혹 문서가 가짜라는 증거가 발견되었다. 이는 다시 미국 언론들을 통해 대서특필 되었고, 이로 인해 해당 방송국은 사과하고 의혹을 제기한 앵커는 사임하게된 일이 있었다. 이때 인터넷은 언론의 취재 대상이자 감시견으로 작동한 셈이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으면 인터넷 여론은 좋은 쪽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인터넷 여론의 힘이 강해짐으로서 생기는 부작용은 없을까?

인터넷 여론은 감정적이다. 어떤 논리적인 이유가 아니라 싫고 좋다라는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한번 나쁜 사람으로 찍히면 그에 대한 공격이 매우 무섭다. 이번 루저녀 사건 같은 경우엔 해당 학생이 다니는 대학의 홈페이지가 해킹까지 당했다고 한다. 가장 심한 문제는 프라이버시 침해다. 중국에서는 인육사냥이라고 불리고, 한국에서는 일명 네티즌 수사대라고 불리는데, 한번 찍히면 신상정보를 비롯해 그동안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왔는지 적나라하게 다 밝혀질 정도다. 심지어 예전 애인이나 부모님까지 들추며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까지 있었다. 솔직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세상에 완벽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아직 인터넷은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 정도의 나이밖에 되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필요한 규칙을 계속 배우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 역시 인터넷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계속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조만간 국민 모두가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이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시절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이미 전세계 인터넷 이용자의 숫자는 약 10억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고, 한국의 인터넷 사용자는 2700만명 정도나 된다. 섵불리 규제에 나서기 보다는 세상 살아가는 예의를 배우듯,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러운 윤리가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 우리 모두 좀 더 노력해야만 함은 당연하다.

* YTN 라디오 금요일 오후 8시 40분, 뉴스집중분석 - 클릭! 인터넷 이슈, 11월 27일 원고 입니다. 물론... 방송은 이 원고대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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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칼럼니스트. 디지털로 살아가는 세상의 이야기,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IT 산업이 보여 주는 'Wow' 하는 순간보다 그것이 가져다 줄 삶의 변화에 대해 더 생각합니다. -- 프로필 : https://zagni.net/about/ 브런치 : https://brunch.co.kr/@zagni 네이버 블로그 : https://blog.naver.com/zagni_ 이메일 : happydiary@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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