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 팝아트 그리고 인스타그램

무엇을 말해야 할지 너무 명백해서 난감해질 때가 있다. 앤디 워홀은 양아치다. 그러나 그냥 양아치는 아닌 것이, 세계(라 쓰고 뉴욕이라 읽는다) 미술계의 흐름을 완전히 비틀어 놓았으니 양아치치고는 전국구다.

앤디 워홀은 베이비붐 세대의 미국이 낳은 사생아다. 그는 그 당시 미술이 처해있는 상황과 앞으로 미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지를 너무 잘 알았다. 그래서 다른 이들과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미술 작품을 생산하고 사업을 통해 돈을 벌고 연예인 같은 삶을 사는 길을.

앤디 워홀로 인해 미술은 그동안 스스로 부정하고 있었던 자기 정체성,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자기 정체성을 인정하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는 미술 작품도 하나의 상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제 예술은 몰가치하지 않다. 오히려 부를 축적하고 계급적 구별 짓기를 위한 귀한 자산이다.

그렇지만 봐야 할 것은 앤디 워홀이라는 작가가 아니라 그가 만든 작품이고, 그가 작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물론 그의 삶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작품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도 상품으로 만든, 스스로 만들어낸 하나의 가상 속에서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https://www.independent.co.uk/arts-entertainment/art/features/andy-warhol-pop-art-30-year-anniversar


앤디 워홀을 잉태한 세계 – 뉴욕화파와 네오 다다

앤디 워홀은 그냥 태어나지 않았다. 다른 많은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앤디 워홀의 뒤에는 2차 세계대전과 파시즘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중의 뉴욕은 파시즘의 박해를 피해 이주한 사람들로 가득 찬 이민자들의 도시였다. 예술가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입체파의 대표적 화가 중 한 사람인 페르낭 레제(그리고 그로 인해 피카소), 추상 화가 피에트 몬드리안, 초현실주의 화가 막스 에른스트, 초현실주의 시인 앙드레 브레통과 같은 사람들이 한 도시에 모여있었다.

이들로 인해 뉴욕은 새로운 예술의 뜨거운 실험실이 되었으며, 그 에너지를 바탕으로 잭슨 폴록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뉴욕화파가 생겨나게 된다. 그 가운데 잭슨 폴록은 문화산업의 스타 시스템을 이용하게 된 최초의 화가이기도 하다(그는 그림보다 <라이프>에 실린 사진들을 통해 먼저 유명해졌다.). 뉴욕화파의 대표적 작가 중 한 명인 바넷 뉴먼과 마크 로스코, 클리포드 스틸은 잭슨 폴록과는 꽤 다른 스타일을 추구했는데, 그들이 원한 것은 바로 작품의 거대한 크기와 색 자체에서 오는 숭고함이었다.

앤디 워홀의 탄생에 영향을 준 또 하나의 흐름은 1952년경에 태어난다. 아방가르드 음악가 존 케이지(백남준의 예술적 아버지), 즉흥성의 안무가 머스 커닝엄, 추상표현주의 화가 로버트 라우센버그가 만나 이뤄낸 “해프닝”이다. 이 해프닝은,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 다양한 표현 양식을 뒤섞어 버림으로써, 그 이후 미적인 범주와 전통적인 문화적 위계질서(형식주의적 과거)를 동시에 뒤엎기 위해 ‘순간적 효과’를 노린 즉흥적 표현들이 앞다투어 등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잭슨 폴록 / 출처 https://www.mk.co.kr/news/culture/9465088



1960년 초 세계 각국에서 일어난 이 퍼포먼스는 형식주의적 과거와 결별하기를 원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욕구에 즉각적으로 부응해 이뤄졌다. 행위적 표출은 작품에 대한 숭배를 물리쳤으며, 생기 없는 사물로서의 예술의 존재감은 육체의 표현으로 대체되었다. 관객은 해프닝 속에 직접 끌려들어 옴으로써 수동성을 벗게 되었다. 여기서 하나의 예술적 태도가 생각나지 않는가? 맞다. 바로 다다-다. 현존하는 모든 형식에 대한 파괴, 저항을 위한 저항으로 규정되는 태도.

팝아트의 출현 역시 이런 다다적 태도를 이어, 문화적 위계질서와 미적 범주에 대한 반동에서 시작되었다. 팝아트, 앗상블라쥬, 환경조각, 신사실주의, 네오다다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비추상 계열의 미술들은 사실 하나의 이름으로 묶기는 어렵다. 대표적인 작가로 앤디 워홀을 꼽기는 하지만, 앤디 워홀 역시 다른 팝아트 예술가들과 동일한 계열의 작업을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들의 공통점은 현대 미국에서 생산되었던 ‘값싼 현대성 기호’들, 다시 말해 “단조로운 멍청함(monotonous stupidity)”, “우스꽝스러운 자세(the ridiculous postures)“, “스테인글라스적 태도(stained glass attitude)”라 평가 받던 미국 중산층 문화의 일상적 사물들과 사건들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 물건들이 무가치하고 의미 없는 대중들의 일상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앤디 워홀, 다다가 낳은 사생아

여기서 미술은 중요한 전환을 이루게 된다. 팝아트는 미술이 현실에 대한 묘사를 사진과 영화에 넘겨버린 이후, 지난 100년 동안 미술을 집요하게 괴롭혀왔던, 현실의 완성되지 않은 것, 남겨진 것, 말해질 수 없는 것을 찾으려 했던 미술적 태도를 박살 냈다. 팝아트는 이제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상품을 자신의 것으로 선택했으며 회화적 상품을 만들었다. 그로 인해 미술은 자신의 형식과 기준과 주제를 바꿔버리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 상품은 신화이자 가상, 사람이자 사물이자 사건이다. 팝아트는 대량생산의 공모자가 되었고, 그로 인해 쏟아진 비판에는 문화산업에 의해 지배된 일상을 자신의 방패로 삼아 반격했다. 이제 미술은 완전히 제작되는 상품이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전통적 전통적인 의미에서 작가는 완전히 내동댕이 쳐지게 된다. 작가는 더 이상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대신 작가는 스타 시스템에 의해 명예를 얻고 유행에 부합하는 상품을 팔아 생계를 이어간다. 팝아트의 작품들은 넘쳐나는 상품들에서 끌어낸 요소와 일상을 침범하는 이미지로 채워졌으며, 자기만족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앤디 워홀은 상품이었으나 상품이 아니었던 예술을 상품으로 끌어내린 팝아트의 흐름 속에서, 그 상품화를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작가다. 그는 서로 반대되는 부와 명성을 동시에 얻고 싶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다. 그를 위해 자신의 삶을 구성했고, 영화와 디자인과 초상화와 상품 조각이라는 자신의 작품들을 이중적으로 구성했다.

영화 팩토리걸 포스터



앤디 워홀이 자신의 미술 작품을 위해 선택한 방법은 크게 유행성 소재의 차용과 생산과정의 공장화로 요약된다. 마를린 먼로가 죽자 즉시 마를린 먼로의 초상화를 만들었고, 미국 대통령과 모택동과의 정상회담이 이뤄지자 모택동의 초상화를 만들었다.

그는 예술작품이 담게 될 유토피아의 모든 흔적들을 지워버리면서 형상을 간략화시켰으며, 광고의 기법을 차용하여 강렬한 색조와 새로운 레이아웃, 거대한 크기를 적용했다. 그는 다다의 태도를 이어받아 기존 질서를 조롱하려고 했던 팝아트 흐름을 전혀 반대의 것으로 돌려놓았다.

총체성으로 가장하려는 비총체적인 사회에 대한 전면적인 예술의 투항, 가장 비상품적인 것에 대한 가장 상품적인 면모의 발견. 그로 인해 미술은 하나의 확실한 문화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제 상품 생산의 구조에 깊이 갇혀있으면서도 그것을 부정했던 예술작품의 자율성은 진정성을 상실하게 완전히 폐기된다.

예술 안의 유토피아는 사라진다. 남은 것은 오직 자율성을 잃어버린 상품, 문화산업의 상품으로써의 예술작품일 뿐이다. 예술은 죽고 앤디 워홀만이 남았다. 그러나 거기에서, 우리의 앤디 워홀 작품 읽기는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작품은 스스로 이야기하지 결코 작가가 이야기하지 않는다.

책 앤디 워홀 일기 표지



비환영의 환영으로서의 예술

앤디 워홀의 작품은 우리에겐 하나의 환영이다. “스스로를 환영으로 설정함으로써 예술은 상품의 영역(예술도 거기에 포함된다.)이 비현실적인 것을 폭로하고, 따라서 환영이 진실에 봉사하게” 만든다. ‘아름다운 가상’이기를 포기한 현대의 예술은 아도르노의 말처럼 “죽음의 원칙인 물화에 미메시스적으로 따른다”.

현대 자본주의는 대량 생산과 복제라는 앤디 워홀의 작품 형식 속에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철저하게 상품으로 드러나는 미술을 목격한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작품들이 터무니없는 비싼 값에 거래되고, 그 비싼 값이 미술 작품의 가치를 나타내는 것을 알게 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태도는 그저 세 가지에 불과하다.

하나는 그 가치에 몰입해 소유를 욕망하거나, 다른 하나는 그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해 자신의 계급이 다른 이들과는 다름을 드러내고 싶은 스노브한 욕망을 충족시키거나, 아니면 작품에 대해 알면 알수록 느껴지는 고통이다.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 깨닫게 되는 것은 부조리함이다. 초라하게 늘어놓은 저 상자들과 의미 없이 다른 색깔이 칠해져 있는 저 작품들은 우리에게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론가와 미디어에 의해서 앤디 워홀의 작품이 위대하고 그러니 비싸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태도를 강요받는다.

앤디 워홀 라이브 전시 포스터


그것은 처음에는 자신의 상품 가치를 높여보려는 앤디 워홀에 의해서 형성되었으며, 나중에는 그의 작품을 사모은 콜렉터들과 그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갤러리와 평론가들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마지막엔 이슈 거리를 재생산해내는 미디어에 의해 조장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앤디 워홀의 작품 안에 투영된 현실의 객관적 시스템이다.

모든 것은 상품이며, 모든 상품은 산업의 이익을 위해 복무한다. 우리는 그들에 의해 통제되며 똑같이 생각하기를 강요받는다. 우리가 직접 분류할 것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그렇게 강요된 생각이 우리의 현실을 구성하는 사고의 프레임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하나를 깨닫게 된다. 문화산업의 생산자들이 끊임없이 강요하고 있는 것, 그리고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요구하는 것을.

그것은 “우울한 일상생활의 찬양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현실의 재현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세계에서 몇 가지 선택을 할 수는 있지만, 문화산업의 생산물들을 거부할 권리는 없다. 그 생산물들을 거부한다는 것은 세상의 일상적 삶에 편입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다. 시스템 속에서 나 자신은 무기력하다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사회를 떠나거나, 아니면 편입되어 체재를 따라가는 것 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앤디 워홀의 작품은 이제 개인의 개성은 ‘진정하고 특별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들 가운데 몇 가지를 선택해서 소비하는 것으로 드러나게 되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가운데 자기 자신은 상품이 되었음을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닌다.

앤디 워홀 더 비기닝 전 소개 영상 스크린샷



다르게 살기를 선택하는 출발점에 서서

앤디 워홀로 인해 뒤틀린 예술은 두 가지 변화를 낳았다. 하나는 내용적인 면에서 아이디어 중심의, 컨셉 아트로의 변화고 다른 하나는 형식적인 면에서 예술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어떤 대단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로 인해 오늘날 미술은 그 형식과 기준과 주제가 바뀌어가고 있는 중이다.

현대 미술은 더 이상 어떤 ‘형체’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어떤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가가 중요한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사실 앤디 워홀 형식의 팝아트는 그 이후 디자인의 영역으로 흡수되어 소멸되었다. 미술계에 적용된 스타 시스템은 작가 자신의 소재화로 돌려졌다. 

그렇지만 다다와 아방가르드, 추상예술의 유산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동시에 예술 개념의 확대는 문화산업의 전방위적인 확산과 더불어 “삶을 어떻게 예술적으로 포장할 것인가”라는 슬로건으로 포장되면서 사람들의 일상 속에 단단히 침투해 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지의 끝없는 반복/재생산 속에 모든 것을 그저 환상이라거나 차이의 유희라고 뇌까렸던 포스트모던적인 개념도 점점 정리가 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작품이 보여주는 객관적인 시스템, 그 시스템이 보여주는 비현실을 깨달을 것인가, 아니면 그 현실에 투항해서 살아갈 것인가이다.



… 자,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 갑자기 왜 앤디 워홀? 하시겠지만… 2008년에 썼던 글입니다. 그때 앤디 워홀 전시가 있었거든요. 그리고 2012년, 보그 코리아에 보낸 글에선 이렇게 썼습니다.

한물간 팝아티스트로 여기지만, 돌이켜보면 앤디 워홀은 미래를 자신이 있던 자리에 가지고 온 예언자나 마찬가지다. 그는 예술이란 형식을 통해 테크놀로지가 상품이 된 시기에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 지를 미리 실현했다. 

농담이냐고? 아니다. 녹음기는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으로 대체 되었고, 유튜브와 유스트림, SNS는 온갖 자잘한 우리의 삶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중계하고 있다. 

내용은 다르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은 앤디 워홀이 생전에 그렇게 보이기 위해 포장했던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 21세기의 대도시에서 우리는 모두 팝아티스트다. 

물론 우린 아직 미숙하다. 테크 가젯들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쇼핑, 정보 검색, SNS등은 이미 너나할 것 없이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들은 아직 나를 보여주고 표현하는 형식으로 자리잡고 있지 못하다. 

우리는 팝아티스트가 됐는데 일상은 아직 예술이 되지 못했다. 어차피 그것들은 점점 멋진 앱과 기능이 등장하면서 쉽게 표현할 수 있고, 쉽게 평범해져 버리겠지만.



인스타그램 같은 SNS가 등장하며, 결국 우리 모두는 앤디 워홀이 되어버렸단 말입니다. 아니, 우리 모두라고 착각했는데, 실은 (쓰다가 버려지는) 마이크로 인플루언서가 가득한 세상에서, 그저 팔로워로 살고 있다-는 게 맞는 말이겠네요.

* 낚였다-고 생각하신 분이 계시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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