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무죄, 법원의 상식적 판단을 환영하며

언젠가부터, 우리가 당연하다 알고 있었던 일들이 고발당하는 일이 잦아지게 되었다. 시국선언, 합법파업, 촛불문화제, 노랫말, 현장 기자회견, 인터넷 글쓰기, 언론의 정권 감시(watch dog).. 이제까지 별다른 문제 없었던 일들이, 갑자기 문제가 되고, 사람들이 연행되고, 구속되고, 파면되고, 좌천당하고, 방송금지되고, 고발당하고, 누군가에게 협박을 당했다.

정권은 사람들을 고발하고 협박하며, 길들이려고 한다. 대통령이 정한 것은 바꿀 수 없는 것이니, 너희들이 따르던지 잡혀가던지 선택하라던 사람들. 어차피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잡아넣고, 고발하면 위축되는 것이 사람의 마음. 그런 위협과 공포 속에 만들어지는 자기 검열의 체계, 그리고 길들여짐.

…맞다. 이들은 우리와 이야기-하고 싶다기 보다는, 협박-하고 싶었던 것이 분명하다. 정권이 하는 일은 옳으니, 무지렁뱅이인 너희들이 우리의 심오한 뜻을 알리 없으니, 따라오거나, 좌빨이 되어라. 어제 연세대 송복 교수가 그랬다던가. 국민의 25% 정도는 좌빨이고, 이들은 사회통합의 대상 조차 아니라고.

맞다. 그들의 국민은,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침묵하는 사람들뿐. 그들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국민이 아니라 비국민이었다. 비국민은 통합이 아니라 교화/교정 되어야 할 대상. 그리고 그 비국민들을 사냥하기 위해 가장 앞에 나선 것이 경찰과 검찰. 삼권분립은 무너졌고, 국민을 위해 있어야 할 사람들이 국민들에게 이빨를 드러내며 으르렁댔다.

법원, 상식의 손을 들어주다

…그런데, 그 가운데 법원이 상식의 손을 들어줬다. 아니, 법원은 그냥 자기가 할 일을 했다. 그러니까 여당과 정부는 거품을 물려 법원을 개혁해야 한다고 나선다. 미디어법때도, 종부세 위헌때도, 아무튼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올 때는 법원을 존중하고 따르자던 사람들이, 불리한 판결이 나오니 법원을 개혁해야 한다면서 칼을 들이댄다.

이번 PD수첩 무죄판결도 별로 상식에 어긋난 것이 아니다. PD수첩 PD..-_-;;의 말대로,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검찰의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했다. 재판부가 허위사실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을 내린 사안은 다음과 같다.

  • “다우너 소들이 광우병에 걸렸거나 걸렸을 가능성이 높다”
  • “아레사 빈슨인 인간 광우병(vCJD)에 걸려 사망했거나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 “한국인은 광우병에 취약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
  • “협상 결과 30개월령 미만 쇠고기의 경우 특정위험물질(SRM) 5가지 부위가 수입된다”
기존에 정지민씨를 비롯, 검찰에서 일부러 왜곡했다고 제기했던 부분이 모두 부정된 셈이다.

PD수첩 무죄는 예상된 결과

처음부터 이런 결과를 예상하긴 했었다. 검찰이 하도 거세게 밀고나가는 바람에 문제가 있긴 있는건가? 하고 주춤하고는 있었지만, 이제까지 이런 것을 보도했다고 해서 방송 제작진이 고소 고발 당하는 사태 자체를, 우리는 이전에는 전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PD수첩의 도덕성을 흔들어놓고 싶었겠지만, 그래서 시범케이스로 만들고 싶었겠지만, 반대로 PD수첩의 신뢰성만 더 높여준 셈이다.

…애시당초 수사할 필요가 없는 사건을 무리하게 물어뜯은 검찰의 자충수다.

이제 1심 판결이 끝났다. 항소는 당연할 거고, 대법원까진 기본으로 가져갈 것만 같다. 그렇다고 이미 나올 근거가 다 나온 이상, 별달리 판결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지만… (PD수첩 정도의 내용도 보도하지 못한다면, 그때부턴 언론은 없고 관보만 존재한다고 봐도 좋겠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끊임없는 무죄 판결이 정권, 또는 검찰의 무리수를 보여주는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그 다음이다. PD수첩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다음 개편때 PD 수첩을 없애버리면 된다. 맘에 안드는 PD는 쫓아내면 된다. 맘에 안드는 작가는 고용하지 않으면 된다. 이미 방문진은 MBC 경영권에 직접 간섭할 것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 문제를 법리 문제가 아닌 이념 문제로 반드시 발전 시킬 것이다. 법원을 좌빨이라 공격하며, 맘에 안드는 판사들을 솎아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국민을 협박했던 그대로 법원을 협박하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 정부는 사기업인 국민은행의 회장 선임에까지 손을 쓰고 있는 상황이다.

무죄판결을 아무리 받아도, 정연주 사장은 복귀하지 못했고, 강기갑 대표는 이념 공세에 시달리고, 해직된 공무원과 교사들도 여전히 거리에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 뿐인가 KBS 감사였다가 교수자리까지 잃었던 신태섭, KBS 감사를 거부했던 전윤철 전 감사원장…등, 그동안 짤리고 몰림 당한 사람들은 또 얼마인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원래 하던 일을 할 수 있기를

그들을 제자리에 돌려내고, 지켜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무죄 판결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원래 있었던 자리로 돌아가 원래 하던 일을 할 수 있기를. PD수첩 무죄 판결을 보면서 불안하게 빌어보는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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