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매매여성들의 큰언니 이옥정

트윗에 올라온 글을 읽다가, 오마이뉴스에서 올린 글을 봤다. 성매매여성들의 쉼터 ‘막달레나의 집’ 대표 이옥정 님에 대한 이야기가 실렸다. 글을 읽는 데, 뭔가 가슴 한구석이 서글프게 아프다. 어이쿠, 나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여기 있었다.

…이렇게 담담히, 이렇게 질기게 누군가와 인연을 맺기도 참 힘든 일일텐데…

이옥정 대표는 용산에서 장례전문가로 통한다. 요즘이야 성매매여성에 대한 인식이 나아졌지만 초기엔 달랐다. ‘창녀 하나 죽는 것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업주들은 아가씨가 낙태수술을 하면 부정 탄다고 굿을 할 정도였다. 옆집에서 사람이 죽어도 몰랐다. 약물중독으로 죽고 암으로 죽고 간경화로 죽었다. 용산에서 죽음은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가족도 없고 빈소도 없어 시신실 앞 복도 의자에서 기도를 드려야했다. 비참했다. 그냥 둘 수 없었다. “아무도 하는 사람이 없어서” 당연히 나설 수밖에 없었다.

“한 영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니까 외면하지 못했어요. 병이 생기면 우리가 무료병원을 알선해줘요. 병문안을 다니다가 죽으면 우리가 챙겨야죠. 한 사람 두 사람 하다보니까 나중에는 임종할 때쯤이나 초상만 나면 연락이 와요. 우리 애들 말고도, 동네 건달, 업주, 업주 시어머니까지 다 했죠. 영정 들고 관 들 사람이 없으니까 여자들끼리 들잖아요. 어디가도 티가 확 나고. 벽제화장터를 한 달에 서너 번 가니까 저희보고 ‘단골손님 왔다’ 그러더라고요.”

좋은 추억 만들기. 이옥정 대표는 그것을 소임으로 알았다. 결혼식이나 돌잔치 같은 중대사에 발 벗고 나서는 건 물론이고 소소한 추억도 놓치지 않았다. 신부님이나 지인들 모임에 꼭 그녀들과 같이 나갔다. 조건부 만남에 익숙한 그녀들에게 순수하고 편안하게 사람 만나는 기회를 주었다. 또 뮤지컬, 영화, 음악회를 보여주고 여행이나 캠프에 데려갔다. 감성체험을 통해 세상과 접점을 넓히고 자존감을 키워주기 위함이다.

“막달레나에 와서 전부 문제를 해결하는 건 아니에요. 애들이 다시 성매매현장에 안 갔으면 좋겠지만, 법을 만든 정부도 못하는 일인데…어렵지요. 저는 이런저런 끌어들이는 방법을 연구해요. ‘여기서는 니 얘기뿐이다. 또 와라’ 그러죠. 좋은 추억이 있으면 돌아오기가 더 쉽지 않을까 생각해요. 또 설사 오지 않더라도 자기인생에 행복했던 한 시절이 있다는 게 살면서 큰 힘이 되잖아요. 오고 안 오고는 어차피 본인 선택이고.”

지금은 아니다. 잘 돼서 떠나든 배신하듯 떠나든 이별이 서툴러 가슴은 철렁하지만 웃으며 보낸다. “돈 많이 벌어서 맛있는 거 사와라” 다독인다. 쾅 소리 나게 문 닫지 않았다. 그랬더니 인연이 지속됐다. 떠난 후에도 전화로 큰언니의 안부를 챙기고 주말에 들러 점심을 먹고 간다. 막달레나집은 누구라도 언제라도 맘 편히 머물 수 있는 소중한 나의 집이 되었다.

“그게 누가 됐든 행복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삼겹살 먹고 행복을 느끼면 애들도 삼겹살 먹게 해주자. 한우는 아니더라도 삼겹살 수준으로 올려주고 싶어요. 양적으로 다는 못해주죠. 다만 내가 10명은 할 수 있는데 1명 빼고 9명 품으면 죄지만 내 능력만큼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성매매에 대해 정답을 못 찾겠어요. 개개인의 삶이 다른데 특정한 하나의 입장으로 모을 수는 없어요. 성매매 피해자만 볼 게 아니라 한 사람 삶의 역사와 미래를 다 봐야 해요. 그래서 저희가 생애사를 연구한 거죠. 가까이서 보면 그 일밖에 달리 사는 방법이 없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나는 애들에게 성매매가 나쁜 거다, 하지 말라고 말해본 적이 없어요.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얼마나 힘이 드느냐. 성매매는 고통스럽기에 안 해야 한다.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죠.

성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육체 한 부분인데 파는 사람은 인격을 파는 거예요. 사는 사람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자기 것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걸 요구하고 제3자도 그렇게 보잖아요. 성매매여성의 인격이 파괴되고 사회에서는 죄인으로 몰아가요. 그런 세상이 안 돼야 한다는 거죠. 나는 탈성매매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애들이 인격 무시당하지 않고 존재감 느끼고 살길 바랄 뿐이에요.”

삶은 그렇다. 탄생조건부터 복잡계 수준의 문제가 얽혀있다. 모두가 하나의 모범답안을 향해 달려가는 게 아니라 저마다 숱한 시도와 물음으로 고유의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 성매매여성들은 더 쉽지 않다. “부모형제복 재물복 남자복 자식복, 다 없다.” 삶을 긍정하기조차 어려운 여건이다. 그런 그녀들이 “나는 친구복은 있다”고 얘기한다. 그 상대는 막달레나집이다.

심지어 “나 죽으면 장례 치러 달라”고 서슴없이 죽음을 내맡긴다. “미친년, 내 나이가 몇 인대. 니가 나 죽으면 해줘라!” 육자배기 같이 걸쭉한 구박세례를 받는다. 그러면서도 “제대로 된 놈만 골라 와라. 닭 잡아줄게”라며 살갑게 말하는 친정엄마가 곁에 있다.

‘큰언니’는 행복하다. 돌이켜보면 넘치지는 않았지만 필요한 만큼은 생겼다. 겨울이면 연탄이 쌓이고, 김장철이면 배추가 나왔다. 성탄절에는 빵과 고기가, 명절에는 내복과 양말이 딱딱 들어왔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일용할 양식이 주어졌다. 대문 열고 들어오는 자, 모두가 귀한 인연이었다. 한 명 한 명 좋은 추억을 심어주려 마음을 내다보니 가장 많은 추억을 가진 부자가 되었다. 상처를 보듬고 약점은 보완하고 강점은 북돋우는 과정에서 더불어 영혼이 성장했다. 한 사람의 삶으로써 충분히 감사하다. 막달레나공동체 이옥정 대표는 방긋 웃으며 말한다.

“그거면 됐다. 나는 잘 살았다.”

아는 사람은 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살갑게 대해주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지를. 생각보다 우리는 쉽게 변하고, 인연을 내치고, 점점 멀어진다. 어쩌다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면서도, 헤어지고 나면 연락 한 번 먼저 하기가 쉽지 않다. 즐겁게 웃고 떠들고 놀다가도 힘든 일이 생기면 도망치기 일쑤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찾는다. 찾고 찾고 또 찾는다. 연애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상처 받지 않을 거라고, 믿고 이야기할 사람을 찾는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그 끝에 남는 것은 공허함이다. 결국 세상엔 나밖에 없구나, 나 혼자 하는 수 밖에는 없구나… 하는 서글픈 기억.

… 휴대폰에 적혀있는 수백개의 전화번호를 앞에 놓고서도, 편하게 전화 걸 사람 하나 찾지 못해 막막했던 기억, 누구나 한 번 쯤은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사람이 있었다. 정말 말 그대로 오지랍 넓은 언니가 한 명, 여기 있었다. 그 오지랍을 인정이라고 불러도 좋고, 측은지심이라 불러도 좋겠다. 근데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야 오지랍이 발동해 주제넘게 나서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걸 계속 이어가고 끌어가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진짜 마음을 열기까지 쌓여야 하는 시간은 또 얼마나 길던가. 다들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떠난다. 그런데 이 언니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이 또 상처받을까봐 마음 문을 닫아거는데, 에이- 그러지 마-하며 오지랍 넓게 그 마음 문 앞에서 기다린다. 마음 문을 억지로 열어젖히는 것도 아니고, 그 앞에서 밥상 차려놓고 기다린다. 내치고 도망가는데 괜찮아-하면서 기다려 준다. 먼저 상처 받았을 지도 모를 사람이 괜찮아- 하면서 먼저 말을 걸어준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25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아이쿠. 그 마음 씀씀이에 내가 다 식겁할 정도다. 이 정도면 오지랍도 보통 오지랍이 아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깨닫는다. 내가 이 땅에서 미련을 못버리고 있는 것은, 이 땅 어딘가에서, 이런 오지랍 넓은 언니 같은 사람들이 곳곳에서 숨어있기 때문이란걸.

그래서 고맙다. 그냥… 고맙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이렇게 살아도 괜찮겠구나-하고 살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리고.. 그냥 이렇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서, 또 고맙다.

“같이 먹어야 친해져요. 이것저것 다 떠나서, 나는 먹는 게 너무 좋아요. 먹을 게 없으면 화가 나고 사는 게 재미가 없어요. 하하.”

…역시 인생의 진리는 먹을 거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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