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0일부터 19일까지,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는 SXSW(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2017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지난 2016년부터 이 지역에서 ‘우버’와 ‘리프트’가 사업 철수한 관계로, 처음에 들려왔던 많은 소식은 ‘왜 우버나 리프트가 없는 거야!’이긴 했지만…
* 운전사 사전 지문 등록 법안 문제로 인해 우버와 리프트가 오스틴시에서 작년에 철수함
SXSW, 혁신과 창의의 최전선
SXSW, 솔직히 익숙한 이름은 아니다. 하드웨어보다는 콘텐츠 중심의 행사인 탓이다. 아직 잘 모르는 사람도 많고, 북미 최대의 음악 축제라고만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1987년에 음악 축제로 시작했으니까, 그렇게 아는 것도 당연하다.
그럼 무엇일까? 나는 이렇게 말한다. SXSW의 진짜 정체는, 음악과 영화, 게임, 인터랙티브 미디어, 스타트업 기업 등이 함께 어우러지는, 정말로 트렌디하고 재미있는 페스티벌이라고. 작년에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참가해 직접 기조 연설을 하기도 했을 정도다.
음악과 영화, IT 기술이 어떻게 하나의 축제로 묶여 있을 수 있냐고? 이 셋을 묶어주는 것은 딱 하나다. 작년에 한국에 왔던 SXSW의 총괄 기획자 휴 포레스트가 밝힌 핵심 키워드, 바로 ‘창의성(Creativity)’이다. SXSW에서는 엔터테인먼트와 기술이 녹아 하나가 된다. 여기선 트위터와 에일리언이 다르지 않다.
트럼프, SXSW에 정치를 불러내다
혁신의 최전선에 있는 SXSW라도, 도널드 트럼프를 피해 갈 순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춤추고 노래하고 영화 보고 신기술을 선보이는 축제에 정치를 불러냈다. 페이크 뉴스, 헤이트 스피치, 아무튼 최근 인터넷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모든 것들을 올해 SXSW 콘퍼런스는 정면으로 다뤘다.
그중 확실히 눈에 띄는 주제를 가진 콘퍼런스는 2개였다. 하나는 극단주의와 증오 발언에 맞서 인터넷을 되찾자는 콘퍼런스. 페이스북의 정책 결정 책임자인 모니카 비커트는, 누군가가 욕을 했다고 똑같이 욕을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긍정적인 이야기를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하나는 트럼프 시대 미디어의 역할에 다룬 콘퍼런스로, 이 자리에 참석한 뉴욕타임스의 딘 베케이 편집국장은 트럼프 정권에서 미디어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해질 것이라며, 가짜 뉴스를 퍼트리는 언론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재미있는 것은 트럼프 집권 이후 뉴욕 타임스 구독자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늘었다고.
스마트 의류, 자율 주행차, 제미노이드
SXSW에는 구글 같은 거물들도 당연히 참가한다. 구글이 이번에 선보인 것은 스마트 재킷. 지난 2015년 리바이스와 제휴를 맺은 이후 매년 시제품만 선보이다, 드디어 올 가을부터 판매되는 상용 제품이다. 가격은 350달러인데, 뭐랄까, 일종의 재킷 형태의 스마트 워치처럼 보인다.
웃긴 것은 스마트 워치 350달러라고 하면 비싸게 느껴지는데, 재킷 가격이 350달러라고 하면 그럴 수도 있겠네-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 브랜드 붙은 옷값이 워낙 비싸게 나오는 탓이다. 다시 생각해 보니 정말, 이름 있는 옷값은 꽤 비싸다. 이름 있는 시계는 우리랑 상관없는 세계에 존재하는 물건 같지만.
작년에 참가했던 일본의 로봇과학자 이시구로 교수의 제미노이드 역시 올해도 볼 수 있었다(인간과 흡사한 모습을 가진 로봇을 제미노이드라고 부른다). 이번엔 아이돌 같은 모습의 여성형 제미노이드와 골격이 드러난 형태의 로봇 리플리 S1을 선보였는데, 대화 내용이 … 대체 이시구로 교수는 어떤 것을 원하는 걸까.
하나도 새롭지 않다고? 딩동댕. 사실이다.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올해 SXSW 인터랙티브의 핵심 트렌드는 인공지능, 가상현실, 교통기술, 헬스케어, 스타트업 등이 손 꼽히지만, 작년과 비교해도 올해 열린 다른 행사와 비교해도 별로 다르다고 하기 어렵다…. 문제는 변화의 규모와 속도일 뿐.
예를 들어 올해 SXSW 액셀러레이터 어워즈에서 최고 혁신 기술상을 수상한 헬릭스웍스는 DNA를 합성하는 방법으로 디지털 정보를 저장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회사다. 아직 초기 단계라 성공이나 실패를 논하기는 이르지만, 이미 생물학적 방법으로 정보를 저장하는 미래 기술은 우리 세계에 다가왔다.
개인적으론 삼성전자에서 내놓은 ‘베드타임 VR’ 과 음악 연주를 즐길 수 있는 ‘뮤직룸’이 눈에 확 들어왔다.
먼저 ‘베드타임 VR’은 가상현실 속에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읽어주며 함께 겪을 수 있는 서비스다.
나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애도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어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안다. 베드타임 VR은 그런 마음을 건드렸다. 나는 음악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럴 듯하게 악기를 연주하고 싶은 욕심은 있다. 뮤직룸은 그런 마음을 건드렸다.
이런 식으로,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기술부터 당장 상용화할 수 있는 기술까지, 우리가 꿈만 꾸던 것들과 꿈도 꾸지 않았던 것들이 점점 우리 삶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미래는 현실이 되고 있다.
그렇게 SXSW 2017이 열리는 오스틴에선, 신나는 음악과 영화, 다양한 홍보 활동…;; 속에 미래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었다. 점점 자주 보게 되는 만큼, 기술을 처음 만났을 때 받게 되는 충격은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