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두 달 가까워갑니다. 일본이 한국에 대해 무역 제재 조치를 시작한 지. 그동안 불매운동, 지소미나 종료를 비롯해, 참 많은 일이 있었죠. 오늘은 간단히, 무역 분쟁을 우리가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간단한 상황 정리
먼저 간단하게, 시간순으로 확인해 볼까요? 사건은 2019년 7월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이 플루오린화 수소(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불화 폴리이미드), 이 3가지 소재의 수출을 제한하면서 일어났습니다. 지금까진 3년마다 한번씩 허가를 받으면 됐는데 이젠 수출할 때마다 개별 허가를 받아야 하는 품목으로 바꿔버렸죠.
… 그리고 오늘(2019년 8월 26일)까지, 포토레지스트를 제외하면 수출 허가를 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8월 2일에는 2차로, 아예 대한민국을 화이트 리스트, 신뢰할 수 있는 수출 대상 국가 목록에서 배제합니다. 영향 받는 품목은 기존에도 허가가 필요했던 민감 품목 230여개에 더해, 비민감품목 850여개, 합쳐서 모두 1100여개 정도가 됩니다. 형식상으론 일본 자국내 회사들에 대한 규제라서, 일본 회사들이 더 힘들어진 거긴 한데.
… 과연 다른 화이트 리스트에 속하지 않았던 국가 정도로라도 허가가 날까요? 문제라면 이게 문제죠. 말로는 통상 90일 정도가 걸리는 거지 수출을 안하는 게 아니다-라고 하지만, 이미 일방적으로 무역 제재를 가하고, 한국 기업을 불확실한 상황에 빠트려버린 이상, 믿을 게 하나도 없어요. 하아.
사건이 일어난 이유
이번 일은 왜 일어났을까요? 일본 측 공식 입장은 국가 안보입니다. 안보상 이유로 수출 관리를 재검토 했을 뿐, 수출 규제가 아니라는 거죠. 정치적 문제로 인해 수출 규제를 했을 경우 WTO 규범에 걸리기 때문에 그런 거라 보여지는 데요. 다만 일본측 공식 입장을 제외하면 한일을 비롯해 다른 나라 언론에서도 모두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로 인해 이뤄진 보복 조치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1월 11일 일본 참의원이 한국에 불화 수소 수출 금지를 요청한 적이 있고, 3월에는 아소 다로 부총리가 일본 국회에서 강제 징용 판결 관련, 한국에 대한 제재를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얘기한 바 있습니다. … 아니 일본 내부에서도 이게 강제 징용 피해자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라고 다들 말하고 있는 상황. 아는 사람은 다 아는데 일본 정부만 아니라고 하는 상황. 홍길동도 아니고…
포토 레지스트는 일단 수입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를 만들 때 회로를 새기는 공정에서 사용되는 소재입니다. 필름 감광액처럼, 그려진 회로를 웨이퍼라는 기판에 새길 때 사용합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정확하게는 EUV(극자외선) 포토레지스트인데요. 한국에선 일반 D램이나 낸드플래시를 만들 때는 안쓰이고, 최신 7nm 시스템 반도체를 만들 때 사용하고 있습니다. 최근 출시된 갤럭시노트10에 들어간 프로세서가 이 포토레지스트를 사용한 7nm 공정에서 만들어진 칩입니다.
이 소재는 일본에서 8월 7일과 19일 두 번 수출 허가를 내줬습니다. 원래 좀 더 일찍 들어올 예정이었는데, 수출 허가가 늦어지는 바람에 늦게 들어오게 됐는데요. 사실 이건 허가를 안내주기가 어렵습니다. 군사 목적으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A라는 회사에서 수입하는 포토레지스트는 사실상 그 A라는 회사와 함께 개발한, 그 회사 제조공정에 최적화된 제품이거든요.
일본 업체가 90% 이상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일본 회사도 A라는 회사에 수출하지 않으면 판로가 막히게 됩니다. 다른 회사에 팔 수가 없어요. 다행히 일본이 아직 해외 지사나 합작사를 통한 판매는 막지 않아서, 한국 합작사나 다른 나라를 우회해서라도 계속 공급받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불화 폴리이미드, 이상 없음
불화 폴리오이드는 휘어지는 디스플레이에서 커버 유리 대신 사용되는 소재입니다(그냥 PI라고도 부릅니다). 이 소재 역시 군사 무기로 쓰일 우려가 없는데 왜 등록됐는지 모르겠는데요. 처음에는 갤럭시 폴드나 폴더블 TV 등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직 이로 인한 문제는 생기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에 규제 대상이 된 품목은 불소가 10% 이상 사용된 폴리이미드인데요. 이게 좀 난감한게, 일본 칼럼니스트가 쓴 글을 보니 이런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가 없다고 합니다. 한국에선 액상 형태로 된 PI를 들여와서 그걸 국내에서 하드 코딩한 다음 사용하는데요. 액상 형태 폴리이미드는 규제 대상이 아닙니다. 일반 폴더블 디스플레이면 이미 한국에서 만든 것을 쓰고 있고요.
불화 수소, 가장 큰 문제
반면 불화 수소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사실 가장 큰 문제입니다. 반도체 제조 공정은 적게는 400, 많게는 1000 개의 공정으로 나뉘어져 있고, 그 공정이 대부분 회로를 새기고, 새긴대로 깍고, 깍은 다음 씻는 공정이거든요. 씻는 작업은 전체 제조 과정의 15% 정도를 차지하는 중요 공정입니다.
고순도 불화 수소는 이 세정 공정에 사용하는 소재인데요. 상태에 따라 액체 불화 수소와 기체 불화 수소 두 가지 형태로 나뉩니다. 그동안 액체 불화 수소는 한국 제품을, 기체 불화 수소는 일본 제품을 사용하고 있었는데요. 다른 회사나 일본 자회사에서 어떻게든 공급받을 수도 있고, 직접 만들겠다는 한국 회사도 있긴 한데, 지금처럼 계속 허가가 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 당장 해결할 수 없거든요.
반도체 제조 기술이 뛰어나다는 의미는 ①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 ② 불량률이 낮다(수율이 높다)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단가가 비싼데다 생산량이 많기에 불량률이 조금만 달라져도 수십억원 이상이 왔다갔다 합니다. 깨끗하고 불순물이 없는 불화수소를 쓰면, 수율이 높아집니다.
다만 아직 일본 수입 소재만큼 순도가 높은 대체품이 많지는 않습니다. 회사마다 만드는 비법이 다 다르기에, 새로운 소재를 쓰게 되면 그에 맞춰 제조공정을 다시 조정해야 합니다. 그 때문에 대체품을 찾아도 최적화시킬 때까지 시간이 1년은 걸릴거라 봅니다. 그때까지 최대한 우회 수입 경로를 찾아봐야 합니다.
앞으로 해야 할 일
앞으로 어떻게 될까? 솔직히 장담할 수 없습니다. 쉽지 않은 시간이 이어질 거다-라고만 말합시다. 다만 좋은 점이라면, 그동안 신경 쓰지 못했던 소재 산업 육성이나 국산화, 연구인력 부족 등의 문제가 이번에 표면으로 드러났고, 그런 부분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되는 계기가 됐다는 거죠.
당분간 이 문제에 계속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만큼, 연구자 지원과 부품, 소재 산업 육성에 많은 후원을 해줬으면 좋겠다-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소재 회사를 하청 회사가 아니라 파트너로 여기려는 움직임도 생기는 걸 좋게 보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잘 몰랐지만 의외로 괜찮은 중소 기업이나 기술 기업이 숨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어차피 닥칠 위기였다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세계 경제가 크게 요동치고 있는만큼, 전의 ‘효율성’ 논리로는 이 상황을 타계할 수 없습니다. 이 기회에 소재 공급망을 다각화해야한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다만 일본과의 무역 분쟁은 상당 기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로 인해 중소 기업들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도 꽤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