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내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 가변 가격제)이란 말이 있다. 시장 상황에 따라 가격을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일을 말한다. 역경매, 맞춤 가격, 할인 티켓 판매, 실시간 흥정 등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만, 국내에서 가장 친숙한 형태는 항공권이나 호텔 숙박 요금이다.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나타난 가격 정책처럼 보이지만, 실은 조조 영화 관람료 할인, 음식점이나 술집의 ‘해피아워’도 넓은 범위의 다이내믹 프라이싱이라 부를 수 있다. 숙박 및 외식 산업, 여행, 엔터테인먼트, 전기나 에너지, 교통 같은 산업에서는 일반화된 관행이라고 봐도 좋다.
수요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며, 달라진 가격은 수요를 조절하는 역할도 한다.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적용한 산업은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가치’를 판매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놀리느니 싼값에라도 자리를 채우는 것이 낫다-라고나 할까. 고객이 적어도 비행기는 떠나야 하고, 식당 문은 열어야 하며, 영화는 틀어야 한다.
고정 비용은 계속 지출되니, 어쨌든 자리를 채우는 게 이익이다. 반면 전체 물량이 한정되어 있어서 사람이 몰릴 때면 비싸게 받을 수도 있다. ‘에어비앤비’ 등에 다이내믹 프라이싱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욘드 프라이싱’이라는 회사는 가변 가격제 책정 시 매출을 40%나 늘릴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가변 가격제 보급에는 컴퓨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60년대 이전에는 예상되는 고객 및 재고 등을 예측하고 관리하기가 어려웠다. 항공 업계에서 먼저 전산 시스템을 도입해 그 효율성을 입증하고, 공급망 관리를 벗어나 소비자 판매에까지 쓰일 수 있게 되면서 경쟁적으로 보급됐다.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인터넷 시대에 접어들면서 다시 한번 영역을 확장한다. 정보 비대칭에서 벗어난 소비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조건에 맞는 다양한 가격을 비교/확인할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맞춰 온라인 쇼핑몰, 저가 항공사, 공유 경제 서비스 등이 등장하면서 다양한 영역에서 가변 가격 정책이 쓰이게 됐다.
유가상승과 세계 금융 위기로 인해 YOLO와 같은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면서도 가격에 민감해진 소비자가 다수 등장한 것도 한몫했다.
퍼지고 있는 다이내믹 프라이싱
앞서 봤듯이 가변 가격제는 관계망 기반 경제, 또는 지식 기반 경제 산업의 성장과 맥을 같이 한다. 소비지가 원하는 가격대를 제시하면 거기에 맞춰 공급자들이 상품을 제시하는 역경매 방식을 처음 도입한 ‘프라이스라인’, 경쟁사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해 최저가를 제시하는 ‘아마존’,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화하는 탄력 요금제를 도입한 ‘우버’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정책은 소비자에게도 긍정적 반응을 얻었다. 저렴하게 원하는 것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프라이스 라인은 현재 세계 1위의 O2O 기반 예약 서비스 그룹이 되었고, 아마존은 미국 온라인 마켓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으며, 우버는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차량 서비스 기업 중 하나다.
최근에는 전 산업이 디지털화되기 시작하면서, 인터넷 경제를 벗어나 오프라인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기반 기술은 빅데이터를 인공지능을 이용해 분석하는 예측 시스템이다. 작년 12월 일본 도쿄에는 편의점 실험시설이 만들어졌다. 일본 편의점 로손에서 만든 ‘로손 이노베이션 랩’이다. 이 시설은 무인 편의점 기술을 테스트하면서, 동시에 전자 가격표시기(ELS)와 IC 태그를 이용한 다이내믹 프라이싱 정책을 테스트하고 있다.
원래는 정찰제가 기본인 일본 편의점이지만 이곳에서도 가변 가격제가 적용되는 상품이 있다. 바로 도시락이다. 유통기한이 짧은 도시락은 슈퍼마켓과 마찬가지로 밤이 되면 가격이 내려간다. IT 기술을 이용하면 AI 카메라를 이용해 재고 현황을 파악하고, 유통기한과 판매량 등을 반영해 자동으로 가격을 바꿔서 보여줄 수 있다. 일손을 줄임과 동시에 재고를 빠르게 처리한다.
온/오프라인 구분 없이 쇼핑할 수 있는 옴니 채널 전략을 구사하는 업체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가격 차가 나서는 안 되기 때문에, 전자 가격표시기 등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온라인 가격에 맞춰 오프라인 제품 가격을 바꿔준다. 미국 콜스 백화점은 2010년부터 판매 가격을 실시간으로 바꿔주는 ESL을 도입했으며, 현재 홈 디팟, 시어스, 홀 푸드마켓 등도 사용하고 있다.
티켓 시장도 바뀌고 있다. 미국 메이저 리그의 ‘다이내믹 티켓 프라이싱’ 정책,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다이내믹 디스카운트 시스템’ 역시 오프라인에 도입된 가변 가격 정책이다. 일본에선 라쿠텐 야구단이 ‘입장권 변동 가격제’를 도입했으며, 음식점 및 가라오케 등 여러 유흥 시설을 한 곳에 모아놓은 ‘파세라 리조트’, 일본 솔라시드 항공사도 IT 분석 시스템을 이용해 업무량을 줄이면서 매출을 늘렸다.
리크루트 마케팅 파트너즈가 운영하는 ‘D-MATCH’는, 중고차를 인터넷 쇼핑몰에 올리면 한 달 안에 팔릴 가능성을 72% 확률로 맞춘다. 이에 따라 조정된 가격을 판매점에 제시한다. 영국 딜로이트 토마츠 컨설팅(DTC)이 판매하는 솔루션은 AI를 이용해 가장 적합한 가격 인하 시기와 금액을 제안한다. 이 시스템은 의류 판매 체인 마 타랜(Matalan) 등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다.
개인 맞춤 가격 시대가 올까?
자본주의 시장에 딱 맞는, 효율적인 가격 정책 같지만 모든 산업에 적용되기는 힘들다. 주로 성숙기에 접어든 산업에서 수익 극대화를 위해 사용된다. 게다가 소비자들은 일반적으로 변동 가격제에 거부감을 크게 느낀다. 19세기, 대량 소비 시대를 연 백화점이 처음 등장했을 때 가장 환영받았던 아이디어 중 하나가 ‘가격 정찰제’다.
종종 가격 비교를 하기 위해 웹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최종 가격이 갑자기 달라지면, 소비자는 분노한다. 너무 복잡하게 만들어 이해하기 어려운 가격 체계도 좋아하지 않는다. 유감스럽지만, 이미 다이내믹 프라이싱에서 자주 쓰고 있는 방법이다. 소비자가 좋아하지 않는 일이 회사엔 이익이 된다.
시장에서 가격은 매우 중요하다. 가격을 전문적으로 컨설팅해주는 회사가 나타난 때가 1980년대 중반이다. 특히 성숙기에 접어든 시장에선 1~2%에 불과한 매출 증가를 위해서라도 여러 가지 방법을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렇지만 모든 오프라인 마켓이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반기는 것은 아니다. 현실이 원하는 것은 가격 변동이 아니라, 거래 자체가 바뀌는 일이다.
영국 슈퍼마켓 막스 앤드 스펜서(M&S)는 아침 출근 시간에 점심 메뉴를 값싸게 공급했다. 이로 인해 점심시간마다 이어지던 긴 구매 대기 줄이 사라지고, 소비자들은 더욱 저렴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정상적인 가게라면 단골과 평판의 중요성을 알고 있고, 손님을 속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원하는 것은,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방법이다.
다행히 미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RSR(Retail Systems Research)이 조사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소비자의 71%는 다이내믹 프라이싱 정책을 별 신경 쓰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젊은 소비자의 14%는 그 정책을 사랑한다고까지 말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이미 온라인 쇼핑을 통해 가변 가격 정책에 익숙하며, 이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한다. 단 그 과정이 투명하고, 소비자를 기만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서만 그렇다.
오프라인 가격 정책은 온라인 가격 정책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도입돼도 가격 설정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격 정책이 바뀐다는 말은 비즈니스 모델이 바뀐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렇게 책정된 가격이 반드시 소비자를 움직이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인공지능으로 빅데이터를 분석해서 얻어지는 숫자를 기반으로 가격을 조정하는 일은 앞으로 더 많이 쓰일 것이다.
길게 보면 고객 데이터와 재고 데이터를 함께 분석해서 소비자에게 미리 거래를 제안하는 방향으로 나갈 가능성이 크다. 마트에서 장 보고 있는데 툭-하고 들어오는 모바일 쿠폰 같은 것이 아니라(이것도 나쁘진 않다),
* 우버에서 ‘오늘 저녁은 비가 와서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크니, 30분 일찍 출발하시면 10%를 할인해 드립니다’라는 메시지를 받는다거나,
* 스카이스캐너에서 ‘8월 휴가 기간은 극성수기라 항공권 값이 비싸지만, 여섯 달 전에 예약하시면 보다 저렴하게 가실 수 있는 항공권/여행지가 있습니다. 안내해 드릴까요?’란 메일을 개인적으로 받는 시대가 온다.
* 취미로 여행을 다니는 사람에겐 ‘11월은 비수기라 왕복 10만 원 항공권이 나왔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라는 쪽지가 날아갈 것이다.
진짜 개인화된 마케팅은 개개인의 생활 패턴을 이해하고, 왜 이런 메시지를 보내는지, 받는 사람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회사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시장 파이가 커지는) ‘가격 서비스’가 돼야 한다. 현실이 원하는 진짜 변화는 그런 일이니까.
2018년에 쓴 글입니다. 업데이트하다 보니, 다이내믹 프라이싱이 필요한 분야가, 대부분 코로나 19로 인해 큰 타격을 입은 산업입니다. 여행, 교통, 항공, 외식,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다시 말해 쓰지 않으면 썩어 없어지는 시장은,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 산업입니다. 물류/유통/소매 업계는 다른 형태로 피해를 받았지만, 여긴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아이러니하게, 새로운 스타트업들이 열심히 파고들던 분야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정리할 기회가 생기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