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차마 입에 담기도 끔찍한 일이 있다. 나영이 사건, 또는 조두순 사건이라 불리는 이번 일도 마찬가지다. 얼마전 제수씨에게서 피해 아동이 입원당했을 때의 일을 전해 들었다. 그때 사람들은 두 번 치를 떨었다고 한다. 한 번은 피해 아동의 상태를 보고, 다른 한 번은 그런 아이를 지하도에 버려두고 간 범인의 파렴치함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흔히, 사건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먼저 촉구하게 된다. 이번 사건처럼 가해자에게 내려진 형량이 쉽게 납득할 수 없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다들 알고있듯, 처벌만을 강화해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게다가 한나라당의 주장처럼 형법 42조 자체를 손보자는 주장에는 더욱 동의할 수 없다. 모든 재판에서 형량이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올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처벌을 강화하면 범죄가 줄어드는가?”라는 질문은 아직까지 유효하다. 어떤 경우에는 범죄를 막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무엇보다 처벌 강화에만 신경쓰는 것은 사전 예방이 아니라 사후반응적이란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실제로 한겨레 신문의 지적대로 그동안에도 성폭력에 관한 처벌 기준은 계속 높아져 왔다.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됐고, “혜진·예슬양 사건” 이후 13살 미만 아동에 대한 강간치상은 무기형까지 선고할 수 있게 됐다. 그렇지만 범죄는 계속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나영이 사건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만 할까?
아동 성학대 사건은 예전부터 있었다
우선 잊어서는 안되는 사실이 있다. 아이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아동 성학대, 또는 성폭력 사건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란 것. 사실 인류의 역사에서 아동의 인권이 보호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이전까지 아동은 인간 이하, 또는 아버지의 재산으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았다. … 미국에서 “아동학대 예방협회(1875)”는 “동물학대예방협회”가 만들어진 이후 였다.(1)
실제로 알려지지 않은 아동 성학대 사건은 매우 많을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가 2003년 발표한 “전국아동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약 44만 9천명의 아동이 잠재적 학대 아동으로 추산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2008년 발표한 “전국아동학대 현황보고서“에서는 ‘성학대’로 신고된 아동의 숫자가 284(전체 신고수의 5.1%)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일명 “은지 사건“이나, “장애아동 성폭행 일가 집행유예 사건“이 일어난 것도 바로 작년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이유는 하나다. 단순히 이번 사건에 대한 분노-만 가지고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만약 이번 일을 계기로 조두순이 사형을 판결 받는다면, 만족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모든 것을 깨끗이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서 다들 잘 살수 있을까? 아니다.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에 대해 고민하지 않으면, 근본적으로는 아무 것도 풀리지 않는다. 아동 학대범에 대한 처벌은 강화되어야 하지만, 그 처벌 수위만을 가지고 설레발을 치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 쑈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맘 편히 키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며, 혹시 불편한 일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건강하게 클 수 있도록 돌봐주는 것이다.
가정에서 – TV뉴스는 가장 좋은 교육 교재다
그럼 개인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엄마, 도와줘”의 신순갑과 이정환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선 아이를 주관이 있으나 예의바른 아이, 배려할 줄 아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고. 그런 아이가 되기 위해선 아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들어줘야 한다고.
그 밖에 옳고 그름에 대한 바른 인식을 심어주는 것과, 위험한 장소에서 행동 요령을 가르쳐 주는 것도 중요하다. 타인의 요청에 지혜롭게 대처하는 일, 공원 놀이터의 화장실이나 공사장등 위험한 곳을 피해다니는 일, 나쁜 요구에 확실하게 거절하는 일, 엘리베이터를 안전하게 이용하는 방법, 인터넷을 올바르게 이용하는 일…등.
이때 TV뉴스는 가장 좋은 교육 교재가 된다. 물론 부모와 함께 보면서, 그 사건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 나눌 경우에 한해서다. 부모와 아이는 뉴스를 함께 시청하면서, 사건 내용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게 되고, 그러면서 아이의 대응 태도, 범죄를 생각하는 수준을 판단함과 동시에 그 예방법을 설명해주면 자연스럽게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다.
그렇다면 부모가 아닌 개인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아주 중요하게 해야할 일이 하나 있다. 바로, 신고하라. 아동 학대의 경우 아동 본인의 신고가 이뤄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게다가 한국에서 경찰 같은 사법 기관에서는 가정 문제에 대한 신고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덕분에 아동학대는 대부분 주변인(비신고의무인)의 신고에 의해서 확인된다.
…그러니, 아동 학대가 의심스럽다면, 신고해야만 한다. 망설이지 말고.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당황스럽겠지만,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도 “집 값 떨어진다”며 쉬쉬하라고 하는 곳이 우리나라다…)
사회에서 – 복지 정책이 가장 효과적인 범죄 대책이다
많은 일들이 그렇듯, 아동 학대의 경우에도 필요한 대책은 이미 나와있다. 다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아서 시행되지 않고 있을 뿐. 첫번째 대책은 아동보호에 대한 의식의 전환이다. 바로 “아이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어른의 책임”이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체계적인 사회 안전망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대한 동의다.
… 그래야 예산도 쓰고 시설도 설치하고 사회복지사도 늘릴 수가 있다(단언컨데, 4대강 개발보다 이쪽이 훨씬 더 중요하다.). 아울러 성폭력 예방 교육을 부모, 교사를 비롯한 어른들도 필수 과정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서 끝나서는 안된다. 한국은 신고의무자(의료인, 교사 등)들의 신고가 매년 증가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미비한 편이다(전체 아동학대 신고 건수의 30%대). 이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만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고자들의 신변호라고 한다. 앞서말한 은지 사건에 대한 기사를 보면 신고 건수가 왜 낮은지 알 것이다.)
또 아동보호전문기관은 2007년 이후 아직 단 한 개소도 확대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9년 7월 시행된 아동복지법 개정안에 따라 적극적으로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설립해야 하고, 업무를 처리할 사회복지사들도 확충해야만 한다. 통합된 아동학대 신고번호를 마련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전문 수사 시스템과 치료 시스템 마련도 시급하다. 아동대상 성범죄는 성인 대상 범죄에 비해 시간, 장소, 피해 유형, 치료 방법등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외되고 그늘진 가정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건 쌀로 밥짓는 이야기 같지만, 장기적으로 봤을때 범죄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대책임은 분명하다.
아이의 눈 높이에서 들어주자
유감스럽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아동 학대가 계속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아이들이 자신의 아픔을 말해도 그것을 쉽게 듣지 못한다. 우리 눈 높이로 아이들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처럼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어리고, 상황을 표현할 언어도 아직 갖지 못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아이의 눈 높이에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말한다. 수평적 대화란 아이들에게 “나는 네 편이며, 너의 가장 좋은 친구다”라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며, 그들이 이야기 하는데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해준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세상일은 아무도 알 수 없는 법. 혹시 아래와 같은 말이나 행동을 보인다면, 한번 주의깊게 살펴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의심이 간다면 전문 아동상담기관에 상담을 요청하길 권한다.
마르치아 모건은 이래서 아이들이 학대받았다고 얘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믿지 않을까봐 두려워 한다
내 자신이 이 말을 했다간 곤경에 처할까봐 두려워 한다. (많은 아이들이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때, 자기 자신이 잘못해서 그랬다고 여긴다.)
아이들은 가해자가 했던 위협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수 있다.
아이들은 불분명한 말로 상황을 설명하기도 한다.
몇몇 아이들은 또래 친구들의 반응에 대해 두려움을 가진다.
어떤 아이들은 누구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 지를 모른다.
어떤 아이들은 성행동이나 신체 부위에 관련된 말을 하지 않아야 착한 아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이렇게 말하거나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특정인을 만나려 하지 않거나, 특정 장소에 가지 않으려 한다.
감정이나 기분이 급격하게 변화한다.
누군가에게 갑작스럽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
필요 이상으로 옷을 두껍게 입거나, 옷을 벗는 것을 싫어한다.
성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성기를 자주 긁거나 통증을 호소한다.
성기에 상처가 생겼다.
성적인 행위를 연출한다.
여자 아이가 아랫배의 통증을 호소한다.
다른 아이들의 성기에 관심을 보인다.
성에 관해 어른 못지 않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어른과 단 둘이 있는 것에 두려움을 나타낸다.
단 하나의 행동으로 쉽게 판단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하지만 위의 증상이 중복되어 나타난다면, 부모는 아이의 행동에 보다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 많은 경우 아동 학대가, 부모에 의해 자행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렇게 말하는 것도 꽤 아이러니 하긴 하지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아래에 해당하는 것들은 분명하게 가르쳐 줘야할 필요가 있다.
성적인 장난이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가르쳐 줘라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설사 부모라고 해도 손을 댈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보통 성기, 엉덩이, 가슴 등인데 이런 부분은 ‘자기만의 장소’에 해당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부모나 형제라고 해도 함부로 손대지 못하도록, 분명하게 거절하라는 교육을 시켜야 한다.
평소에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도 단호하게
위에 말한 성적인 장난에 해당하는 행동을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동네 아저씨, 할아버지, 선생님이라고 해도 단호하게 거절하라고 교육을 시켜야 한다. 아이들은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사람에게 미움당하지 않기 위해, 이런 일을 당해도 가만히 있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성적인 장난에 대해 얘기하면 진지하게 받아들여라 놀라는 표정보다, 일단 진지하게 들어주며 어떤 일이 있었는 지를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놀라지 않도록 안심시켜놓고 대처 방법을 찾는다. 이렇게 되기 위해선, 부모 자식간에 비밀이 없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
낯선 사람에게는 식구 이름이나 전화번호등을 가르쳐주지 않도록 지도해라 동시에 모르는 사람의 차는 어떤 일이 있어도 타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도 하나의 방법. 가르쳐준 이름이나 전화번호는 나중에 범죄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옷은 벗지 않도록 가르쳐라
솔직히 이런 글을 쓰다보면 어떤 모멸감이 든다.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다지만, 정말 이런 일이 앞으로 계속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하는 생각만 가득하다. 인면수심의 양아치들. 그렇지만 눈 앞에 있는 것만 봐서는 정말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또 깨닫게 되는 것이, 내 자신도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사실이다.
…이렇게 분노하는 내 자신이, 김혜정씨의 말마따나 또 다른 이에 대한 일상의 폭력에는 동참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하는 고민도 되고. 이래저래, 참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아이 키우는 친구들의 마음은 오죽할까-하는 생각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