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C 시대를 이해하지 못했던 스티브 잡스

애플 특별 기자 회견이 끝났습니다. 결론은 범퍼 케이스 무상 증정. 근접 센서 오류는 곧 수정. 안테나 표시 버그를 잡은 iOS 4.0.1은 이미 배포했음. 그것도 안되면 환불 비용없이 30일이내 전액 환불. 예상과 하나 다르지 않아서 섭섭할 정도였달까요… ^^

그렇지만, 그보다 더 제 관심을 끈 것은, 바로 기자 회견에 임하는 스티브 잡스의 태도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지금도, 왜 이번 사태가일어났는 지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라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거든요. 이해할 순 없지만 우린 고객을 사랑하니, 이 정도나 하는 거다-라는 느낌이었달까요. 심지어 잘 되면 끌어내리려고 하는 것이 사람 본성인가 보다-라는 이야기까지 했을 정도니…

…그럼 그렇죠, 이 아저씨 성격, 어디 가겠습니까.
그 까칠함이 매력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긴 하지만….

오직 데이터만 믿고 있었던 사람들

솔직히 이해는 갑니다. 어이가 없었겠죠. 이제까지 없었던 최고의 폰을 출시했는데. 그리고 데이터는, 사람들 반응은 모두 ‘아이폰4 훨 나아졌음!’을 외치고 있는데- 다른 모든 폰에도 일어나는 일을 가지고, 이제까지 제기하지 않았던 문제가, 갑자기 대단한 이슈로 부상해서는 꺼지지 않고 있던 이 현실이.

이런 황당한 상황에서 잡스가 겨우 찾아낸 해답은, 데이터는 옳지만, 그래도 해달라는 것은 해주겠다-라는 것.

그러면서 은근슬쩍 고백합니다. 애플은 엔지니어들의 회사라고. 그래서 데이터만 믿는다고. 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문제들, 이 시대 모든 폰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우리는 우리가, 우리폰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몰랐던 것 같다(?)고. 그래도 우리는 고객을 사랑하니까,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고 있으며, 노력하고 있다고-

…하지만, 잡스도 분명히 알고 있겠지만, 데이터는 결코 현실, 개인 경험으로서 현실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데이터는 개인 경험을 말해주지 않는다

데이타와 현실 감각은 서로 거울 같은 관계가 아닙니다. 오히려 부조화를 이룰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비유적으로 말해, 우리 현실 공간은 반경 1m를 넘지 못하는 데, 100km 떨어진 곳에서 존재하는 데이터가 우리 개개인의 현실을 말해줄 리 없기 때문입니다. 당장 한국 경제만 해도 그렇잖아요? 수치상으론 좋아졌다는데, 우리 주변은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하지만 단 한 명의 사용자에게만 안테나 문제가 발생한다고 해도, 그 문제가 발생한 개인에게는, 모든 아이폰4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의 개인들은, 자신이 그렇게 경험한 것을 표현할 도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UCC, 또는 UGC라 부르는 바로 그것. 이미지와 동영상입니다.

애플 엔지니어, 또는 스티브 잡스가 모르고 있었던, 또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부분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그냥 경험을 글로 쓰지 않습니다. 동영상과 이미지를 통해 보여주고, 공유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번 아이폰4 안테나 논쟁에서도 숱한 개인 경험들이 동영상과 이미지가 되어 인터넷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들이 결합하면서 경험을 확산하고, 이슈를 지속시키게 됩니다. 거기에 하나를 덧붙이지만, 3Gs와 비교해봐도 아이폰4는 처음부터 굉장히 많이 팔렸기 때문에 생긴 문제이기도 합니다. 데이타속 비율은 적어도, 오류를 경험한 사람들 숫자는 오히려 더 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게다가 따라서 시험해본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UCC 시대, 관계는 어떻게 맺어져야 할까

물론 이런 일을 잡스가 몰랐을 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기자회견안에서 잡스가 언급한 것처럼, 그에게 유튜브는 자료를 찾고, 무엇인가를 증명하거나, 아니면 무엇인가를 방송하는 도구입니다. 일종의 데이터 베이스, 또는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송 미디어라는 거죠.

하지만 이 시대 사람들은 동영상과 이미지를 통해 말을 겁니다.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그 경험을 가지고 다투기도 하고, 논쟁을 붙기도 하고, 수다를 떨기도 합니다. 그 내용은 본질적으로 전화, 또는 커피숍에서 친구랑 이야기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지점도, 또는 그 성격상 앞으로도 이해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 생각되는 부분도, 바로 그 지점입니다.

이제는 어떤 신뢰도, 관계도, 일방향으로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지금의 애플 이용자 커뮤니티는 예전 애플 이용자 커뮤니티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세계일겁니다.
그렇다면 애플이 진짜 해야했던 일은 바로, 그 목소리를 듣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자신이 좋아하는 제품에 뛰어들고, 참여하고, 비판하며, 기여하고 싶어합니다. 내가 좋으면 다른 사람도 쓰길 바라고, 내가 나쁘다 생각하면 다른 사람도 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 인간의 본능은, 어쩌면 오히려 그런 것입니다. 사회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정보를 서로 공유하며 살아간다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잘 듣는 것이 진리

솔직히 이번 컨퍼런스에서, 뭔가 잡스가 굉장히 화가 나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보낸 이메일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것에 대해 불쾌하게 여기고, 너무 많은 관심과 언론의 오버로 인해 사건이 부풀려지는 것이 싫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 시대 삶의 모습입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솔직하게 대하고, 진지하게 듣고, 해결책을 찾고 있다고 밝혔어야 했습니다. 문제 없다-라는 식으로 버팅기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고, 당신 이야기를 정말 잘 듣고 있다고 보여줘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이렇게 일이 부풀려지지도, 문제가 커지지도 않았을 겁니다.

…결국, 잡스는 여전히 ‘잘 듣는 것’에 실패했던 셈입니다.

소통은 결코 너도 말하고 나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있어서 소통은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며, 그 누군가가 내게 바라는 소통은 내가 그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것일 겝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통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들어주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애플과, 또다른 애플이 되고 싶어하는 회사들이, 그런 것들을 많이 배웠기를 바랍니다.

* 하지만 이번 기자 회견에 대한 한국 이용자들의 가장 크게 반응을 보인 곳은 아이폰4 출시 국가에서 한국이 제외됐어! 였다는 거…

* 전파인증을 비롯한 몇가지 인허가 문제로 늦어진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역시 담달폰의 명성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8월달에는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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