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와 미키 루크가 세상을 살아나가는 방법

자연과 가까이 사는 아이들은, 살아가면서 삶과 죽음을 함께 배운다고 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키가 자라는 풀들, 조금씩 따가워지는 햇빛, 잘 익은 과일과 뜨거운 햇살, 누렇게 변해가는 논밭, 그리고 어느샌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곤충들과, 다시 추워지는 계절의 반복 속에서.

삶에는 항상 죽음이 들어있고, 죽음 속에서 항상 삶이 이어진다는 것을 배운다는 거죠. 그리고는 조금씩 하나의 진실이 마음에 새겨지기 시작합니다. 나도 언젠가는 죽을 거라는 사실이. 나도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다는 사실이. 신해철의 노래가사처럼, “어린 나에게, 죽음을 가르쳐주”는 많은 사건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살고 싶어합니다. 한치 앞도 못보면서 천년을 살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우리네 삶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정말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이 실감나게 다가오는 때가 있다고 합니다. 이젠 정말 나이가 들었구나, 예전처럼은 살아갈 수 없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그 순간들.

영화 <그랜 토리노> 속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바로 그렇게 죽음을 기다리면서도,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꼬장꼬장한 노인네입니다. 아내의 장례식에 온 손녀딸이 야한 옷은 입는 꼴은 못보고, 손자들의 작은 장난에도 눈쌀을 찌푸리고, 성당 사제의 설교의 ‘젠장’이라고 중얼거리는.

쓴 맛은 고통이고 단 맛은 구원이라..
삶과 죽음을 그런 식으로 알고 있다니, 슬픈 걸-

– 영화, 그랜토리노 중에서

그에게 남은 것은, 1972년식 ‘그랜 토리노’ 차량 한대 뿐이지요. 자신이 만든 것과 다름없는 그 차만이, 자신을 자신으로 증명해주는 그 어떤 것입니다. 그 밖에는 온통 시끄럽고 괴로운 것들 뿐입니다. 차를 훔치려는 옆집 꼬마, 자꾸 찾아오는 꼬마 목사, 필요할 때만 자신을 찾는 자식들, 귀찮기만한 누군가의 친절…

그런 그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옆집 소년 타오와 친구가 되면서부터 변해갑니다. 그리고는 바로 보게 되지요. 자신이 숨기려고 했었던 것들을. 내가 나처럼 행세하고 싶어서 마음속에 묻어버렸던 것들을. 그래서 그의 마지막은 쓸쓸하고 슬프지만 또 슬프지가 않습니다.

…그와 맺었던 인연들이 계속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반면 <더 레슬러>의 미키 루크는 다릅니다. 그는 싸웁니다. 늙어 조롱받으면서도 끝까지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웁니다. 허리가 아파 약물을 맞고, 관객들에게 뚱보라고 욕설을 당하면서도, 그는 싸웁니다. 철조망에 찢겨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싸우고 또 싸웁니다. 비록 그 싸움이, 사전에 완전히 조작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모든 것을 다 보살펴야 했는데..
그런데 그게 생각처럼 안됐어..
그래서 난 도망갔지. 너를 떠났어. 네가 잘못한 것은 전혀 없어.
알아? 너를 잊으려고, 네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나를 설득 시키려고도 해봤어.
하지만, .. 넌 나의 소중한 딸이야.

그리고 이제, 난 늙어 고장난 몸 밖에 없고, 그리고 외톨이야.
난 벌을 받아 외톨이가 되어도 마땅하지만,
네가 날 증오하는 것만은 견딜수가 없어.

링에 올라 싸우는 것, 그것이 그가 아는 전부, 그리고 그가 아는 유일한 살아가는 방법. 내가 아직도 내 자신임을 증명해주는 것… 그것이 남자라는 종족의 어떤 일부가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방식입니다. 이러다가 다시 내 심장이 멎는 한이 있어도 증명해야만 하는, 어떤 자존심.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허무한 세상에서, 내가 나라고 크게 소리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여기 다시 올라오게 되서 영광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다신 싸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인걸요.
열심히 살고 일하면서 바쁘게 살다보면, 그 댓가를 치루게 됩니다.
인생에서 사랑하는 모든 것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잃습니다.
과거처럼 귀가 잘 들리지도 않고 , 기억력도 떨어졌죠. 그리고 과거처럼 잘 생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젠장, 나는 아직 살아있고, 아직도 ‘램’입니다.

내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사람들이 나는 끝났고, 패배자이고, 더 이상 못한다고 하지만…
아시나요? 나보고 끝났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들 뿐입니다.
왜냐하면… 당신들이 바로 내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이야기는, 정말 미키 루크가 우리에게 보내고 싶었던 메세지일지도 모르겠네요. 나도 살고 남았고 지금도 싸운다. 그러니… 당신들도 살고, 싸우라고- 심장이 뛰는 한 살아가라고. 그것 때문에 비록,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해도 말입니다.

이 두 영화를 보면서, 왜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미키 루크라는, 배우가 아닌 두 사람이 보였는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보는데, 자꾸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닌 두 사람이 살아있는 어떤 사람-으로 비춰져서 기분이 묘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삶을 만나고, 또 많은 죽음을 만나야만 합니다. 그렇게 만나는 삶과 죽음이, 우리도 언젠가 태어났고, 언젠가 죽어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지요.

…언젠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삶에서, 항상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스스로 불러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잃더라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든 살아가야만 한다고, 스스로 되뇌일 만큼, 강해질 수 있을까요. 두 노장(?)의 작품들을 겹쳐 보면서, 왠지 가슴이 스산해집니다. 언젠가 죽을 것을 알지만, 아직 죽지는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살아가야 한다고, 어떻게 되든 살아가야한다고, 그렇게 말할 만큼의 용기는 또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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