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10년만에 좋아하는 밴드를 불러 콘서트를 여는 팬클럽이 있다.

1. 여기 이상한 장소가 하나 있다. 한 밴드의 팬클럽으로 시작했던 모임에서 만든 장소다. 10년전 그 밴드 멤버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그를 추모하기 위해 팬클럽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그들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을 초청해 공연을 하다가, 어느새, 자신들이 사랑하는 밴드를 불러 공연을 주최하기에 이르렀다.

…10년, 이들이 공연을 준비하기 까지 걸린 시간이다.

홍대앞에 있는 공중캠프란 공간과, 그 공간을 지켜왔던 친구들과, 어느새 인연이 엮이고 엮여서, 첫번째 한국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피시만즈에 대한 이야기.

국가에서 금지하고 있는 일본 음악을 듣는다. 그들이 선택한 것이 그런 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한기를 느꼈다. 내가 당연하게 연주하거나 듣고 있는 음악이 이웃 나라에서는 불법이라니, 그런 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단지 음악일 뿐이잖아?

그럭저럭 평화롭고 자유롭지만, 지루함과 체념 또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일본에서라면 평생 마음에 떠오를 일이 없는 결의와 행사될 일이 없는 의지.

음악을 들었다고 잡혀간다고?

그래도 그들은 그 일을 실행해 왔다. 나는 아무래도 엄청나게 무지했던 것 같다. 그 후 시대가 조금 바뀌어 그들도 일본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들은 공중캠프를 공동 운영 방식으로 만들어 매일 밤마다 아침까지 마시면서 일본 음악을 찾아들어주었다. 그건 그 가게에 있는 CD를 보고 금방 알 수 있었다.

얼마 후 그들은 일본의 아티스트를 공중캠프로 불러 공연을 했다. 그 이벤트는 벌써 9번이나 계속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가게의 경영이 궤도에 올랐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들이 우리를 부르기 위해 마련한 교통비와 숙박비, 그리고 매 식사마다 가게에 데려가서 대접해준 음식은 한국의 값싼 공연티켓과 공중캠프의 예산으로는 절대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을 테고(게다가 높은 환율), 모자란 부분은 커뮤니티의 멤버들이 함께 돈을 모아 적자를 메웠다. 모두 생계를 위한 수익은 한 번도 내지 못한 것 같고, 물론 일본 아티스트들도 노개런티로 공연을 했다.

3월 공연 중에 그들 중 한 명인 고군에게 “이걸로 괜찮은 거야?”라고 물어보았다. 웃음과 함께 돌아온 대답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그걸로 충분해요”였다. 언젠가 일본 아티스트와 한국 아티스트가 함께 하는 페스티벌을 하고 싶다고까지 말해주었다.
돈은 다같이 모으면 어떻게든 된다.

출처_유주루_공중캠프에서 밤

▲ 공중캠프의 고엄마

2. 피시만즈 공연을 준비해온 친구중 한 명을 만나기 위해, 홍대에 있는 공중캠프로 가면서 준비해간 질문은 사실, 대단히 형식적이었다. 다만 꼭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피시만즈 팬클럽으로 출발했던 모임이 어쩌다, 피시만즈 공연을 준비하기까지 이르렀는지. 그런데 생각보다 대답은 간단했다.

…”운이 좋았어요“…(응?)

“사실 공중캠프는 피시만즈의 사토 신지가 1999년 3월 15일 세상을 떠난 다음, 2000년 1월에 나우누리에 사토 신지를 좋아했던 친구들이 모여서 결성한 팬클럽이었거든요. 그런데 의외로 피쉬만즈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매일 같이 만나서 술마시고 음악 얘기하다가, 그냥 밖에서 술먹지 말고 여기서 마시자. 그래서 만든 것이 여기, 공중캠프였어요. 2003년 11월이었죠.

그러다 좋아하는 뮤지션들을 불러보자고 해서 만든 이벤트가 쓰바라시데 나이스 초이스였구요. 그렇게 뮤지션들과 네트워크 생기면서 점점 커나가면서, 피시만즈까지 부를 수 있게 되었네요.”

“신기한 인연이죠. 솔직히 처음 만들때만 해도, 우린 피시만즈를 과거 완료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피시만즈를 현재진행형으로 만들어왔던 사람들이 있었어요. 계속 음악을 듣고, 서로 말을 하고, 공연을 만들어내고, 그러다 보니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네트워크가 생겼어요. …. 참 신기하죠. 특별한 목적지도 없이 출발했는데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음악이 맺어준 신기한 인연이랄까요.”

▲ 하나레구미, 첫번째 공연 포스터

누군가가 그랬던가. 사람은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라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혀졌을 때, 어쩌면 그때야말로 죽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사토 신지도 그런 사람이었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사람들은 그를 기억하고,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가 만든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까.

“시작이 무엇이라고 말하기 힘들지만, 굳이 말하자면 하나레구미라고 할 수 있어요. 그를 부를 수 있었던 것도 여러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죠. 그 이후 네트워크가 조금씩 확장되어 갔어요. 그런 것들이 뻗어나가다가 피시만즈까지
도달하게 된 거구요.

피시만즈와 폴라리스에서 베이스를 치는 멤버, 카시와바라 유주루라고 있거든요. 이 분이 2007년에 ‘오토타’라는 밴드를
만들어서, 올해 3월 피시만즈 나이트 때, 오토타를 초청했었어요. 그때 유주루형과 술을 마시다가 다음번엔 모테기도 같이 와서
피시만즈로 공연하면 좋겠다-라고 살짝 얘기했었거든요. 공연 중에도 관객들이 그렇게 말했었고.

그런데 7월쯤에 메일이 왔어요. 10월쯤에 한국에서 공연할 수 있겠다-라고요. 피시만즈 리더가 드럼치는 모테기 킨이치인데,
킨이치에게 얘기했더니 그때 쯤이면 괜찮겠다고 하더라-라구요. 워낙 바쁘신 분들이라 평일 밖에 시간이 나지 않았지만. 그때 받은
유주루의 메일에 다들 감동받아서, 좀 무리해서 준비하게 된거죠”

그렇지만 피시만즈는 작은 그룹이 아니다. 매년 일본 전국에서 피시만즈 나이트라고, 사토 신지를 추모하고, 그들의 음악을 듣는 밤이 개최된다. 그만한 그룹이 움직이는 것은 쉽지가 않다. 현실적인 문제는 꿈이 있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리스크가 큰 일이었어요. 그 비용을 다 감당할 일이 좀 막막해서. 뮤지션들은 모두 노개런티로 해주겠다고 하지만… 그래서 십시일반하자, 서로 할 수 있는만큼 해서 준비를 해보자-라고 한거죠. 후원회원 같은 것도 만들고.

… 한강 플로팅 스테이지 무대도 부담이 되긴 했는데, 공중캠프에서만 하기에는 미안했어요. 좀더 시설이 좋고, 좋은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곳에서 공연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가을이고 하니까 밖에서 들으면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했고 … 많이 무리했지요. 처음엔 한강 수영장 빌릴 수 있을까해서 문의해봤는데, 하루 빌리는데 수천만원을 달라고 하더라구요. 그에 비해 한강 플로팅 무대는 200만원 정도였어요. 하루종일 빌리는데… 뒷쪽 잔디 광장도 마음에 들고. 이런저런 제약 사항이 많은 것이 좀 아쉽기는 하지만.

참가자들 사이에도 입장차이가 좀 있어서 고달픈 것도 있지만, 참 많은 친구들이 도와주고 있어요. 후원 공연을 준비하겠다고 나서준 친구들도 있었고. 다른 페스티벌 경험있는 친구들이 조언도 해주고… 언론 보도자료도 그래서 만들어서 뿌릴 수 있었어요. 하지만 기자들이 많이 올지는 모르겠네요. 우린 기자들에게 따로 프레스표주고, 그런 것 없거든요.”

▲ 콘서트 준비를 위한 회의 모습

사토 신지라는 핵심 멤버의 사망 이후에도 피시만즈는 계속 활동을 해왔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핵심 멤버가 사망한 다음의 그룹은, 우리가 알고 있던 그 그룹이 맞을까. 트위터에 올렸더니 어떤 분은 본 조비가 빠진 본 조비 그룹이나 마찬가지인데, 이제와서 뭐하겠냐고 말씀해주신 분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공중캠프의 대답은 시원하다.

“우리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요. 일본에 있는 팬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구요. 그런데 다른 공연을 보면서, 다르게 생각하게 됐어요. … 그가 없어도 피시만즈는 피시만즈일 수 있었다, 라고 생각하게 된거죠. 이건 제가 하는 이야기보단, 예전에 피시만즈 트리뷰트 추모 앨범 나왔을때 노지 유꼬란 분이 쓴 글이 있거든요. 그 글로 대신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요.

…그리고, 실제로 한번 공연을 보시면 바로 아실 수 있을 거에요. 피시만즈는 여전히 피시만즈란 것을”

나중에 집에 돌아와 공중캠프 홈페이지에서, 고엄마가 알려준 글을 읽었다. 그 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미안. 정말 바보였어요.
잘 생각해보면, 알 수 있었을 텐데.
도시치고는 묘할 정도로 아름다운 저녁 노을을 바라보며 걸으면서, 엄청난 음치로 ‘히코우키’를 작게 흥얼거리며 눈물을 글썽거리던 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뭐하지만, 그것은 최고로 멋진 ‘노래’였다. 뭐,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휘시만즈를 사랑하는 사람의 수만큼 서로 다른 휘시만즈가 있다. 라는 것은 노래하는 사람 만큼 다른 모습을 가진 휘시만즈의 ‘노래’가 있다는 것. 그들은 전대미문인 음악 스타일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자유로운 기분으로 노래하고 싶게 하는 여러 스탠다드 송을 만들어왔으니까. 라고 하는, 멋진 사실을 뼈저리게 일깨워주는 것이 바로 이 작품 『SWEET DREAMS For Fishmans』이다.

– 노지 유꼬 – 『SWEET DREAMS For Fishmans』 리뷰중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들의 이야기를 곰곰히 되새기다가, 뭔가 조금 행복해졌다. 특별한 목적을 가지지도 않았고, 그저 좋아해서 달려왔다. 그러다 이 길까지 왔다. 그냥 길을 걸었을 뿐인데, 인연이 이어지고, 그 인연이 다시 꽃피어, 좋아하는 뮤지션을 초청해서 콘서트를 열 수 있게 되었다. 같이 음악을 들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생기고, 함께 술 한잔 기울일 친구가 생겼다. 10년이란 긴 시간동안, 그냥 길을 걸었을 뿐인데, 그게 인연이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왠지, 이들을 이어준 피시만즈란 그룹에 대한 없던 관심이 생겨버렸다.

* 휘시만즈(Fishmans)는 1990년대 일본 동경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밴드입니다. 1987년 결성, 1991년 5월 데뷔 앨범을 발표하고 1999년 3월 15일 보컬 사또의 갑작스런 죽음에 이르기까지 많은 아티스트와 리스너에게 영향을 끼쳤던 밴드로 알려져있습니다. ‘ 공중캠프’는 1996년 발매된 휘시만즈의 여섯번째 정규앨범의 타이틀이며(일본어로는 ‘쿠츄캼프’라고 읽고, 영문으로는 ‘kuchu-camp’라고 쓴다). 그들을 좋아해서 모인 사람들이 낸 작은 공동체이자 공간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 공연에 대한 문의 및 정보는 공중캠프 홈페이지(링크)를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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