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해적의 리더쉽

하이테크 분야를 다루는 한 유명한 미디어와 했던 인터뷰 사건은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애플의 광팬이었던 기자는 한 시간 정도 취재하고 호의적인 특집기사를 낼 예정이었다. 애플 홍보팀과 잡스에게 사전 승낙을 얻은 터라 인터뷰는 가벼운 화제부터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잡스의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분위기는 점점 이상해졌다.

“지금 당신은 44세인데, 만일 25세 때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기자가 물었다.

“이런 멍청한 질문은 받지 말라고 충고하겠습니다.”

잡스를 격려하고 싶었던 기자는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이런 말까지 들어야 했다. “나는 이런 시시한 일에 시간을 낭비할 만큼 한가하지 않아요.” 이것으로 취재는 끝났다. 잡스의 대응은 늘 하던 대로였지만 기자는 훗날 이렇게 비꼬았다.

“예전에 약물중독인 록 가수도 취재해 봤지만 그때가 훨씬 나았다.”

– 『스티브 잡스의 신의 교섭력』, p22~23

스티브 잡스의 성격을 잘 드러내주는 일화입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괴팍함과 찌질함의 사이에 서 있는 폭군. 이 책 『스티브 잡스의 신의 교섭력』을 읽다가, 정말 교섭력에 대해선 배울게 하나도 없겠다-라고 생각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교섭력은 온전히 잡스의 것, 그건 누가 따라하기 힘들어요…-_-;;

사실 이런 성격은 하루이틀 사이에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아래에 적힌 ‘일부’ 사례들을 한번 볼까요?

  • 고등학교때, 수업시간에 특정회사의 부품이 필요하자 본사에 전화를 걸어 “전자기기를 개발중”이라고 사기(?)를 쳐서, 부품을 공짜로 얻었다.
  • 대학 중퇴 이후, 잡스는 당시 날리던 아타리 사에 찾아갔다. 아타리의 인사 책임자는 기술직에 응모한 잡스를 데리고 기술부문 관리자인 알 알콘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다. “이 이상한 녀석이 고용해 줄 때까지 돌아가지 않겠다고 우기는데, 경찰을 부를까, 아니면 채용해 버릴까?“(221)
  • 아타리에 채용된 잡스는 브레이크 아웃이라는 게임을 개발했다. 게임은 주로 워즈니악이 개발했으며 잡스는 사탕과 콜라를 사다주는 일을 맡았다. 개발후 1000달러를 받았지만 600달러를 받았다고 속이고, 워즈니악에겐 300달러만 줬다. (56)
  • 1976, 애플을 설립한 잡스는 처음 참여한 컴퓨터 페스티벌에서 홍보과 광고 전략, 그리고 자금력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신성 광고회사 레지스 맥켄너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으려고 한다. 1주일 내내 전화를 건 끝에 사장을 만난 잡스는, “계약해줄때까지 돌아가지 않겠다”라고 딴지를 부리며 결국 거래하는데 합의하게 된다.
  • 1980 , 애플이 주식을 공개했을 때, 25세의 스티브 잡스는 함께 고생한 직원들에게 스톡옵션을 부여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비난이 거세자 스티브 워즈니악은 그들을 딱하게 여겨 자신의 주식을 나눠줬다. 이를 잡스는 비난했다. 후에 워즈니악이 퇴사하자,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요새 워즈니악은 특별히 한 일이 없다
  • 1982, 잡스는 제프 래스킨에게서 매킨토시 프로젝트를 빼앗았다. (73) 그냥 뺏기 힘들자, “더는 래스킨과 함께 일할 수 없다“라고 눈물을 흘리며 집요하게 이사회를 설득해서 뺏았다.(225) 물론 1년뒤 발표된 컴퓨터는, 래스킨의 초기 모델 보다 훨씬 멋지긴 했지만
  • 잡스가 임시 CEO로 복귀한 뒤 반년 동안 애플은 몹시 힘들었다. 간부들은 대부분 잡스의 전제군주 같은 태도가 싫어서 회사를 떠났다. 당시 이런 조크가 나돌 정도였다. “잡스가 요구하는 게 Yes 야, 아니면 QUIT(그만두다))야?” (65)

스티브 잡스, 해적의 리더쉽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많은 인재들은 스티브 잡스를 따라가려고 합니다. 그와 함께 일하고 싶어합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그건 바로, 그가, 해적-이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는 해적의 우두머리, 캡틴이기 때문입니다.

해적은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습니다. 현재 살아가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들의 과거는 함부로 묻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도 철저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과거는 단지 잊어야 할 시간일 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받은 은혜에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얽매여서 판단이 흐려지는 법도 없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설령 숙명의 라이벌인 빌 게이츠와도 거리낌 없이 손을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 하지만 그것은 생존을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일 뿐입니다. “과거를 그리워할 시간이 있으면 미래를 보라(44)”라는 말은, 어떤 호사스러운 경구가 아니라 지금 살아남기 위한 생존규칙인 것입니다.

잡스는 또한, 못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해적에게는 주어진 조건을 따져서 대상을 선택할 수 있는 여유 따위는 없습니다. 태풍이 우리 마음대로 불어줄까요? 상선이 우리가 원하는 때에 지나가 줄까요? 그렇기에 “잡스는 현실따위는 처음부터 무시“합니다. “시간 제약도 어떻게든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구요.(85)

사람들이 잡스와 함께 해적이 되려는 이유

사실 이런 사람이랑 함께 일하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입니다. 니네는 그것보다 더 할 수 있다고 맨날 쪼아대는, 맘에 안들면 판부터 갈아엎는, 그런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충성심과 능력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눈치까지 빨라야 합니다. 아니면 잡스는 가차없이 그를 해적선에서 바다로 차넣어 버릴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잡스와 함께 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딱 두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잡스와 함께라면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멋진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해적들은 모험을 즐깁니다. 해적 캡틴은 이런 해적들을 끊임없이 부추기고 조정해야만 합니다. 오케이, 저기 가면 보물선이 있어, 오케이, 저 녀석을 약탈하면 오늘은 실컷 놀고 마시는 거다! … 이런 식으로 말이죠. 그렇지 않으면 해적들은, 바로 캡틴의 등에 칼을 꽂으며 반란을 일으킬겁니다…-_-;;

잡스는 그런 ‘비전을 제시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선택이 종종 틀린 것으로 판단될 때도 많지만, 일단 비전을 제시하고, 있지도 않은 그것을 사람들에게 “정말로 그렇게 될 것처럼” 설득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사기꾼, 좋게 말하면 선구자…지만요. ^^

까놓고 말해 “잡스처럼 자칫 잘못하면 전 재산을 날릴 만큼 위험한 길을 선택하는 사람은 상당히 드”뭅니다.(163) 그렇지만 그에게는 “놀랄 만큼 맹렬한 의지와 신념”(156)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신념을 사람들 눈에 보여주고, 따라오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와 함께하면 뭔가 신나는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재미있는 일이 가득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꺼이, 잡스와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두번째입니다.

둘째, 잡스가 모든 장애물을 완벽할 정도로 제거해 주니까.

전투가 벌어졌을때 뒤로 숨는 캡틴은 캡틴의 자격이 없습니다. 그것처럼, 잡스는 모든 전투(?)에 자신이 직접 뛰어듭니다. 스포트라이트도 그가 받지만, 욕도 그가 먹습니다. 아이폰4가 불량이란 이야기를 해명하는 자리에도 가장 앞에 나선 것은 잡스였습니다.

모든 협상과 교섭, 어떤 비전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되는, 개발 외적인 사항들을 직접 처리하는 것이 바로 스티브 잡스입니다. 최고의 인재들을 모아놓고, 그들이 개발에만 집중하게 만들며, 나머지 일은 스스로 처리해주는 사람. 아이폰 개발자들이 앱스토어 같은 사업 모델에 신경쓰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사람.

어찌보면 사람들은 그래서 스티브 잡스와 함께 일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전투에서 병사들에게 등을 맡기는 지휘관. 언제나 최전선에 함께 뛰어들어 있는 사람. 때론 말도 안되는 눈물도 흘리고, 땡깡도 부리고, 리더가 이렇게 찌질해도 되는 것일까-하는 생각을 들게도 만들지만, 그러면서도 결국 개발자들이 맘껏 개발할 수 있도록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 주는 사람.

그렇게하기 위해, 자존심이고 뭐고 팽개칠때는 팽개칠 줄 아는 사람.
사업을 한다는 그 자체를 목숨처럼 즐기는 사람.

우리에게도 캡틴이 필요하다

비전을 제시하고, 인재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며, 나머지 장애물을 제거해 주는 것. 결국 사업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리더의 자격이기도 합니다. 그 누구도 뒤로 숨는 리더와 함께 일하고 싶은 생각을 없을 겁니다. 문제를 부하 직원에게 돌려버리는 사람과 일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우린 함께 즐겁게 꿈꿀 수 있는 리더를 만나고 싶어합니다. 그런 면에서 스티브 잡스는, 괴팍하지만 분명 “좋아, 당신이 간다면 나도 간다”라고 말할 수 있게 만드는, 그런 리더입니다. 하지만 그런 리더를 찾는다는 것은… 으흠, 쉽지 않습니다. 생각해봐도, 이런 사람이면 비슷하다-하고, 머릿속에 딱 떠오르는 사람이 없네요.

마지막으로, 책에 나와있는 한 귀절을 다시 적어보며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에게도 언젠가는, 이런 리더가 나타나기를 바라며. 또는, 당신이 바로, 그런 리더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모두가 스티브 잡스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해적 캡틴 같은 리더는, 지금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돈벌이만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세상을 바꿀 물건을 만들 수 없다. 돈의 힘으로 다되는 것 같고, 본인도 그렇게 착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머니 게임의 승자는 허구의 인형에 지나지 않는다. 무능한 경영자는 돈에 휘둘리고, 유능한 경영자는 반대로 돈을 휘두른다.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 영화산업, 음반시장이라는 미국이 자랑하는 3대 산업을 움직여서 전 세계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어 놓았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돈보다 세상을 바꾸는 데 온 정열을 쏟았기 때문이다. (164)

스티브 잡스의 신의 교섭력 –
다케우치 가즈마사 지음, 이수경 옮김/에이지21

* 단, 이 책에서 스티브 잡스의 교섭력은, 정말 배울 수가 없습니다….ㅡ_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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