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도시, 오쿠다 히데오가 보내는 서늘한 겨울 이야기

“잠깐만요. 그래서 사인은 뭡니까?” 도모노리가 물었다.
“동사래요. 동사. 전기도 끊기고 석유난로 기름 살 돈도 없고, 게다가 어제 얼마나 추웠어? 그 공영 주택 단지가 오래 돼서 외풍은 또 얼마나 센지.”
도모노리는 아사가 아닌 것에 우선 안도했다. 물론 동사한 것도 보통 일은 아니고, 몸이 쇠약해진 것도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어떻든 동사했다는 게 아사했다는 것보다는 이미지상 그나마 낫다.

– 오쿠다 히데오, 꿈의 도시, p206

여기 다섯 사람이 있다.
아이하라 도모노리, 유메노시 사회복지사무소의 공무원.
구보 후미에, 이제 막 고3이 되려는 여학생.
가토 유야, 전직 폭주족 출신의 사기 세일즈맨.
호리베 다에코, 신흥 종교를 믿는 대형 마트의 보안 요원.
야마모토 준이치, 3선을 노리는 시의원.

여기 다섯개의 꿈이 있다.
아이하라 도모노리는 현청으로 복귀하는 것이 꿈이고,
구보 후미에는 도쿄의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꿈이고,
가토 유야는 자기 집을 마련하는 것이 꿈이고,
호리베 다에코는 어머니와 함께 안정적인 생활을 꾸리고 싶고,
야마모토 준이치는 빨리 시의원을 그만두고 현의원으로 진출하고 싶어한다.

여기 다섯개의 곤경이 있다.
아이하라 도모노리는 실적을 위해 생활보호수급자 지정을 막았다가 해당인이 사망하자, 그 아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구보 후미에는 게임 세계에 중독된 히키코모리에게 납치되고
가토 유야는 선배가 저지른 살인 사건을 수습해야할 처지.
호리베 다에코는 신흥종교집단의 갈등으로 인해 직장을 잃게 되고
야마모토 준이치는 야쿠자를 이용하려다 오히려 야쿠자들에게 뒷덜미가 잡힌 처지가 되었다.

…여기에 + 알파의 고난은 각자에게 사건이 일어난 배경이면서,
오쿠다 히데오가 덤으로 주는 곤경(이 작가 은근 성격 나쁘다).

“그, 그, 그게 내가 임시 고용직이라 그, 그 그런 보험 같은 건 전혀 없고….”

니시다의 말에 도모노리는 ‘이 회사도 또 그거구나’하고 생각했다. 정사원을 최대한 줄이고 임시 고용직으로 인력을 조정하는 방식이 이제는 말단 산업폐기물 업자에게까지 퍼져 있는 것이다. 경영자들은 리스크를 짊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 오쿠다 히데오, 꿈의 도시, p145

이 다섯개의 꿈은, 이제 막 태어난 넓기만한 도시에서 원치않게 얽히고 섥힌다. 다섯개의 꿈이 서글프게 스쳐가는 도시, 여기가 바로 유메노시다. 유다, 에카타, 노카다라는 세 지역이 통합해서 태어난, 말장난 이름의 도시, 꿈의 도시(ゆめの市 는 夢の市로도 읽힌다.)

책은 재미있다. 별 생각없이 잡았다가,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어버렸다. 600페이지짜리 책을 한 자리에 앉아 읽었으니, 다 읽고나서 허리가 아팠을 정도. 그렇지만, 읽는 내내 스산한 마음이 들어서 어쩔 줄 몰랐다.

다시금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머니도 이렇게 말라비틀어져 죽을까. 갑자기 위가 찌르르하며 구역질이 났다. 아냐, 이렇게 죽는 건 어머니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머지않아 나 또한 피붙이들은 사라지고 돈은 떨어지고 아무도 없이 혼자 죽어갈 것이다.

… 다에코는 비척비척 걸음을 옮겼다. 평형 감각이 없어졌는지 밖으로 나오며 두 번이나 넘어졌다. 누군가 날 좀 도와줘요. 비명이 터질 것 같은 공포를 꾹꾹 누르며 다에코는 공영주택 단지의 복도에 주저앉았다.

– 오쿠다 히데오, 꿈의 도시, p194

…솔직히 오쿠다 히데오가 이런 소설을 쓸 줄은 몰랐다. 책은 시종일관 웃는게 웃는게 아닌 웃음으로 넘치지만, 소설속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삶이, 뭔가 지나치게 리얼하다. 따지고 보면 말도 안되는 것들이 현실적으로 그려져서, 웃으면서도 웃지 못하게 만든다. 농담이 아니다. 그가 그려놓은 그림 안에는, 우리가, 우리라는 말이 싫다면 우리중 누군가가 살아가며 부딪히는 삶이 쓰리게 벗겨져 놓여있다.

그 웃기는 삶의 군상이, 이곳에서도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니까.

삿포로 여행을 하기 전에 뭐하러 이 책을 읽었을까- 싶었다. 눈에 뒤덮힌 그 도시가 전혀 다르게 눈에 들어온다. 도시의 아름다움에 취하기도 전에,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삶 하나하나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그리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니다. 도시를 뒤덮고 있는 눈과 빛의 꺼풀 속에 웅크리고 있는 어떤 삶들을. 아름답게 포장된 살려고 아둥바둥 하는 몸짓을.

지방이 싫어 도시로만 떠나고 싶어하는 여학생, 게임 세계에 심취한 심약한 남자 아이, 그런 아이에게 맞으며 사는 부모, 너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원조교제 주부, 실적 올려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에만 급급한 공무원,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으면서도 어머니를 떠맡아야 했던 막내아들, 돈이 없어 가스도 전기도 끊긴 상태에서 얼어죽어가야 했던 할머니, 대형 마트의 등장으로 인해 초토화된 재래 시장, 자기 이익을 위해 건설 사업을 추진하는 정치인, 그 정치인에게서 삥을 뜯으려는 정치인, 사업을 맡으려는 폭력배, 마음을 맡길 곳이 없어 신흥 종교에 빠져든 사람, 일할 곳도 없고 일하기도 싫어서 생활보호대상자가 되려는 여성, 서로 돈 달라고 싸우는 형제자매들, 도시의 노동력을 메꾸기 위해 해외에서 들어온 다른 피부빛의 사람들, 약한 자가 더 약한 자에게만 마음껏 행사하는 권력, 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 돈 벌어가지고 오니 좀 사람다운 대접을 받는 청년, 그래서 오늘도, 내일의 꿈을 위해 힘껏 사기를 치자는 그 청년…

참 망할 세상이다- 싶은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오쿠다 히데오가 또 웃으며 나를 놀린다.

“그렇군요. 참으로 힘겹게 살았네.
현대의 불경기는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는 게 아니지요.
이 사회구조가 그렇게 생겨먹었어요.
한번 가라앉으면 다시는 위로 떠오를 수가 없어!

나는 말이죠. 당신의 경우는 현세에서는 이제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해.
헛수고거든. 사회에 저항해봤자 당신만 힘들어! ”

– 오쿠다 히데오, 꿈의 도시, p488

힘든 세상에서 아둥바둥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세상이 권하는 방법은 딱 두가지다. 잔인할 정도로 비정해지거나, 아니면 현실에서 도피하라고. 물론 둘 다 개뻥. 뒤집어 보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어리숙한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일 뿐. 그들의 말이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현실에 대한 지적은 정확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해결책D, 힘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닌, 그런 사람들마저 거머리처럼 빨아먹으려는 그들의 욕망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

오쿠다 히데오는 그런 세상에 주인공들을 던져놓고, 계속 몰아쳐간다. 그들은 결국 어떤 결과를 맞을까?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 아래는 이 책의 원제인 무리(無理)-가 담긴, 원서의 표지다. 나중에 책을 읽고 이 원서 표지를 보면, 아하-하고 알 수 있을 것 같다.

꿈의 도시 –
오쿠다 히데오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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