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애플’ 출간 기념, 이 책을 번역한 임정욱(에스티마)님의 강의에 다녀왔습니다. 이 날 강의 주제는 ‘애플의 문화’. 말 그대로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생애 내내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만들려고 한, 그래서 갖추게된 애플이란 회사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 주된 이야기는 ‘스티브 잡스 전기’ + ‘인사이트 애플’의 내용을 ‘애플의 문화’란 키워드로 꿰었다-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 날 강의를 통해 이야기된 애플의 문화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비밀주의 = the ultimate need-to-know culture
우선 알다시피, 애플은 매우 비밀스러운 조직입니다. 에스티마님 표현에 따르면 실리콘 밸리의 섬. 구글과는 정말 반대되는 문화를 가진 조직이죠. 이 조직의 구성원은 일종의 점 조직과 같아서, 개개인은 자기한테 필요한 정보만 알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심지어 회의조차 얼굴 보고 하는 것을 좋아하지, 화상 회의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런 비밀주의 문화가 가지고 오는 장점은 ‘핵심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 사내 정치가 없다는 것. 한마디로 남을 신경쓰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만 열심히하면 되는 문화입니다. 그리고 그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 바로 조직 핵심 = 스티브 잡스이고, 현재는 팀 쿡이 하고 있는 일입니다. 모든 것은 쿠퍼티노로!
대신 제가 보기엔 단점도 명백해 보입니다. 아래에도 나오지만, 바로 책임의 문제입니다. 이런 중앙 집권적인 조직은 그 중앙이 모든 책임을 집니다. 한국 재벌이 가지는 일부분의 장점과 일치합니다. 그래서 의사결정도 빠르고 실행속도도 빠릅니다. 다만 그 중심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그 댓가는 매우 혹독합니다.
2. 열정적인 문화
애플의 문화는 오로지 일만 하는 문화입니다. 꼭 재미라고 할 수는 없지만, 뭔가를 위해서 열심히 일합니다. 그것은 바로 훌륭한 제품에 열정을 바친다는 자부심입니다. 대신 피곤하죠. 그래서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애플 안의 사람들은 나가고 싶어하고, 애플밖의 사람들은 들어오고 싶어한다”
이런 면은 한국 대기업, 특히 삼성과도 비슷합니다. 사람에겐 ‘승리하는 팀’ 또는 ‘인정받는 팀’에서 일하고 싶은 속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애플에서의 삶을 참고 견딥니다(?). 그 노동강도는 한국과 비교해도 별로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라고 합니다. 아니, 애플이 더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3. 디자인 우선주의
애플이 가진 또하나의, 그리고 매우 독특한 특징은 디자인을 모든 것에 우선시한다는 겁니다. 박스 포장만을 매일 열어보는 직책(포장 디자이너_이 따로 있을 정도로, 디테일에 대해 엄청난 집착을 가진 회사라는 것은 다들 아실겁니다. 디자인 우선주의는 디자이너에 대한 대우에도 영향을 미쳐, 애플에선 디자이너의 의견이 우선시되는 것은 물론, 그들에게 상당한 예의를 갖춰서 대접한다고 합니다.
…이건 일반적인 다른 기업과는 꽤 많이 다른 특징입니다. 다만 이 디자인 영역에는, 단순히 제품 디자인 뿐만 아니라 사용자 경험 디자인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보시는 게 맞을 것 같네요.
4. 통제 intergration
하지만 이런 디자인에 대한 집착이 나은 또다른 면이 있으니, 바로 통제-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통제하고 싶어하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기업이 바로 애플입니다. 과거 PC 시절에는 제대로 안먹혔으나, 나중에 모바일 시대가 개막되면서 애플을 아주 강하게 만들어준 힘이기도 합니다. 이걸 따라하고 싶어했던 기업이 있었으니, 바로 닌텐도입니다. 실제로 닌텐도의 롤 모델이 애플이었다고 합니다.
5. 미니멀리즘,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
애플이 다른 회사와 다른 또다른 특징은, 핵심에만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잡스가 다른 젊은 사업가들에게 자주 해 준 조언도 핵심에만 집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복귀한 이후 애플의 제품 라인업을 대대적으로 정리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고, 야후의 CEO 제리 양에게도 “잘 할 수 있는 다섯가지만 고른다음, 그것에만 집중해라.”라고 이야기 했다지요. 팀 쿡 역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알기로 애플은 가장 포커스된 회사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집중할 수 있는 작은 리스트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지말아야 할 것을 정하는 것. 물론 그로 인해 때로는 리스크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대신 자신이 할 일을 명확히 인식하고, 그것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애플 사람이라면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 지를 손쉽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집중할 수 있기에 이런 일도 벌어집니다. 애플에선 매주 월요일 아침에 주요 임원들과 CEO가 애플의 제품들을 전반적으로 검토합니다. 현재 애플의 제품이 대략 8개 라인업이니, 일주일에 하나만 리뷰해도 두달에 한번씩은 그 제품을 들여다 보게 됩니다. 한마디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2달안에 CEO에 의해 리뷰가 된다는 말입니다. (…정정합니다. 2주에 한번이라고 합니다…;;)
… 자사의 전제품을 2주에 한번씩 직접 리뷰하는 CEO가, 과연 한국에 있을까요?
6. 이윤은 신경쓰지 마라
애플 직원들은 부잣집 자식처럼 행동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쉬운 것 없이 큰 사람들처럼, 오로지 자기가 맡은 일에만 신경쓴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행동의 바탕에는 애플 특유의, 이윤을 잊어라-는 문화가 있습니다. 개발자가 자신이 만든 제품이 얼마에 팔려서 얼마의 이익을 거둘지를 생각하면 안된다는 거죠. 스프레드 쉬트를 쓰는 것은 오직 책임자뿐.
대신 자신이 맡은 일을 최고로 해내면 됩니다. 그 대단한 조너선 아이브라도 디자인만 잘하면 됩니다. 이렇게 A급 인재를 데려와서 맡은 일만 최고로 하면 다른 것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문화, 그것이 애플의 기업 문화입니다. 나머지는 또다른 A급 인재들이 책임질테니까요.
그 밖에도 이날 들은 애플 고유의 문화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단순하지만 이야기가 있는 메세지를 전달하기 좋아하고, 미디어를 콘트롤하고 싶어합니다. 몇가지 제품에 집중하고,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만 최고로 수행하면 됩니다. 그래서 대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에게 마치 스타트업 기업에서 일하는 것 같은 착각을 줍니다.
그래요. 이런 기업이 가능했던 것은 결국 스티브 잡스 때문입니다. 그가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일관되게 밀어붙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통찰력이 옳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다가, ‘나는 저런 기업에서 일하고 싶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때, 그 대답은 ‘아니오’였습니다.
분명 애플은 훌륭한 회사입니다. 그리고 잡스 사후에도 당분간은 꽤 괜찮은 회사로 남을 것입니다. 기업의 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으며, 올바른 문화와 시스템을 세워놓으면 망해도 3년은 갑니다(…속담에 따르면 말이죠). 하지만 강의 중에도 농담삼아 ‘종교 조직’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달리 표현하면 애플은 ‘잡스의 군대’였습니다.
최고의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면 멋진 제품이 만들어지는 회사, 좋지 않나요? 그런데 전 그런 분위기가 영 못마땅합니다. 결국 머리와 심장은 회사의 것이고 일하는 직원들은 그저 제국의 1人. 전 이런 곳에선 답답해서 오래 못버틸 것만 같단 말이죠…
Inside Apple – 애덤 라신스키 지음, 임정욱 옮김/청림출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