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라 정재훈. 다시 만나자…

1. 예전 여자친구가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오빠랑 있으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듣게 된다고. 그런가. 내가 죽는 것이 무서운가 보다-라고 웃으면서 대답했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나는 무섭다. 죽는 것이 무섭다. 죽는다는 사실 자체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누구나 언제라도 죽을수 있다는 사실이 무섭다. 참, 무섭다.

매일매일 그것을 의식하면서 살아간다. 내가 지금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에 나온 말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확실하게 하면서, 어떻게든 밝은 기분으로 사는 것이 좋다고.

2. 그 녀석과 나는 이상한 친구 관계였다. 그러니까, 그 녀석에게 가장 좋았던 시절이, 내겐 가장 악몽처럼 기억되는 시절이었다. 모두가 달콤하게 기억하는 시절이 나만 이상하다니. 그런 감정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정확하게는 하나의 사건이 있었고, 다른 이들은 그 사건을 기억에서 지웠다. 나만 기억하는 씁쓸한 기억. OK. 나 하나만 사라지면 된다. 그럼 모든 기억이 좋은 것이 될테니까. OK. 그래서 그 친구들을 떠났다. … 내 기억에서 그 친구들을 지웠다.

▲ 우연히 만났던 오사카 공항에서

그런데 이상하게, 그 사건을 만든 장본인이었던 선배와, 그 녀석만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계속, 우연히 만났으니까. 촛불 집회 현장에서, 탄핵 반대 집회에서, 홍대 앞에서 길을 지나가다, 지금은 없어진 교보문고 옆 청진동 해장국집에서, 결혼식장에서, 심지어 일본에서도.

3. 때문에 나는 그 녀석에 대한 글도 썼었다. 지난 토요일엔 그 녀석이 입원한 병실을 찾아갔다. 세시간 정도 있으면서 계속 떠들었던 것 같다. 아가씨 사진도 보여주면서, 이렇게 예쁜 아가씨랑 소개팅 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뻥도 치고, 이런 저런 농담도 해댔다. 몸이 안좋아 대답도 잘 하지 못하던 녀석이, 약이 올랐던 것일까. 나중에 놀러온 같은 회사 후배에게 계속 연애사를 물어본다. 그러면서 제법 훈수를 둔다.

그 녀석과 후배 아가씨가 얘기하는 동안 잠시 소파에 앉아 쉬고 있는데, 그 녀석이 갑자기 묻는다.

나 아픈 이야기도 글 써서 올릴거유?

농담인줄 알고 싱글싱글 웃으며 농담으로 대답했다.

왜? 하나 써서 올려줄까?

그런데 그 녀석이 갑자기 말이 없다. 도리질을 칠 줄 알았는데 가만히 있는다. 올려달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갑자기 머릿속이 헷갈리기 시작한다.

4. 그 녀석은 좋은 녀석이었다. 그것만큼은 확실하다. 겉으로 퉁명스러운 사람들이 늘상 그렇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랑했다. 나서는 타입도 아니었고 머리를 쓰는 타입도 아니었다. 하지만 리더쉽도 있었고 머리도 좋았다. 그것도 내가 안다. 그래서 나도 그 녀석 만큼은 미워하지 못했다.

그런 녀석이 세상을 떠났다. 몇시간 전에. 카카오톡으로 날아온 부음을 들었다. 지금 나는 도쿄에 있는데, 그 녀석이 세상을 떠났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마음이 막막하다. 마지막 가는 길도 보지 못하게 생겼다.

어차피 죽을 것은 알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다고 생각했으니, 그런 실없는 농담이나 주고 받았던 것이겠지. 페이스북에 들어가 녀석이랑 나눈 메세지를 살펴봤다. 몇달 전 녀석은, 자신의 좋았던 시절을 정리하는 글을 쓰고 있었다. 그 안에는 실명으로 나도 거론된다. 그래서일까. 그 녀석이 마지막으로 보낸 메세지는, 미안해요-라는 말이었다.

5. 인생, 뭐 있을까. 녀석이 죽었어도 세상은 돌아간다. 녀석이 싸웠던, 바꿔놓고 싶었던 세상은 여전히 그 모양이다. 그건 내가 죽어도, 누가 죽어도 마찬가지일거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현실엔 없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간다. 여전히 버티며, 울고 웃다가, 가끔 먹먹함에 주저앉을때조차도, 살아간다. 아무리 미워하고 사랑해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것.

나랑 그렇게 악연이었던 선배는 올해 1월에 죽었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았던 녀석도 방금 그렇게 죽었다. 미워하고 사랑해도 상관없이,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떠나고,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나도, 당신도. 그러니까 다시, 할 수 있는 것을 확실하게 살면서, 되도록 밝은 얼굴로 사는 것이 좋다-고 나를 토닥인다. 떠나간 녀석의 등을 토닥인다.

걱정하지 말라고. 그 녀석을 마지막으로 보던 날, 건방지게 그렇게 말했다. 남은 것은 남은 사람들이 책임질거라고. 돌아오는 길, 이럴 때만 찾는 하느님에게 기도도 했다.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아버지가 심하게 아프다 돌아가신 것을 봤던 나로선, 다른 이를 불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날것이 되어 밀려든다. 그런 기억은 쉬이 삭지도 않는다. 그때랑 똑같은 심정이 되어 기도했다. 제발, 아프지라도 않게 해달라고. 하느님 아버지, 정말 죄송한데요, 제발, 제발 좀.

6. 괜찮다. 녀석의 소식을 듣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너, 참 열심히 살았으니까. 니가 참 열심히 살았다는 것, 니 아내도, 가족들도, 친구들도, 모두 다 잘 아니까. 장담하는데 지금, 사람들이 참 많이 모여있을꺼야. 볼 수 없는데도 느껴진다. 너를 배웅하러 지금, 달려가고 있을 친구들이. 그러니까, 괜찮다. 잘 살았다. 그만하면 잘 살았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때가 되면, 나도 갈테니까. 그때 다시 만나자. 그때도 괜히 친한 척은 말고, 친구들 안부나 묻고, 해장국이나 같이 먹고, 커피나 한잔 하고, 가볍게 헤어지자. 우리는 딱 그 정도 관계였으니까. 그런 내가 너를 잃고 이렇게 글을 쓴다. 그런데 다른 이들의 마음은 오죽 하겠니.

그러니까 부디, 편히 떠나길. 세상에 미련두지 말길. 넌 잘살았으니까. 니가 열심히 살았다는 것, 우리 모두가 기억하니까.

7. 잘가라. 정재훈.
니 이름 석자 다시 내 마음에 새긴다. 해마다 다시 마음에 새길거다. 글쟁이라 이렇게, 글로 인사할 수 밖에 없어서 미안해. 내가 더 오래 살아남아 이렇게 말을 돌려준다. 미안해.
다른 말은 하지 않을께. 그냥 기억만 할거야.

괜찮아. 그래도 언젠가는, 꼭, 다시 만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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