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짝’의 SNL코리아 ‘쨕’ 고소, 과연 정당한가?

지난 SNL 코리아에서도 신나게 풍자했지만, 지난 9월 24일, SBS의 대표적 짝짓기 프로그램인 ‘짝’에서 서울중앙지법에 SNL코리아2의 ‘쨕- 재소자 특집’이 ‘짝’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1억 5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SBS측은 소장을 내며 “‘SNL코리아’가 ‘짝’의 자기 소개 및 도시락 선택 데이트권 획득 등을 활용해 ‘짝’을 지나치게 희화해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 SBS에 고소당한 SNL코리아2의 한 코너 ‘쨕’

 

패러디는 왜 사랑받는가

패러디의 사전적 정의는 “특정 작품의 소재나 작가의 문체를 흉내 내어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수법. 또는 그런 작품”입니다. 이미 있는 작품을 한번 비틀어서 웃음을 주는 것이 패러디 기법의 특징이죠. 그래서 패러디의 3가지 요소를 흔히 ‘원작을 확실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가’, ‘원작을 적절히 비틀었는가’, ‘재미가 있는가’의 3가지라고 말하곤 합니다. 애시당초 패러디(Parody)의 어원이 ‘대조, 대응, 유사함’이란 뜻을 담고 있기도 하구요.

패러디가 현대 사회 콘텐츠에서 많이 사용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일단 유명한 작품의 형식을 차용했기에 보는 사람들이 알아차리기 쉽고, 따라서 인지도가 높아집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아는 작품이 나오니 일단 편안하고, 굳이 어떤 장면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구요. 게다가 원작을 비틀었다는 사실 자체에서 오는 재미가 있습니다. 때문에 패러디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콘텐츠가 바로 광고와 코미디입니다.

당장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원작 자체도 현대 사회에 대한 패러디적인 풍자를 담고 있지만, 그것을 패러디하는 이유 역시 사람들에게 익숙해져 있고, 그래서 쉽게 재미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원작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패러디가 항상 부딪히는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명예훼손’ 문제입니다. 원작이 있음을 아예 대놓고 밝히기 때문에 표절이나 도용 문제에서는 그나마 자유로운 편인데, 패러디의 성격이 풍자에 있는 만큼, 비꼼을 당한 대상 입장에서는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고 여겨서 소송을 거는 경우가 있습니다. SBS의 짝이 tvN SNL 코리아의 쨕을 고소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겠지요.

▲ 재미있는 것은, SNL 코리아 이번 시즌에서
이 비슷한 개그를 구사했던 적이 이미 있었다는 사실

 

 

패러디와 원본의 복잡 미묘한 관계

사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긴 했지만, 패러디는 오리지널에 대한 경외감을 잃어버린 현대 사회 문화의 주요한 구성 요소중 하나입니다. 모든 콘텐츠가 오리지널일 수는 없으니까요. 애시당초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문화 콘텐츠들이 명백한 패러디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그리트의 작품 ‘발코니’는 명백히 에투아르 마네의 ‘발코니’를 패러디한 작품입니다.

▲ 마네의 발코니

▲ 마그리트의 발코니

 

원래 패러디가 잉태됐던 문학에서야 이런 기법을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죠.

 

▲ 제인 오스틴의 원작 오만과 편견

▲ 작년에 출시된 패러디 소설,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이렇게 수많은 콘텐츠가 패러디 기법을 통해 재탄생되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단순하게는 앞서 말한 것처럼 관심 받기가 쉽고 재미있기 때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원래 콘텐츠가 가지고 있었던 맥락을 비틀어 그것이 원래 가진 의미에서 벗어나는, 보다 적극적인 콘텐츠 수용의 한 형태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과거의 작품이 현대에 다시 해석되어 태어나는 기점이 바로 패러디이기도 하고, 하나의 작품이 새롭게 해석되어 확장되어 나가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패러디의 대상이 된 콘텐츠들이 패러디한 대상들을 별로 저주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그것이 잘된 패러디이건 아니건, 조롱의 의미이건 존경의 의미이건, 그렇게 패러디됐단 사실 자체가 원본 콘텐츠의 인기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본 콘텐츠가 더 많이 해석되어 퍼질수록, 원본의 인기는 높아집니다. 그것이 바로 현대 사회의 콘텐츠 시장.

 

SBS는 왜 SNL 코리아를 고소했을까?

그런데도 SBS는 왜 SNL 코리아를 고소했을까요? 사실 ‘짝’은 이전에 MBC ‘무한도전’을 통해서도 ‘짝꿍’이란 이름으로 한번 패러디 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SBS는 이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반면 SBS는 tvN의 SNL 코리아는 고소했습니다. 왜? SBS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무한도전은 모방이 아니었지만, SNL 코리아는 모방이라고.

짝에서처럼 SNL 코리아의 ‘쨕’이 ‘번호’로 사람을 호명한 것과 ‘도시락 선택’, ‘데이트권’등을 놓고 다투는 것이 SBS의 콘텐츠를 모방했다는 겁니다. … 뭔가 좀, 궁색하죠?

▲ 아예 원본 영상이 통채로 사용되는 ‘히틀러의 몰락’ 패러디
사실 더키앙님의 글(링크)에서 지적한 대로, 이번 고소는 그동안 몇가지 구설수에 시달려온 SBS 짝 제작진이 ‘쨕’에서 재미요소로 삼은 몇가지 것들에 화나서 고소했다고 보는 편이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짝이 가진 어떤 진정성- 원래 다큐에서 시작했기에 존재하는 프로그램의 기획의도가 ‘몇몇 특정 출연자’들에 의해 계속 훼손되는 상황에서, SNL코리아가 자신들의 프로그램 포맷을 이용해 풍자하자 위기 의식을 느낀 것이라고.

 

 

고소로 진정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 고소는 의도치 않은 역풍을 불러왔습니다. 당연한 것이, SBS의 고소가 혹시라도 승리한다면, 수많은 코미디 프로그램의 꼭지들은 위기를 맞게 되기 때문입니다. 광고나 예술작품 역시 마찬가지구요. 패러디를 할 때마다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현대 사회 콘텐츠의 많은 부분은 아예 제작하기가 불가능해 집니다.

▲ 이런 경우 카톨릭에서 김기덕 감독을 고소해야 하나요?

▲ 개콘 거지의 품격은?

 

 

사실 ‘쨕’이란 프로그램 포맷을 SBS ‘짝’에서 갖고 왔음을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인지하고 있는 상황에서(인지하지 못했다면 웃음도 제대로 줄 수 없습니다. 패러디 프로그램의 숙명이죠.), 이번 SBS의 고소는 그닥 뒷 맛이 개운치 않습니다. 다행히 SNL코리아에서는 과감하게 고소장을 받자 한번 더! 짝-을 패러디함으로써 그 근성을 잃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긴 했습니다만-

어쨌든 이 개운치 않은 소송이 하루 빨리 마무리 되기를 바랍니다. 혹시라도 이런 일들이 계속 발생해 패러디물에 대해 보이지 않는 자기 검열이 행해진다면, 우리에게 또 하나의 즐거움을 앗아가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마,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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