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과부하, 오늘, 내 머리가 멈췄다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하지 못한다. 하나에 빠지면 다른 하나를 까맣게 잊어버리는 성격이다. 평소에 체크 리스트를 이용해 매일 꼭 해야 할 일을 정리하는 것도 안 그러면 일상의 많은 부분을 방치해 버리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책을 읽겠다고 시간을 냈다. 책을 읽다 보니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RSS를 열어보는 것을 까먹었다. 월요일 아침 컴퓨터를 켰다. 읽지 않은 이메일 700여 통, 읽지 않은 RSS 게시물이 1000개 이상. 정신이 아득해졌다. 난 그냥 책을 읽었을 뿐인데, 대체 이게 뭐람.

 

예전 같았으면 간단하게 끝냈을 일이다. 하루가 지난 정보는 어떤 것이 됐든 무시하고, 그냥 리셋한다. 이메일은 전체 선택 버튼을 누른 다음에 삭제, RSS 리더 피들리에선 ‘모두 읽음으로 표시’ 아이콘 클릭. 필요하면 다시 연락이 오거나, 정보를 접할 일이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사실 그렇게 살았어도 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뭔가 중요한 정보를 놓쳤을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나는 보지 못했다. 그럼 됐다. 화성에서 우주 전쟁이 벌어졌다고 해도 내가 모르면 모르는 거니까.

 

문제는 내가, 이젠 그런 정보를 수신하고 정리해서 처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보를 받아 정리한 뒤 생각을 더해 글을 쓴다. 그게 내가 매일매일 하는 일이다. 좋은 정보를 놓치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정보를 받아 정리하지 못하면 매일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다 들여다봐야 하는데, 이거, 너무 많다. 난 그냥 책을 읽었을 뿐인데, 소화하지 못할 정보가 가득 쌓였다. 이틀간 컴퓨터를 안 켠 죄는 이렇게 크다. 감히 주말에 쉬다니, 그런 못된 생각을 하다니.

 

결국 난 머리가 터져버렸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고,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그냥 그때그때 일어나는 일에 반응만 하며 살았다.

 

Photo credit: Alfred Hermida via Visual Hunt / CC BY-NC-SA

 

정보 과부하, 하루 종일 좀비처럼 살다

 

오늘 아침 이 정보들을 처리하기 위해 내가 할당한 시간은 90분이었다. 이 시간 안에 이 것들을 다 처리하면 내가 ‘알파고’다. 그나마 가능한 것은 전체를 훑어보고, 나중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만 일단 추려내는 일. 이메일은 상대적으로 쉬웠다. 대부분이 보도 자료 아니면 광고 메일이라, 필요한 메일만 읽고 나머지는 모두 지워버리면 됐다. 슬프지만 개인적인 메일은 단 한 통도 오지 않았다. 평소에도 안 온다. 이러니 내가 주말에 이메일을 열 생각도 안 하지.

 

RSS는 좀 더 어렵다. 한국어/영어/일본어로 들어오는 정보가 뒤섞여있기 때문이다. 과감하게 구글 자동 번역을 켰다. 문맥은 안 맞아도 대충 제목 번역된 것을 보면, 어떤 내용인지 짐작은 가니까. 그 제목만 보고 주르륵 스킵하기 시작했다. 필요한 정보는 ‘나중에 읽기’로 저장해 두면서. 그냥 저장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 나중에 일이 힘들어진다. 태그를 붙이면서, 이건 이런 글을 써야겠다. 이건 쓰고 있는 글에 자료로 넣어야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저장한다. 그러니까, 읽으면서 글 계획을 세운다.

 

그러다 머리가 터져버렸다. 한두 개면 모르겠지만, 그렇게 글 계획이 세워진 것들이 대여섯 개만 넘어가도 머리가 헷갈리기 시작한다. 평소 같으면 수첩에 메모하면서 흝어갔을 텐데 오늘은 바쁘니 그것도 어렵다. 머릿속에 수십 개의 글 메모가 쌓이고 쌓이고 쌓인다. 대충 흝어보기를 마무리하고, 상암동으로 갔는데, 기분이 이상하다. 쌓인 것이 머릿속에서 완전히 헝클어져 버렸다. 뇌에 마취약을 맞은 느낌. 뭔가 멍-한 상태에서 내가 맡은 코너에 대해 떠들고, 다음 주 아이템에 대해 떠든다. 뭔가 멍-한 상태에서 커피를 마시고, 뭔가 멍-한 상태에서 운전을 한다.

 

맞다. 나는 지금, 머리가 멈춰버린 느낌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집어넣은 것이 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생각 안 나니, 일단 아무것도 생각 안 난다는 글이라도 먼저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버거울 때는, 일단 그 문제에 대해 적어보는 것이 언제나 최선이었으니까. 나란 사람은.

 

Photo credit: lyonora via VisualHunt / CC BY-NC

 

정보 과부하의 문제인가, 필터링의 문제인가

‘똑똑한 정보 밥상’을 쓴 클레이 존슨이라면, 이런 나를 보고 비웃었을 것이다. 아마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바보야! 그건 정보가 문제가 아니라 니가 정보를 잘못 먹어서 그런 거야!

좋은 재료로 건강한 밥상을 차려서 맛있게 먹어야지, 이런저런 정보를 죄다 모아다 밥상을 잔뜩 차려놓고, 그걸 또 다 먹겠다고 덤볐으니 체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말이다. 아니면 그 좋은 커피 다 놔두고 스타벅스에서 ‘악마의 음료’만 수십 종류를 시켜서는 다 마시겠다고 설친 꼴이라고 해야 하나. 나름 고르고 고른 ‘정보 소스’에서 받는 글들이지만, 일단 내가 체했으니 변명은 못하겠다.

 

클레이 셔키라면 인류는 원래부터 ‘정보 과부하’ 상태였고, 문제는 ‘정보 과부하’가 아니라 제대로 걸러줄 필터가 없거나, 고장 난 거라고 놀려댔을 것 같다. 1000개의 글 가운데 글감이 될 만한 소식은 십 여개에 지나지 않았고, 그중에 많은 소식은 중복된 정보였다. 만약 피들리가 중복된 정보라도 걸러줄 인공지능(?) 필터링 기능이 있었다면, 내가 읽어야 할 정보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걸 못해서 수많은 언론, 글쟁이들이 ‘인간 필터(=큐레이션)’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것 아닌가.

 

문제는, 내가 그 필터를 자처하고 있는 인간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이지만(역설적이게도 글쟁이와 언론은 수많은 정보를 쏟아내고 있는 주범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테크 사이트들이 만들어내는 기사가 1주일에 약 백여 개. 일반적인 신문 사이트들이 쏟아내는 기사가 1주일에 약 1500여 개가 넘으니, 많이 써도 일주일에 10여 개가 고작인 글쟁이들은 좀 봐줘도 되지 않을까-라고 소심하게 중얼거려 본다).

 

 

아무튼, 문제는 다시 나다. 글을 쓰다 보니 다시 정신이 좀 돌아오긴 하는 것 같지만, 앞으로도 이런 일은 종종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가 생겼으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셔키 아저씨의 말을 빌자면 지금 내 정보 필터는 고장 났거나, 성능이 부족하다. 내 머릿속으로 필터링 하는 것은 한계에 달했다. 그렇다면? 남에게 위임하거나, 새로운 대안을 실행하거나,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 뭐가 됐든 당장 할 수 있는 대책을 찾아야 한다. 안 그러면 스트레스 받아서 암에 걸릴지도 모르니까. 나는 그럭저럭 오래 살고 싶다.

 

정보 과부하에 대한 대책을 찾아서

인정하자. 정보 과부하는 우리(또는 나 같은 몇몇 사람)가 처한 일상이다. 네트워크라는 증폭기를 만난 이후, 우리는 데이터로 오염된 공기 속에서 살고 있다. 정보는 정말 정말 많은데 그중 상당수가 ‘중복된’ 정보이거나 ‘단순 호기심’을 자극하는 정보다. 오늘 하루만 해도 내가 본 비키니 입은 여성들이 몇 명인지 모른다. 정보 과부하에 치여 멍한 상태에서도 살색 썸네일들을 클릭했다. 미안하다. 나는 유혹에 대단히 취약하다. 알랭 드 보통은 아예 남자란 생물 자체가 그렇게 잘못 설계되어 있다고 하니, 꼭 내 잘못만은 아닌 것 같다.

 

당신이라면 사랑스러운 할리퀸을 클릭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살아야 한다. 정보가 밥이라면, 다이어트의 기본인 ‘식단 조절’과 ‘적절한 운동’을 따라야 할 것이다. 물론 나는… 정보 패스트푸드를 많이 먹어서 살찐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선 내가 이미 실행하고 있는 방법들을 정리해 본다.

 

지킬 것 – 게으름의 미학을 지키는 것

 

물론 개뿔이 미학이다. 그저 나는, 대부분의 알람(구글 캘린더의 일정 알림, 페이스북 메시지 제외)을 받지 않는다. 누군가가 전화를 해도 바로 받지 않고, 문자를 보내거나 카톡을 해도 바로 답장하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온 줄을 잘 모른다. 글 쓸 때 누가 방해하는 것을 정말 싫어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꺼놨다. 그로 인해 방송 섭외나 원고 청탁을 놓치는 일도 생기지만, 어쩌겠는가.

 

멀티 태스킹도 하지 않는다. 원래 타고난 성격이 하나에 빠지면 다른 것을 거들떠보지 못하는 편이다. 웹 서핑하면서 자료 찾다가 살색 썸네일… 을 클릭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아무런 의미 없이 쇼핑몰 사이트를 검색하면서 온갖 고민을 다하고 있는(사지도 않을 거면서) 나를 발견하는 일도 잦지만. 그리고 매일 아침, 그날 해야 할 일들의 목록(오늘의 미션 1~3, 셋 이상은 능력이 없어서 불가능)을 만들어 실행한다. 여기까지는 오케이.

 

추가로 실행할 것 – 식단 조절

정보 식단 조절은 일단, 정리 컨설턴트로 명성을 얻어 최근 미국에까지 진출한 곤도 마리에의 룰,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를 따라 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녀의 룰은 아래와 같다.

 

① 어떤 삶을 살고 싶은 지를 머리에 그림 그릴 것
② 올바른 순서로 ‘물건별’로 정리할 것
③ ‘만졌을 때 설레는지 어떤지’로 판단할 것
④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를 선별할 것
⑤ 단기간에, 단숨에, 완벽하게 해낼 것

요약하자면… ‘정리는 남길 것을 고르는 것’. 다이어트로 따지면, 몸이 좋아하는 음식만 먹는 것이랄까.

 

곤도 마리에. 미국에서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MUJI와 더불어 미국은 이런 일본식 라이프 스타일이 의외로 먹히는 듯.

 

현재 피들리에 등록된 rss 피드의 숫자는 150여 개. 이 가운데 업데이트가 멈췄거나, ‘이름을 딱 봐서 알지 못하는 피드’는 지울 것. 예전에도 이렇게 쫙 지운 적이 있었는데, 필요한 피드는 다시 검색을 해서라도(검색에 자꾸 걸려서라도) 다시 등록하게 되더라. 그래도 건강식만 먹으면서 살 수는 없으니, 몇몇 피드(… 어떤 피드인지는 서로 궁금해하지 말기로 하자.)는 그대로 남아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예전에 트위터 팔로잉을 이 방법을 써서 정리했었다. 꼭 읽어보고 싶은 사람만 남기니 10여 명만 남더라. 그다음부터 트위터를 잘 안 들어가게 됐다(…. 응?).

 

개인적인 메일이 아닌 메일은 모두 스팸 메일로 등록할 예정이다. 단체 메일 가운데 솔직히 나에게 쓸만한 정보를 담고 있는 메일은 별로 없다. 그리고 대부분 내가 읽지 않아도 상관없는 메일이다. 스팸 메일에 등록된 메일은 하루에 한 두 번씩 제목만 흝어본 다음, 필요한 내용이 없으면 전체 삭제를 눌러서 삭제한다. 음, 왠지 앞으로 메일함도 별로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친구들에겐 미안하지만 페이스북도 그렇게 될지 모르겠다. 나는 살고 싶다.

 

추가로 실행할 것 – 적절한 운동

정보를 끊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정보를 체크하고 정리하는 프로세스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써먹을 수 없는 정보는 잡동사니가 가득한 낡은 창고나 다름없다. 추억은 소중하지만, 그런 추억을 만들고 싶다면 차라리 친구들을 만나 맥주를 한잔 더 하는 것이 낫겠다. 어머님께 전화 한 통 넣거나. 데이트.. 도 좋지만, 그건 뭐 혼자서 못하는 거니까(통곡).

 

다시 말해 ‘아웃풋’을 만드는 정보에 집중할 것. 예전에 블로그를 쓰면서 배운 가장 소중한 원칙도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아웃풋, 당신에게 블로그가 필요한 이유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를 처리하는 프로세스를 정하고 정해진 시간에만 그것을 하는 것. 여행 다닐 때에는 아침에 일어나 30분~1시간만 정보 처리에 사용했다. 더 하려면 여행을 못하니 어쩔 수가 없었는데, 희한하게 더 처리를 못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더라. 실은 8년 전에 이에 대해서도 스스로 한번 정리했었다. 써놓고도 기억을 못해서 문제지.

 

정보에 대한 강박 관념을 버리기 위해

이 글은 오늘 내가 당한(?) 정보 과부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썼다. 앞서 적었지만, 문제가 생기면 문제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버릇이다. 적다 보니 다행히 갈 길이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 실행에 옮긴 것은 아니다. 대부분 이미 고민했던 문제들이고, 해결책을 찾았다고 생각했고, 시간이 지나니 다시 수정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자고로 계속 닦고 기름치고 조여줘야 뭐든 제대로 굴러가는 법이니까.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뭔가 ‘많은 것’을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눈 앞에 놓인 것은 다 먹어야 해’라고 믿는 것처럼(어린 시절 어머니는 정말 그렇게 가르치셨다. 한톨도 남기지 말고 싹 다 먹어 치우라고.). 정보 과부하 해결책에 대해 말하는 많은 글들도, 정보 과부하는 자꾸 딴 짓을 하게 만들기 때문에 생산성의 적이니 물리쳐라!라고 얘기한다. 다시 말해 일 잘하기 위해 이런저런 집중을 방해하는 것들을 없애라는 것.

 

… 그놈의 생산성, 신물이 난다. 일 잘한다고 일찍 퇴근 시켜 주는 것도 아니면서(물론 저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시간이 돈이라 누가 글 쓸 때 방해하면 정말 싫어합니다(꾸벅).).

 

나는, 삶이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것이 싫다. 오늘처럼 머리에 마취제라도 맞은 것 같은 상태로 움직이는 것은,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좋은 글을 읽고 싶고,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고, 신나는 영화를 즐기고 싶고, 멋진 그림을 보고 싶고, 다정한 춤을 추고 싶고, 새로운 것을 느끼고 싶고,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 누구나 삶에서 그런 시간이 필요하고, 그런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시간을 만들기 위해, 정보 과부하에서 벗어나고 싶다. 일단은 실행이 중요하겠지. 밤새(?) 정보 소스 관리를 먼저 해야겠다. 그에 대한 결과 보고는,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쓰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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