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늙고 있다."
그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었다. 노화를 늦출 수는 있지만 결코 피할 수는 없다. ... 사람의 생명은 그런 상태로 프로그램 되어 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쏟아 부은 노력의 양에 비해 얻을 수 있는 양은 적어지고, 마침내 제로가 된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풀 사이드"에서
서른이 넘으면 자살하고 말거야.
그렇게 말하고 다닌 적이 있었다. 서른이 넘을 때까지 어떻게 살아있을 수 있냐고, 차라리 죽어버리고 말겠다고. 그때 우리가 꿈꾸었던 삶은 제임스 딘이나, 이소룡이나, 기형도나, 커트 코베인이나, 어쨌거나 요절한 천재 같은 삶에 가까웠다. 지루하디 지루한 인생, 한번 굵고 짧게 태우고 끝내버리고 싶다고.
...그리고 나는 서른이 넘었다. 피부는 거칠어지고, 조금씩 나잇살이 몸에 붙기 시작하고, 여러 번의 시작과 끝맺음을 경험한. 나이는 먹으면서도 청춘은 끝나지 않아서, 바보같이 아직도 가슴 설레이는 일, 속상해서 가슴 아픈 일 투성이지만, 어찌되었건 그저 그렇게 서른이 넘었다. "아직도 자살하지 않았네?"라는 농담도 들을 수 있는...ㅜ_ㅜ
그러다가 나는, 성룡을 만난다. 팔짱을 낀 모습으로, 변함없이 친근한 미소를 가득 담고 있는 얼굴을. 쉰이 넘은 이 아저씨는 아직까지 지치지도 않고 추석마다 우리를 찾아온다.
6년전인가 5년전인가 성룡의 러시아워2를 혼자서 극장에서 봤다. 아마 내가 영화라는 매체에 감동받았고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첫 영화였던것 같다. 할리우드 성룡을 사람들은 싫어하지만 난 러시아워2 만은 정말 좋았다. 이젠 성룡영화의 전매특허라 할수 있는 스탭롤 엔지씬에서 크게 자빠지는게 있는데 스탭이 묻는다.
"잭키 괜찮아?"
"잭키는 언제나 괜찮아"
- 레진님의 BB 프로젝트 (2006, BB Project / Rob-B-Hood) 포스팅에서 인용
그래, 이소룡은 가고 성룡은 남았다. 그리고 이 아저씨의 모습을 보다보면, 절로 이런 생각이 든다. 서른 따위가 뭐 대수라고. 꿇은 무릎을 툭툭 털고 일어서고 싶어진다. 나이 따위가 뭐 대수라고. 살아가야할 삶을 살면 그 뿐인건데, 그래, 힘껏 살면 그 뿐인건데.
응, 알고보면 즐거운 인생일지도 모르니까. 얼굴에는 다정하게 미소를 띄우고, 언제나 괜찮아- 한마디 날려주면서, 일어서자. 살아갈 거라면 성룡처럼. 이제는 나이가 들었으니까, 이소룡, 제임스 딘, 기형도, 커트 코베인이 되고 싶은 꿈일랑 안드로메다로 던져버리고, 성룡처럼. 살아갈 거라면, 성룡처럼.
*P.S. 하지만 가장 최근에 봤던 성룡의 영화는 김희선과 함께 출연한 "신화"였다...O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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