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워, 어째서 성공했을까?

이 글의 제목은 두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디 워 같은 B급 영화가 어째서 이 만큼이나 성공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이고, 다른 하나는 “디 워, 이래서 (한국에서) 성공한 것 같다-“라는 의미입니다.

* 스포일러 있습니다.

디워 포스터


디 워, 재미없었던 영화

한국에서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은 드문 일은 아닙니다. 한국에서 영화는 ‘친구, 연인, 가족들과 함께 보는 영상물’입니다. 그래서 한 번 본 영화도 친구들 모임에서 다들 안봤다고 하면 또 보게 되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하지만 (유독 제 친구들만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디 워, 한 번 봤던 사람들은 절대 다시 보지 않으려고 하더군요. 왜 그럴까 했는데, 영화를 보고야 알았습니다.

솔직히 말해, 디 워, 재미없었습니다.

CG는 봐줄만한 B급 영화. 이게 제 솔직한 평가입니다. 영화문법으로 볼 때는 굉장히 이상한 영화입니다. 직설적으로 말해 문제가 많습니다. 개연성-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영화를 모르는 사람이 만들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예, 다시 말해, 문희준 음악 같은 영화 였습니다.

문희준 음악 같은 영화

문희준 음악의 특징은, 그 비싼 악기들로 겨우 그 정도의 사운드 밖에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죠. 오히려 “왜 날 뷁”하는 자세로 일관했었습니다.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다는 자세, 지금의 심형래 감독과 매우 비슷합니다.

문희준 음악의 가장 큰 문제들이, 그 음악을 프로듀싱한 문희준 자신에게 있었던 것처럼, 디 워가 엉망인 영화가 된 것에도 심형래 감독의 능력 부족이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를 만들겠다는 사람이 영화 문법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영화의 기술적인 면은 결코 CG나 화면빨만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화면의 구도, 색 처리, 장면과 장면의 편집, 스토리를 전개시키는 능력… 굉장히 많은 것들이 영화의 기술적인 면에 포함됩니다. 결코 좋은 기자재나 기술이 있다고 좋은 영화가 나오지 않습니다. 많은 돈이 투자됐다고 좋은 영화가 나오지도 않습니다. 작년 영화 ‘중천’이나 재작년 영화 ‘태풍’이 왜 실패했는 지를 돌아보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때깔만이 아님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 니네 왜 나왔냐?

영화 문법, 무엇이 문제였을까

개연성 없는 스토리는 다른 분들이 많이 이야기 하셨으니 넘어갑니다. 혹 대본의 문제가 아니라 편집의 문제가 아닐까-하고 얘기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제가 보기엔 대본부터 글러먹었습니다. 좀 심한 말인가요? 저도 한 두명의 시나리오 작가가 참여한 것이 아닐텐데, 왜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됐을까 궁금합니다. 뭐, 그런 영화 한 둘이 아니니 더 이상 의심하진 않겠습니다. … 좋게 봐줘서, 헐리우드 B급 시나리오입니다.

단순한 이야기와 엉터리 이야기는 다릅니다. 착한편 vs 나쁜편 으로 나눴다고 해서 단순한 시나리오가 된다면 착각입니다. 드라마, 만화, 영화등, 대중을 대상으로 보여지는 모든 이미지들은 캐릭터와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르 규칙의 첫번째는 ‘캐릭터’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입니다. 캐릭터가 없으면 감정 이입이 되질 않습니다. 이야기에는 최소한의 개연성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저기서 따붙인 것 같은 장면과 장면의 짜집기로는 ‘흥미진진함’이나 ‘울고 웃는’ 감정을 줄 수가 없습니다. (… 덕분에 영화를 비평가의 자세로 따져가며 볼 수 밖에 없었으니, 벤야민이 보기에는 흐뭇했을라나.)

캐릭터에도 감정 이입이 되질 않고 흥미진지하지도 않은데 ‘CG가 좋아서 재밌는 영화’라니-
뭔가 말이 안되지 않나요? … 게다가 초반부 조선시대 씬의 어이없음이라니… 말 그대로 캐안습. 가장 볼만했던 것은 영화 중반의 LA 도심 전투씬. 사실 이 장면이 이 영화의 전부죠… 제일 심했던 것은 여주인공 새라. 누가 그 얼굴을 스무살로 보냐!! OTZ(…물론 영화 문법에 해당하는 부분은 아닙니다. 므흣 -_-)

심형래 감독님, 제발 다음 번에는 감독 맡지 마시고 그냥 제작자만 맡으세요. 아니면 최소한 배우 캐스팅이라도 제대로 해주시던지.

▲ 봐줄 것은 이 놈..

‘심플 시리즈’의 스토리 + ‘파이널 판타지’의 그래픽 + ‘반지의 제왕’의 구도 = 디 워?

뭐, 그래도 전체적으로 그냥저냥 볼 수 있었던 것은, 어디서 많이 익숙한 느낌이 전체적으로 배여있었기 때문입니다. 예, B급 양키 게임의 맛..이었어요. -_-;;; 디 워는 게임의 맛을 가진 영화입니다. 그리고 게임 감각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볼만한 영화입니다. … 이 맛은 아마, 기존의 비평가들은 절대 모를 부분이겠지만.

영화 후반부는 시종일관 게임 그래픽 같은 느낌으로 진행됩니다. 영화의 개연성 없음도 인정되는 것이, 사실 게임 이벤트 영상을 뭐 개연성 가지고 봅니까…(그래도 파이널 판타지에서는 감동 받았었지만-). 영화의 시나리오는 딱 심플 시리즈 정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차라리 더 막나갔다면 그래도 좀 나았을 텐데, 이건 대충 막나가는 시나리오라서 재미는 없습니다.

그래픽은 파이널 판타지의 그래픽. 앞서 말했듯 LA 시가의 전투씬은 기가 막힙니다. 다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구도의 연속인 것이(재난 영화에서 정말 흔히 보는 화면들), 이상하게 밋밋한 탱크의 색깔이, 아파치 헬기의 집중 사격 맞고 떨어지는 부라퀴의 약함이 좀 걸리긴 하지만.

참, 마지막 전투의 돌입부분도, 조선시대 전투씬도 반지의 제왕을 너무 많이 닮았단 느낌을 받은 것은, 저 뿐인가요? 부라퀴의 병사들이 오크를 떠올리게 만들고, 악한 부라퀴와 선한 부라퀴의 싸움이 딱 반지의 제왕 간달프의 싸움같았던 것도, 저 뿐인가요?  … 말이 좋아 이무기 전설이지 이무기 전설을 넣을 의미가 전혀 없게 느껴졌던 것도 저 뿐인가요? (… 예를 들어, 새라가 부활할때까지 500년 동안 지상은 평온했습니다. … 선한/나쁜 이무기는 전설에는 없습니다. … 이무기는 용이 못된 구렁이입니다. … FBI의 갑작스런 행동은 그 전개 과정만 제대로 보여줬으면 매우 타당한 행동이었습니다.)

…차라리


“잠에서 깨어난 이무기가 용이 되려고 한다. 용이 되려면 여의주가 필요한데 그게 새라라는 여인이다. 이무기는 이 여인을 차지하려고 하고, 갑작스런 이무기의 난동에 놀란 사람들은 그 원인을 파악하고, 새라가 원인임을 알게되자 그녀를 죽이거나/바치려는 사람들로 나뉘어 새라를 쫓는다. FBI 요원이자 어릴적 새라의 친구였던 이든은 그녀를 발견하지만 차마 그녀를 죽이지 못하고 함께 도망치게 된다. 도망치는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튼다. 그 와중에도 이무기의 난동은 계속되고, 군대는 필사적으로 저항하지만 소용이 없다. 이든의 친구이자 고고학자인 노교수는 조선의 전설을 해독하다 이무기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고, 이든과 새라를 찾아낸 FBI는 그녀에게 최후의 작전을 위한 미끼 역할을 해줄 것을 제안하게 되는데…  “


이 정도의 스토리만 되줬어도 욕은 덜 먹지 않았을까요.

▲ 아무리 봐도 오크 센스

▲ 스토리는 딱 심플 시리즈, 그 가운데 찬바라-의 맛이 나는 영화

그런데 왜 성공했을까?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 워가 극장에서 성공했다는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기서 민족주의나 애국주의 논쟁은 논외로 합시다. 단단히 잘못짚은 분석이거든요. 현재 한국에서 디 워의 성공 요인은 세가지로 압축됩니다.

  • 심형래에 대한 대중의 호감
  • 방학 영화의 성수기
  • 노이즈 마케팅의 성공

한국인은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가 매우 강합니다. 이것은 신분 상승이 바로 ‘생존’을 보장해 줄 수 있었던 한국 현대사에서 비롯된 코드입니다. 전쟁과 군사독재의 통치 하에서 ‘높은 계급’의 사람이 되는 것은 부와 생존을 보장해주는 지름길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아랫사람’ 대접 받으며 하찮은 대접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성공가도를 달린 기존의 ‘상층 계급’에 대한 시기와 분노 역시 대단합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딛고 성공한 약자”에 대한 자기 동조가 굉장히 잘 이뤄지는 편입니다. 황우석 사태, 하인즈 워드 붐, 박세리 열풍,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등 많은 사건들이 이런 주장을 바탕으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부’에 대한 시기와 분노, 좌절이 동시에 강하게 존재하는 사회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변함없이 심형래 감독에 대한 옹호에는 ‘어려운 환경에서 성공한 약자’에 대한 지지가 단단하게 뿌리잡고 있습니다. 자신이 못한 일에 대한 대리 실현물이라고나 할까요?

게다가 디워는 분명 CG가 뛰어난 ‘어린이 영화’입니다. 방학용 괴수물임을 부정하실 분들은 안계실테고(본질적으로 영구와 쭈쭈-와 같습니다.), 이 영화가 가지는 게임 양식은 이미 어린 세대(..그리고 몇몇의 우리 세대 포함)에게는 익숙한 양식입니다. 그러니 보고도 이질감이나 거부감이 들지 않습니다. … (다시 말하지만, 요즘 평론가들은 이런 것 당연히 모릅니다.). 트랜스 포머와 캐러비안의 해적은 이미 다 봤고, 현재 개봉한 영화 가운데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봐도 괜찮겠다-(애들만 보는 영화 아니다-라는 느낌의 영화)는, 디 워 한편 뿐입니다(실버서퍼는 홍보 실패로 이미 사람들 관심밖, 라따뚜이는 너무 양키 센스, 화려한 휴가는 애들이 보기에는 좀 무거운-).

마지막으로 디 워는 개봉 이전부터 철저히 노이즈 마케팅에 성공했습니다. 계속되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영화를 홍보하는데 110% 성공했지요. (사실 네티즌 논란이란게 이런 목적으로 이용됐다-빼고는 별 의미가 없다고 전 생각합니다.)

▲ 미국 시장 노리고 만들었다니까..

결국, 결론은 미국에서

뭐, 이러니 저러니 이야기했지만, 결국 결론은 미국에서 날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도 대박 히트치면 “거 봐라- 이 영화의 대단함을 미국도 인정했다”가 될테고, 미국에서 쪽박차면 “거 봐라- 이 영화 엉망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뭐가 한국의 미래냐”라는 말이 나올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니까요.

…아직까지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굉장히 낮춰보는 것에, 자기 비하에 능숙합니다. 자신의 주체성이 명확하지 않기에,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게 휘둘리는 것도 그렇구요. “니가 감히 나를 가르치려 드느냐”라는 말의 뒷 면에는 “누가 나를 가르쳐도 될 정도로 내가 못났냐”라는 말이 숨어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논쟁을 할 때 논쟁이 아니라 “입 큰 놈이 이긴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또다시 결과는 타인의 평가에 맡겨 버리는 셈이 되겠네요. … 하지만 장담컨데, 이 영화, 미국에서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 어떤 기사와 글들이 ‘이 정도면 성공한 거다’라고 말 장난 칠지는 모르겠지만.

* 그런데 생각해보니, 차세대 CG의 흐름은 이제 ‘땀과 털’로 넘어온지 오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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