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4. 그들은 빨갱이를 직접 알고 있다.

▲ 2007년 11월, 현 제주국제공항터 근처에서 학살된 시신들이 추가로 발굴되었다.
제주도의 4.3은 어떤 의미에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다.

4. 그들은 빨갱이를 직접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빨갱이’론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정치 선전을 통해 그들을 포악하고 흉악한 무리로 조작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남한의 빨갱이에 대한 이미지 작업은 주로 6.25 전쟁을 겪으면서 남한 내부의 반란자로 보도연맹원에 대한 사건을 보도하면서 이뤄졌다.

1950년 6월 25일 당시 38선 바로 이남에 있었던 개성에서는 인민군이 내려오자 보도연맹에 가입했던 사람들이 인민군측과 협력하여 우익인사들을 학살했다고 한다. … 서울이나 강화 등 경기북부지방의 경우 워낙 갑작스럽게 인민군이 남하하여 미처 보도연맹원을 구금하거나 수감된 보도연맹원을 어떻게 할 수 없었으나 평택 이남 지역에서는 강화 등 북한 점령지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곧바로 구금하여 처형한 것으로 보인다(김동춘, 『전쟁과 사회』, 돌베개, 2000, p220~221).

남침 5시간 만인 오전 9시 개성이 그들에 의해 함락되고 말았다. 좌익활동을 하다가 전향하여 보도연맹에 가입했던 자들이 오히려 반공인사와 양민들을 학살하는데 앞장 섰다. 그들의 그같은 만행은 대한민국에 전향했던 사실만으로도 공산군에게 살해될 충분한 이유가 되므로 두렵고 불안하여 이를 은폐하기 위해서라도 황급히 그들의 앞장에 서서 만행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사실 그날 아침 공산군은 그들을 모아놓고 전향한 죄를 씻기 위해서라도 앞장설 것을 강요하기도 하였다. 개성보도연맹원들의 잔인한 행동이 정부로 하여금 한강 이남의 보도연맹원들의 행동을 경계하도록 조치시킨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한국반탁·반공학생운동기념사업회, 『한국학생건국운동사 : 반탁·반공 학생운동중심』, 한국반탁·반공학생운동기념사업회, 1986, p517 ).

전쟁 초반 국군과 경찰조직이 와해되면서 후퇴하자 곳곳에서는 치안공백 상태가 되었다. 무법천지에서 제 세상을 만난 보도연맹원들이 경찰, 군인 가족, 우익인사를 공격해 많은 사람이 희생당했다. 대전까지 후퇴하면서 한숨돌린 정부는 보도연맹원들이 저지른 만행을 전해들었다. 이들을 그대로 놔두었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어 대대적인 검색을 통해 보도연맹원들을 체포하여 처단했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도 다수 학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6.25 당시 경기도 파주지역에 있던 초등학교 소사(경비 청소 등의 일을 하는 비전문 기능직)가 빨갱이들이 오자 완장을 차고 설쳐대며 학교장을 포함하여 지역사회유지들을 죽이고 자신이 교장 노릇을 하다가 국군이 들어오자 살해된 일이 있었다. 오늘날 이 사람의 아들이 유사한 짓을 한 사람들의 자식들과 함께 역사 재조명작업을 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자금 협조까지 받아 위령탑을 세우고 있다. (전재혁, 『회색시대』, 도서출판 녹수, 2001, p60, 270).

그렇지만 6.25 전쟁 이전의 남한에서는 아직 빨갱이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이승만은 반공의 가면을 쓰고 나타났지만 이데올로기 조작은 그리 쉽게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고립된 것은 그들 자신이었다. 서북 청년단등 월남자 출신의 우익 청년 단체들이 호명된 것은 바로 그런 이유다. 그들은 빨갱이를 사상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서북청년단의 단원들은 빨갱이를 피해 월남한 사람들로서, 그들은 ‘빨갱이를 직접 알고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직접 알고 있다고 믿는 도착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또는 그렇게 집단합숙소 생활을 통해 도착적인 성격이 형성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것은 모든 진정한 믿음을 도입하는 무조건적 결정, 합리적 이유의 사슬이나 실증적 지식에 근거할 수 없는 결심이다(슬라보예 지젝, 박정수 옮김, 『HOW TO READ 라깡』, 웅진 지식하우스, 2007, p180) “. 이들에게 빨갱이는 극악무도하고 광포한 권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들이 가진 ‘행복’을 그들에 의해 잃어버렸다고 믿고 있었다는 점이다. 서북 청년단은 그들의 정당한 지위, 정당한 행복은 북한의 빨갱이들에 의해 강제로 박탈당했다고 여겼다. 이처럼 빨갱이라는 환상은 일종의 잉여를 가정할때만 효력을 발생한다. 여기서 대통령은 다시 국가의 상징, 최고의 팔루스로서 나타난다. “대통령은 민족의 신성이다. 절대로 순응하라. 민족처단을 주장하는 놈은 공산당의 주구이다. 의회는 여기에 속지 말고 가면의원을 타도하라. 민의를 위반하는 의원은 자멸이다. 한인은 지금에 뭉쳐야 한다(김진학 · 한철영, 『제헌국회사』, 서울: 신조출판사, 1954, p118)”라는 극단적 주장은 그래서 가능해 진다.

그들이 국가/반공/이승만이라는 인물과 동일시 할 때 “그/그녀는 오이디푸스적인 역량과 권위의 위치와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주체는 원시부족의 잔인하고 방탕한 아버지와도 동일시하게 된다(숀 호머, 김서영 옮김, 『라캉 읽기』, 은행나무, 2006, p118).”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쾌락과 향락을 얻지 못한다면” 그들 대신에 다른 사람이 그들의 지위를 강탈하고 대신 그 위치를 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빨갱이는 이승만 반공 정권을 성립하게 하기 위해 추후적으로 구성된 환상이다. 대통령이라는 아버지, 빨갱이를 없애지 않으면 반공 국가를 성립할 수 없다는 초자아의 명령, 잔인하고 인간이 아닌 빨갱이라는 환상의 삼박자 속에서 서북청년단의 잔인성은 성립되게 된다.

그 자신의 문제 뿐만 아니라 모든 좋지 못한 일의 근원은 「빨갱이」공산당 놈들에게 있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그 위에 걸은 그의 머리로서 그 밖의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 선우휘, 「테로리스트」, 『불꽃』, 을유문화사, 1959,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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