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떡밥을 한번 물어볼까요?

사실 역사쪽은 전공자가 아니라서, 그닥 관여하고 싶지 않지만, 지켜보다보면 조금 씁쓸하기에 한번 떡밥 물어봅니다. 이 논쟁에 참여한 이녘님이나 sonnet님, jeff님등이 모두 -_-; 제가 블로그 링크 걸고, 자주 글 읽는 분들이라서 조금 당황스럽기 까지 하네요. … 일단, 제가 가장 궁금한 것은 이겁니다. 그러니까, 대체 왜 ‘건국절’ 논쟁이 ‘이승만이 친일파였는가?’ 라는 논쟁으로 논점 전환 된거죠?

간단하게 결론만 정리하자면, 이승만은 친일파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고, 청산할 의사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우파들에게 ‘친일’ 문제는 변명할 수 없는 아킬레스건입니다. 이는 해방초기부터 좌파로부터 공격받았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파의 논리는 항상 ‘반공으로 친일을 가리는’ 행태라는 지적이 나온 것입니다.

“대통령은 민족의 신성이다. 절대로 순응하라. 민족처단을 주장하는 놈은 공산당의 주구이다. 의회는 여기에 속지 말고 가면의원을 타도하라. 민의를 위반하는 의원은 자멸이다. 한인은 지금에 뭉쳐야 한다(김진학 · 한철영, 『제헌국회사』, 서울: 신조출판사, 1954, p118)”

이승만은 친일 정권이 아닌, 친일파 정권

사실 대한민국 우파는 다른 나라 우파들과는 달리, 그 논리와 명분이 매우 빈약합니다. 최근 건국절 논란이 발생한 것도, 이승만 다시 세우기가 다시 이뤄지는 것도, 자신들의 과거를 세탁하고 원래부터 대한민국의 주인이었던양 행세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녁님의 글 <건국절 논란의 본질>에 담긴 주장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이녁님이 쓴 “이승만, 박정희 정권이 가지고 있는 ‘친일’ 이라는 원죄“라는 문장을 문제삼으며, sonnet님 <이승만 반일 정권>이라는 글로 반격을 합니다. 이승만은 반일 정권이었으며, 그때 “차라리 이승만의 반일 정부에 참여한 舊친일파가 있다면 자신의 친일 문제를 다소나마 속죄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옳을 것입니다.“라고 주장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뭐, 건국 초기부터 우파에 의해 주장되던 내용이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은 심하게 친일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다’라는 주장인 반면 sonnet님은 ‘정권 부역 = 속죄할 기회’라고 보니 참신한 시각이라고 해야할까요. 아니, 실은 해방 당시 혼란했던 시기에, 이승만 본인이 주장했던 내용보다도 오히려 후퇴한 주장으로 보입니다. 당시 이승만은 국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부에서 친일 반역자를 보호하는 일이 어디 있을 리가 없을 겝니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친일파를 그냥 두었다가 정부가 조직되고, 정권이양이 완전히 된 뒤에 행할 것, 그리고 법적 근거에서 하기를…주장(합니다). 1945년 10월 … 이후로 친일파에 대해 제일 말 많이 한 것이 공산당 사람인줄 압니다. 군정에서 그들을 몰아내고 경찰에서 그들을 몰아내는 등 열렬히 요구하는 사람이 그 사람입니다. … 한국 정부가 주권을 찾은 뒤에 친일분자를 악질분자를 처단할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우리 땅 주권 찾는 데 방해할 우려가 있는 까닭으로 해서… 나도 이런 사람은 법을 제정해가지고 재판할 사람은 재판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문제는 지금이 이 시간이냐 아니냐 … 공산당들이 시방 국방군이든지 들어가서 살인을 하고 있는데 악질분자 반역분자라고 경찰에서 잡으면 당신들의 생명은 어떻게 되고, 당신들의 어린 자녀 부모의 생명은 어떻게 될(것 입니까). 우리는 먼저 할 것을 먼저하고, 나중할 것을 나중에 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일 것입니다. … 조헌영 의원의 말하는 것은 뜻과 목적은 우리와 같은 것이나 다만 시기가 어려운 형편에 있으니까 … 생각해야 될 줄 압니다(국회사무처 1948 11월, 제97호, 802)”

위에 담긴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게 됩니다. 국권 수복을 위해선 친일파의 등용은 당분간 불가피하고, 친일파를 처벌하자는 주장은 궁극적으로 국가에 해롭다고. 사실 바로 저 발언을 한 시점에서 친일세력숙청은 완전 물건너간 상태였습니다. 위에서 거론되고 있는 공산당의 사건은 바로 <여순 사건>으로, 저 사건 이후 그동안 ‘반민족특별행위처벌법 제정 및 시행’에 유보적이었던 이승만 정권의 입장이 <반민족특별위원회 활동중지(49년 6월)>과 특별경찰대 해산으로 굳어졌기 때문입니다.

▲ 귀국하는 임정 요인, 백범 김구 선생님.
임정 귀국을 기점으로 당시 해방정국에선 정치적 흐름이 요동쳤었다.

결코 국가에 속죄한 적이 없었던 친일파

사실 친일파 청산에 대한 입장은 <여순 사건>이전에도 충분히 의심받고 있었습니다. 해방 직후 미군정에 의해 재등용된 친일파들은 반탁/찬탁의 논쟁과정에서 반탁운동과 반소반공운동을 통해 민족주의자로의 둔갑을 시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정부 수립 당시까지도 부와 권력의 핵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외양상으로 보면 한민당의 강령도 건준이나 인공의 그것과 크게 다를 게 없다. 모두가 자주와 독입, 민주주의, 인민(대중)복지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때(1945년)의 한민당의 인사조직구성(친일파들이 포함된) 내용과 행보는 향후 한국 민족주의 전개과정에서의 엄청난 분열과 혼돈을 초래하는 계기가 되면서 대한민국 건국과정에 대한 좌파 민족주의자들의 공격대상의 보고가 되어버린다. 후일 조병옥은 “한국민주당의 첫때 사업은 해방 직후에 일찍이 결성된 건준과 좌익분자를 중심으로 조직된 소위 인민공화국을 거세시키는 일(조병옥, 나의 회고록, 민교사, 1959, p144~145)”라고 했듯이 한민당의 민족주의 행태는 초기부터 대타 부정적 정책기반에 크게 의존했고, 자체적인 ‘반제/반봉건’ 추진 과제추진을 위한 청사진과 의지를 내보이질 못했다는 취약성을 지녔다.” (김동성, 해방 직후 민족주의의 행태적 특성: 건준/인공/반탁 운동의 현대적 함의, p21)

그리고 이에 대해 jeff님은 <우아하고 감상적인, 이승만의 반공/반일 정책>이란 글에서 “이승만 정권은 친일 논쟁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다뤄야 하는 정권이다. 친일관료와 매판자본가들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산업자본가로 변신하고, 이어 군사정권 하에서 더욱 권력과 밀착하여 오늘날 보수우파로 이어져 오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용은 분명합니다. sonnet님의 주장과는 다르게, 이승만 정권에 등용된 친일파들은 결코 “속죄한 것”이 아닙니다. 이를 분명히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건중의 하나가 1949년 발생한 <반민특위 암살음모 사건>입니다. 1950년 4월 내려진 대법원의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수도 경찰청 총감인 노덕술을 비롯 서울시경 수사과장 최난수 등이 테러전문가 백민태를 고용. 반민특위 관계자 18명을 살해할 음모를 꾸몄음이 드러나게 됩니다. … 문제는, 이들의 “범죄 행위 교사”가 죄가 아닌 것으로 판결났다는 사실. -_-;

실제 범행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다고는 하지만, 실제론 이 사건에 이승만 정권이 깊숙히 개입되었고, 경찰이 이 사건을 실질적으로 계획했으며, 법원은 사건을 축소무마시켰다는 의혹이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어찌되었건, 이런 반민특위에 대한 집요한 방해 공작에 대해서 드러나듯, 결코 당시 친일파들이 sonnet님 주장대로 “속죄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겁니다.

▲ 1945년, 해방 이후 한국의 모습

역사에 대한 질문을 분명하게 하자

이 글은 sonnet님에 대한 분명한 실망에서 비롯된 글입니다. 해방 당시 한국의 정세는, 분명 섵부르게 말하기 어려운, 꽤 복잡한 상황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의 원죄인 친일“이란 문장이 분명히 “친일파에 기반한 정권, 친일파 청산에 실패한 정권“이란 의미임을 분명하게 알고 있을 만한 분이, 그런 식으로 꼬투리를 잡아 공격하다가, 나중에 “친일파가 ‘속죄의 의미로 한국 정부에서 일한‘것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하며 끝을 맺는 글을 보고 상당히 당황했습니다.

분명 역사는, 현재의 우리가 어떻게 재해석하는 가에 따라서 다르게 보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있었던 사실을 없었다고 해서도 안되고, 모든 것을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라는 식의 상황 논리로 빠져나가는 것도 비겁합니다. 논리와 근거로 치고 들어오려면 좀더 치밀하게 치고 들어와야지, 의미를 곡해하면서 공격하는 것은 치사하지 않을까요.

…사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건국절 관련 논쟁을 보면서 실망한 것도 있습니다. 대한민국 우파의 논리는 단순하다고 했지요? 예, 너무나 단순합니다. 자유 민주주의 + 반공. 이 두가지가 사상적 기반의 전부입니다. 그것도 어떤 논리가 아닌 감상적 기반. 이에 기반해 ‘반북’과 ‘반전교조’라는 두가지를 끄집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북한과 똑같은 소리하네, 너 빨갱이지?”식의 주장밖에는 펼칠 줄을 모릅니다. … 솔직히 이에 비하면 뉴라이트는 그나마 좀 양반이려나요.

친일파 청산에 대한 문제는 역사로 돌려버릴 수 없는, 현실 정치의 일부분을 여전히 점유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단순히 우파의 문제가 아니라, 그로 인해 발생한 왜곡된 계승이 현재의 우리까지 좀 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애시당초 반공 이데올로기 자체가 친일파 문제와도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해 말하고 토론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상식과 사실에 근거해서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짧게 쓰고 자려고 했던 글이 길어졌습니다. -_-; 다음에는 보다 생산적인 논쟁이 이뤄지기를 희망합니다.

About Author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