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랭, 당신이 소비되는 방식

처음 낸시 랭이란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 한 여성지의 꼭지 기사를 통해서였다. 그 기사에서는 애교도 무기가 될 수 있다면서, 그런 아티스트로 낸시 랭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있지 않아, 같은 사람이 쓴 비슷한 칭찬의 글을 「한겨레21」의 칼럼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누굴까 궁금해졌다. 그녀의 작품을 찾아봤다. 타부 요기니라는 작품이 있었다. 그 작품의 이미지를 보려고 클릭하는 순간 그만 당황했다. 로봇의 몸에 어린 여자아이의 얼굴을 오려붙인 작품이, “MS 걸’이라 부르는 일본의 미소녀 일러스트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기심은 거기에서 끝이었다. 더 궁금하진 않았다.

 

그러나 얼마 안있어 그녀를 다시 떠올리게 만들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말한 ‘칭찬 칼럼’을 쓴 사람이, 틀림없이 낸시랭이 분명해 보이는 ‘익명의 작가’에 대해, 편집자 칼럼에서 상당히 강도 높게 씹었던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궁금했지만 속내를 알 순 없었다. 그리고 그 글을 비웃기라도 하듯, 낸시 랭은 인간극장에도 나오고 잡지의 화보나 표지 여기저기에 얼굴을 드러내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노이즈 마케팅 논란을 일으켰던, LG 플래트론 모니터의 ‘낸시 랭 실종사건’ 광고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자신을 팔았던 작가, 낸시 랭

 

예전에 누드 화보를 찍었던 함소원이 그랬다. “사람들이 욕을 하든 말든 상관없다. 나는 잊혀지는 것이 더 무섭다.”라고. 말 그대로 현대 사회에서 ‘많이 알려졌다’는 것은 권력이다. ‘많이 알려졌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는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우월한 입장에 설 수 있다.

 

그렇지만 많이 알려졌다는 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니다. 사람들에게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말은, 대중들에게 ‘소비’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소비되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어떤 행사장에 나서기라도 하면 더 많은 사람을 불러모으게 된다. 사람들은 유명인과 같이 사진을 찍고, 환호하고, 돌아가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솔직하게 말해, 사람들에게 ‘유명인’이란 다른 말로 ‘동물원 원숭이’와 하나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그렇게 자신을 ‘판매’하는 대신, 그는 더 많은 돈을 움켜쥘 수 있다. 자신의 이미지를 팔고 돈을 얻는다. 그것이 현대 사회에서 말하는 ‘스타’다. 낸시랭이 뛰어났던 것은, 어떻게 하면 자신이 유명해 질 수 있는 지를 잘 알고, 그것을 실천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낸시랭에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 ‘애교’와 ‘솔직함’이라는 재능이 있었다.

 

이런 일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먼저 ‘팔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단지 낸시랭은 가수나 모델, 배우나 개그맨이 아닌 아티스트라는 미개척 영역을 찾아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유명해진 낸시랭은 하나의 ‘아이콘’이 된다. 아무리 몇몇 사람들이 ‘낸시 랭이 살던 원래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똑같다고 해도, 그건 똑같아 보이기 위한 주장에 불과하다.

 

삶과 미디어에 담기는 이미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유명인의 이미지는 결국 일종의 ‘역할 연기’일 뿐이다.

 

아티스트 vs 쇼 걸

 

현재 낸시랭이 보여주는 이미지는 서로 상충되는 두 가지 모습으로 제공된다. 그것은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재기 넘치는) 아티스트 vs (잘 벗는) 쇼 걸-이라는 이미지다. 사람들의 논란도 그녀가 아티스트다 vs 아티스트 아니다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그렇게 바라보는 것은 실수다. 낸시 랭과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준 해석에 갇히게 되는 꼴이다.

 

그녀가 만드는 이미지는 불행하게도(또는 우연하게도?) 상품 시장이 보여주는 몇 가지 대표적인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거룩함과 통속성’은 지난 십 몇 년간 가장 강력하게 등장한 시장 문화의 흐름이다. 그리고 ‘섹시하고 귀여운 팝 아티스트’라고 부를 수 있는 낸시 랭의 전략은, 이 두 가지를 모두 반영하고 있다(한국 사회에서 통속성의 전략만 가지고 성공하기는 힘들다. 섹시 & 성격좋음, 섹시 & 지적인 이미지 등 서로 다른 두 가지가 동시에 요구된다.).

 

낸시 랭은 전략적으로 몸을 드러내고 미디어에 자신을 노출한다. 그리고 주문처럼 ‘섹시, 키티, 큐티’를 외치며 언론에서 인용하게 만들고, 보도자료와 홈페이지의 공식 프로필을 통해 ‘쌈지’와 ‘베니스 비엔날레 퍼포먼스’를 반복적으로 홍보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머리가 텅 빈 것처럼 보인다는 그녀와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작전은 생각 이상으로 영리하다.

 

그에 비해 작품은 아직도 보잘 것 없다. 재능도 아직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그것은 전시회를 많이 했다고 해서, 언론에서 많이 다뤄졌다고 해서, 어떤 직함을 가졌다고 해서 인정받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그녀에 대한 검색어가 ‘낸시랭 가슴’이란 것은 ‘아티스트’를 자처하는 사람에게는 치욕이다.

 

분열증적인 우리들

 

하지만 동시에, 낸시 랭과 그녀를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 속에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분열증적인 태도가 보여지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것은 이미 무너져 껍데기만 남은 윤리 의식을 배경으로, 통속적인 것/천박한 것과 고귀한 것/예술적인 것을 대하는 이중적인 태도다.

 

밤거리에 있어야 할 것이 대낮에 등장하는 것을 볼 때의 당혹감과, 한편으로는 끔찍하게 그것을 원하는 이율배반적인 마음. 노골적으로 돈을 원하는 것에 대한 경멸과 돈만 준다면 뭐든지 하겠다는 욕망 사이의 대립. 상품과 예술이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 시대를 대하는 사람들의 신경증적 태도. 결국 ‘모든 것, 모든 관계가 상품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뻔한 특징을 보여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놓고 그런 것을 목격하게 될 때는 왠지 불편하다. 어쩌면 낸시 랭의 존재 이유도 그 불편함을 드러내는 것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면에서, 낸시 랭은 분명히 드문 아이콘이다. 지금까지 한국 예술계에서 상품 논리를 전면에 내세우며 등장한 아이콘은 거의 없었다. 돈 많이 벌고 싶다는 사람이야 많고, 스타일이 튀는 작가야 한 둘이 아니지만,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하나의 상품으로 포장하며 등장시킨 예는 그리 많지 않다.

 

분명 지독하게 영리하다. 하지만 지혜롭지는 못하다. 자신을 내세우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그것을 이끌어 가는 것은 힘에 부치고 있다. 몇몇은 여전히 그녀를 끔찍하게 좋아하지만, 낸시 랭은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트러블 메이커’로 여겨지고 있다. 사람들의 입에 ‘나쁘게’ 오르내리는 것은 자본주의 상품 아이콘에게 있어서는 종말을 고하는 것과도 같다.

 

안녕, 낸시 랭

 

앞서 말한 함소원이 그랬던 것처럼, 그 전에 존재했던 수없이 많은 아이콘들도 그런 식으로 스러지고 말았다. 아이콘으로 드러나는 이미지의 뒷 편에는, 항상 자본의 냉혹한 상관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들여다보는가 하면, 흥미가 사라지면 아무리 소리 질러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곳이 바로 거기다. 시작은 내 맘대로 할 수 있지만 끝은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곳.

 

최근 몇 년간 세계적으로 빠르게 성장했던 아트 시장의 흐름 속에서, 섹시한 팝아티스트이라는 상징적인 아이콘으로 낸시 랭은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아트 시장의 불황과 더불어 낸시 랭이라는 아이콘의 수명도 끝을 다해 버린 듯하다. 무엇보다 낸시 랭은 더 이상 섹시하지가 않다. 여전히 섹시한 척 포즈를 잡기는 하지만, 이제 그 포즈는 지루하고 누구의 눈길도 끌지 못한다.

 

애시당초 계속 소비되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당당하고 도도한 한 명의 아티스트’라는 아이콘으로 변신하고 성장해야만 했다. 다시 말해 그녀는 자신의 작품으로 자신에게 가치가 있음을 증명해야만 했다는 말이다.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으로 자신을 내놓은 사람의 운명이다. …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몇 년 전, 팝아티스트를 자처했던 한 명이 일으킨 파문은, 결국 그 사람을 한 명의 방송인으로 각인시켜주는 결과만 내놓은채 사라져 버렸다. 故 안재환의 장례식장에 나타난 낸시 랭의 복장이 일으킨 해프닝은 그것을 확인시켜 주는 사건이었다. … 그렇게, 세상을 조롱하지 못한 예술가는, 슬프게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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