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가치는 ‘스펙’으로 따질 수 없다

직장을 다니다가 대학원에 다시 들어왔을때, 가장 놀랐던 것은 자기 자신의 ‘스펙’을 말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번에 공모전 꼭 당선되서 ‘스펙’을 좀 높여야죠.
그 정도 ‘스펙’이면 충분히 붙겠네.
니가 뭐 어때서? 너 정도 ‘스펙’이면 그런 사람 발에 채일 정도로 널렸다.

…항상 쓰는 사람들이 들으면 모르겠지만, 그런 말 안듣다가 들으니 어이가 없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니가 상품이냐? 그 돈 주면 내가 너 살 수 있는 거냐?”라고 되물어 주고 싶은 기분. 그냥 ‘조건’이라고 해도 충분할 것을, 굳이 그렇게 ‘스펙’이란 단어로 표현해야 했을까. 게다가 ‘스펙’이라고 부르려면, “내 키는 어떻게 몸무게는 얼마이며 시력은 몇이고…”등으로 적어야 할 것 같은데, 전혀 딴 내용으로 쓰이고 있다. 한마디로 콩글리쉬다.

그런데 네이버 국어 사전에는 아예 아래와 같이 공식적으로 실려있다.

 

스펙 ←specification 명사

[명사]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학력․학점․토익 점수 따위를 합한 것을 이르는 말.

참고로, 분명히 실려있는 곳은 영어 사전이 아닌 ‘국어 사전’이다. 이게 무슨 외래어도 아니고.

 

▲ 보수 언론들은 이런 유행과 단어의 사용을 노골적으로 장려하는 경향이 짙다.

출처_조선일보 2005년 5월달 기사

 

스펙이란 말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2001~2002년경부터다. 당시 취업사이트들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고, 명예 퇴직과 청년 실업이 보편화 되고, 신용카드 남발로 인한 가계 파탄이 도래하던 시기였다. 다시 말해 IMF 이후 변화된 경제가 직접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첫 시기였다. 이 시기 취업을 희망하던 사람들이 게시판을 통해 ‘나 이런 조건인데 이 정도면 이 회사 들어갈 수 있을까요?’라고 물을 때, 조건이라고 말하기 민망하니까 돌려쓰던 단어가 ‘스펙’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때가 각 회사들이 ‘서열파괴’ ‘학력파괴’ ‘혁신’등을 외치며 ‘인사파괴’를 하던 시기였다는 사실이다. ‘노골적이고 공개적으로’ 드러나던 입사조건들이 물 밑으로 숨어버린 후에, 불안해진 학생들은 자기자신의 자격조건을 검열하기 시작했다. 그런 취업과정을 한마디로 드러내주는 단어가 ‘스펙’이다. (이 시기는 IMF 사태 이후 대학에 들어와 처음부터 ‘취업 준비’와 ‘경력 관리’를 해댔던 세대가 사회에 첫 진출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단어는 두가지 중요한 사실을 함께 감춰버리는 단어이기도 하다.
나는 인간이라는 것. 살아야할 것은 내 인생이라는 것. 너무 오버하지 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대학생활 내내 ‘취업 걱정’에만 둘려쌓여서 살아가는 어떤 후배를 보고, 차마 이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미국 유학’을 가려고 하는데, ‘왜’ ‘무엇을 위해’ 미국을 가는 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꼴이다. 뭐- ‘편하고 행복한 삶’이라는 정답이 존재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행복한 삶’이 뭔지 알아야 가능한 일 아닐까. 편하게 돈만 많이 벌 수 있으면 무조건 행복해 질거라고 생각하는 바보가 아닌 이상.

…그리고, 누구도 스펙이나 따지는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

 

농담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말해 기업이 원하는 ‘인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① 실무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영어, 컴퓨터 등) ②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사회 예절 ③ 풍부한 아이디어, 열정, 기획력 등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취업’을 준비하면서 ‘성적, 영어, 면접’이라는 ①번을 준비하지만 막상 ‘취업 한 다음에 어떻게 살지’를 말해주는 ②번과 ③번은 전혀 준비하지 않고 있다. … 막상 뽑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 회사에 들어와서 제대로 일해줄 사람-인데도.

지금의 취업 시장은 말 그대로 ‘시장’이다. 이 시장은 본질적으로 사람들의 “공포와 불안함”을 이용하는 시장이다. 다이어트나 헬쓰, 어학원, 미아리 점집등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그런데 사람들은 그 시장이 만들어내는 ‘공포와 불안함’에 현실보다 더 두려워하며 벌벌떤다.

 

하지만 진짜배기들은 그럴 시간에 현실로 뛰쳐나간다. 여행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며, 현실의 삶에 튼실하게 발을 붙이고 있다. 쉽게 살고 싶은 생각도 없고, 내 것이 아닌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자신의 일을 자신의 이력서에 ‘한 줄 덧 붙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경력을 관리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시간만큼은 그 일을 진심으로 대할 뿐이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자신의 삶에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예의를 알고 있는 사람. 내가 데리고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

 

그리고 제발 부탁하니, 스펙 같은 말은 이제 제발 쓰지 말자. 쪽팔리잖아…ㅜ_ㅜ;;
말은 문화를, 자신의 삶을 둘러싼 환경을 규정한다. 당신이 쓰는 말이 곧 당신을 대하게 되는 사람들의 태도를 만든다. 스펙이란 말을 쓰는 사람은 스펙이란 말을 쓰는 사람밖에는 만날 수 없다.

 

당신이 물건 대접받기 싫다면, 사람들에게 헐 값으로 팔릴 생각 없다면, 이제는 더 이상, 제발 쓰지 말자. 그러다 39,900원에 사은품 증정, 10개월 무이자 할부로 팔려나가기라도 하면 어쩌려구!

 

* 경향신문의 “학력·연수 난 몇점?” 스펙에 목맨 대학생들 기사를 읽다가 조금 화가 나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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