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차 부대 수사에 대한 간단한 입장 정리

약속한 대로, 유모차 부대 수사에 대한 입장 정리 글을 올립니다. 좀 생각해볼 부분이 많다고 봤지만… 아니더군요. 논쟁이 될 만한 사안이 아니었음에도 논쟁을 만들어내는 경찰청장 어청수 나으리가 존경스러울 지경입니다.

1. ‘유모차 부대 수사’와 ‘유모차를 물대포 앞으로 밀고간 것’은 별개의 사안입니다.

  • 유모차 부대는,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커뮤니티의 ‘위법성’ 대한 경찰의 수사입니다.
  • 유모차를 물대포 앞으로 밀고간 것은, 밀고 간 사람의 행위에 대한 ‘윤리적 문제’입니다.
유모차를 끌고간 사람이 유모차 부대 커뮤니티(이하, 커뮤니티)의 회원이었건 아니건, 조직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개인의 행동과 커뮤니티가 직접 연관될 수 없습니다. 휴가를 나온 전경이 살인을 저질러도, 그건 전경 개인의 문제지 전경 전체의 문제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공무 수행중 폭력 행위는 개인적으로 저질렀다고 해도 당연히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왜 이 별개의 사안이 결부되어 ‘유모차 부대 수사의 부당성’과 ‘물대포 앞으로 밀고간 일(이하, 사건)’이 하나로 뭉뚱그려지게 되었을까요? … 바로, 한나라당 이범래 의원의 질의와, 그에 대한 어청수 경찰청장의 발언, 그리고 이 발언들을 보도한 언론 보도에 문제가 있습니다. -_-;

한나라당 이범래 의원은 ‘집회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일’ 자체를 문제시 삼았고, 이에 대해 어청수 청장은 ‘아동학대죄의 적용’을 고려해 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경찰은 유모차 부대를 수사하며, 그 핑계로 ‘유모차를 물대포앞으로 밀고간 일’을 하나로 사례로 제시했고, 그 이후 많은 언론들은 ‘물대포를 가로 막은 유모차 부대’라는 이름으로 커뮤니티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커뮤니티는 그 사건에 직/간접으로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이범래 의원이 거론하고 있는 것은 ‘집회에 아이를 데려오는 일’ 전부를 말합니다. 어청수 청장의 발언은 ‘그 행위 전체에 아동학대죄 적용을 고려해 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므로 다음의 몇가지가 바로 잡혀야 합니다.

  • – 커뮤니티와 사건은 직접 관련성이 없습니다.
  • – 사건에 대한 비난이 커뮤니티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는 것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 –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 하고 싶다면, 최소한 커뮤니티에 대한 문제 제기와 사건에 대한 문제 제기를 분리해서 말해야 합니다.
  • 따라서 다음의 주장은 기각됩니다. (최소한 저는 정당한 주장으로 다뤄줄 생각이 없습니다.)
  1. 사건의 어머니는 잘못 = 커뮤니티의 잘못 = 커뮤니티 수사는 정당
  2. 사건의 어머니는 잘못 = 커뮤니티의 잘못 = 촛불집회는 잘못
  3. 사건의 어머니는 잘못 = 촛불집회 아동 동반은 아동 학대
  4. 사건의 어머니는 정당 = 커뮤니티는 정당 = 커뮤니티 수사는 잘못

2. 집회에 아동을 데리고 나가는 것은 아동 학대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즐~ -_-;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선, 문명화된 국가 어디에서도, 아동이 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동학대죄를 적용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 애시당초, 고려부터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아이를 사나운 개가 우글거리는 개장 안으로 밀어넣는, 명백히 결과가 예정된 상황이었다면 모르지만…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위험을 예측할 수 있는 상황에 아이를 내보내는 부모는 거의 없습니다(예전에 아이 손가락을 잘라 보험금을 타내려던 사례는 있었습니다.). 거꾸로 예측할 수 없는 위험에 아이가 노출되었다고 해도, 그것을 부모의 ‘학대’로 몰고갈 수는 없습니다.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제가 조사했던 해외 촛불 집회(Candle lighting ceremony)나 이상돈 교수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대중이 다수 참여한 집회였을 경우, 대부분 아이들도 항상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집회 참석자들이 개념 없거나, 이 집회가 폭력적으로 변할 확률이 1%도 없어서 아이들도 함께 참석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3. 유모차 부대 커뮤니티에 대한 수사는 정당한가?

역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즐~. 사법적인 판단을 재판관도 아닌 제가 내릴 수는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하지만 지난 촛불 자동차 연합에 대한 수사와 마찬가지로, 이번 커뮤니티에 대한 수사도 과잉 수사입니다. 물대포 저지 사건은 개인적으로 일어난 일이며, 커뮤니티 멤버들은 그동안 촛불 집회 과정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에서 안전하게 행동했습니다.

그들이 위험한 곳에 있었다면 다른 시민들이 최우선적으로 그들을 보호하려 했을 것임은 명백합니다. 결국 그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촛불집회 과정에서 차도로 걸어간 적이 있었다는 사실인데… 그렇게 되면, 촛불집회에 참석한 사람 전부를 수사해야만 합니다(…실은 이러고 싶은 것일지도).

그래도 법과 원칙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구요? 오케이. 그럼 좋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비롯, 수많은 블로거들과… 당시 참석했던 국회의원, 변호사, 의사, 스님, 목사님, 신부님, 수녀님들… 모조리 조지십시오. 그럼 됩니다. 법의 정신이 ‘이명박 정권을 지키는 것’에 있다면, 기꺼이 잡혀가겠습니다.

4. 유모차를 물대포 앞으로 몰고간 어머니의 행동은 정당한가?

판단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일단,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소지는 있다고 인정합니다. 애시당초 당일 상황(링크)에서 경찰이 가장 먼저 비난했던 것도 그 지점입니다. 그렇지만 일다-에 올라온 글처럼, “먼저 유모차에 소화기를 쏴댔던 경찰“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그 어머니가 위험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가정하고 행동에 옮겼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 그 어머니에게는, 그때 그 자리에서, 그런 ‘결단’을 내릴만한 분노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벌써 잊으신 분들 많겠지만, 당일 상황은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한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그날 대책위가 청와대 항의방문을 하다가 모두 연행되는 사태가 일어났던 날입니다.

그때 일어났던 일은 「Kyo님의 6월 26일 상활 정리」포스팅을 보시면 아실 수 있습니다. 연행 사태에 항의하기 위해 경복궁역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 사람들도 모두 잡아갔습니다. 그 상황을 유모차 부대는 지켜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91명이 연행되었습니다. 물대포도 직사에 가깝게 뿌려지고 있던 날입니다.

눈 앞에 사람들이 쓰러지고 다치고 연행되는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 어머니가 지켜보고 있었던 것도, 그런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보호받아야 한다고 뒤로 빠져있지만, 앞의 사람들은 계속 쓰러지고 다치고 잡혀갑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이번 촛불 집회에서, 저는 그런 사람들을 여럿 보았습니다. 전경들이 뛰어드는 골목에 평화시위를 외치며 누워버렸던 ‘눕자 행동단;을, 구속을 각오하고 명박산성을 넘어가겠다던 목사님을, 파란 색소 물대포를 맞으면서도 똘똘 뭉쳐 거리를 지키고 있던 평화행동단을. 혼자서 물대포를 막아섰던 아저씨를. 눈 앞에 곤봉과 방패가 날아오는 데도 잡고 있던 카메라와 비디오를 놓치 못하고 있던 사람들을 … 그리고 정말, 무서워 덜덜 떨면서도 의리 때문에 도망가지 않고 있었던 몇몇 학생들을.

….감정적이 되어버렸네요. 조금 오버한 것 같습니다. 어차피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 날 그 자리에 나가봤던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감정이니까요. 이쯤에서 그냥 정리하겠습니다. 비난 받을 소지는 있지만, 나는 이해한다- 정도로 일단은 입장을 정리합니다.

5. 이번 수사를 통해 경찰이 노리는 것 – 촛불 커뮤니티의 괴멸

경찰은 법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 이들을 수사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아닙니다. 최근 경찰과 국정원은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그래서 조사하기 쉽고 때리기 좋은, 방어하는 방법들을 잘 모르는 평범한 시민들을 상대로 작전을 펴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실적 올려서 인사고과 점수 따자’는 욕망이 자리잡고 있겠지만, 결과적으론 ‘촛불 집회’로 탄생한 촛불 커뮤니티들을 괴멸시키려는 계획입니다.

한마디로- 앞으로 문제가 생길만한 애들 미리 조지고 보자는 거죠… 장기적으론 지자체/국회의원/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끼칠 세력들을 미리 제거하려는 전략이기도 합니다. 혹시라도 앞으로, 촛불 커뮤니티들이 뭉쳐서 단단한 네트워크가 되면, 현재 기득권 세력에겐 그것만큼 무서운 일도 없을 테니까요.

다른 한편으론, 알아서 기게 협박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패배와 공포감을 심어주고, 공포의 내면화를 통해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만드는. …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그것에 성공한 사회는 별로 없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나 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 언정, 강한 누름은 강한 반발을 불러와서 무너지게 됐던 것을.

우리가 촛불 집회에 나섰던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것저것 많겠지만, 결국 우리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싸웠습니다. 무릇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회운동 들의 이유가 그것입니다. 사익-자신들과 정치력 지지 세력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부에 맞서서, 시민 모두의 공동체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어머니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누릴 이익을, 학생들은 자신들이 미래에 누려야할 이익을, 블로거들과 시민들은 시민사회 공동체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싸웠습니다. 지켜야할 이익이 분명한 이상 그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이건 한낱 학생운동권에 불과했던 이들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경찰은 그로 인해 발생할 부작용을 단단히 각오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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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잠을 거의 못잤더니 머릿 속이 하얘서, 간단한 입장만 정리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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