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지지] MBC 뉴스의 자존심은 반드시 지키자

누가, 무엇 때문에 사랑하는 동료들의 펜을 놓게 하는가.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지난 20일 파업을 풀고 현업에 복귀한 기자들은 추성춘 보도국장으로부터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말을 들은 바 있다. “보도국에 그동안 유휴인력이 많았음이 증명됐다”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서 “특종을 가져와라, 특종도 가져오지 않고 연성뉴스니 뭐니 논쟁하지 마라”는 얘기도 함께 전해들어야 했다. 그러나 그를 비롯한 보도부문 지도부는 지금, 애써 발굴한 특종뉴스를 뭉개버렸다. 재벌 회장이 시내 한복판에 부동산 실명제를 어겨가며 땅을 소유하고 있다가 2천평 짜리 저택을 짓는데도 기사가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보도국장이 특종뉴스를 뭉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회의원들이 회기중에 골프를 쳤다는 특종뉴스를 뉴스데스크 말미에 편집했다가 시간을 이유로 빼버렸고, 교육제도의 개혁과 관련한 특종기사가 뉴스데스크 마지막에 간신히 턱걸이한 적도 있다. 그러면서 국장단은 ‘생선회 싸게 판다’는 리포트의 시청률이 높았다며 희희낙락했다. 도대체 무엇이 기사이고 특종인가.

보도국장과 기획취재부장은 당초 ‘한화회장 호화저택 불법 건축’건의 기사가치를 문제 삼다가 기자들의 저항에 부닥치자 한화와 경향신문의 로비 때문에 보도가 어렵다고 실토했다고 한다. 카메라출동이 로비 때문에 불방위기에 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모 임원의 친척이 과거 카메라 출동 보도로 인해 형사처벌까지 받았지만 카메라 출동에 압력을 행사하지는 않았었다. 회사 전체가 카메라출동을 MBC의 명예와 자존심으로 대접하고 보호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보도국장과 담당부장은 그러한 원칙을 너무도 쉽게 무너뜨리고 있다.

“그룹 이미지도 생각해 줘야지.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잖아” MBC 보도국 부장의 말인가, 한화 홍보과장의 말인가. “경향신문도 생각해줘야지. 방송되면 부탁한 사람들이 어떻게 되나.” MBC 보도국장의 말인가, 경향신문 편집국장의 말인가.

보도국장은 마지막으로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카메라출동 타이틀을 빼고 시간을 줄여 일반 리포트로 만들고 뉴스데스크가 아닌 뉴스시간에 내보내는 것은 어떤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차일피일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완제품은 한 번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수차례 보완만 지시하며 방송을 미루다 받아들여지지 않을게 뻔한 요구는 무엇 때문에 했는가. “나는 방송을 내보내지 않으려 하지는 않았다”는 구차한 명분을 만들려는 의도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제 기자들은 어떻게 고발기사를 취재해 보도할 것인가. 어떻게 현장에서 허리를 펴고 떳떳하게 취재할 수 있겠는가. 보도국장과 기획취재부장은 “경향신문을 생각하려다 MBC 보도국 조직을 망칠 수 있다”는 기자들의 호소마저 무시했다. 이제 앞으로 발생할 모든 파국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면 그들 스스로 매듭을 풀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지난 시간 살아왔던 일들이 층층히 쌓인 켜 위에서 살아간다. 자란 키가 다시 작아질 수 없듯, 시간은 결코 되돌림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난 과거에서 벗어나 살아가는 것도. 과거는 모두 현재에 새겨져 있다. 우리가 보는 TV 뉴스라고 결코 다르지 않다.

위에 옮긴 글은, 1997년 1월 29일, 전국문화방송(MBC) 노동조합 민주방송실천위원회에서 발표한 성명서다. 이 글에는 당시 파업을 풀고 현장에 복귀한 기자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었는 지가 잘 드러난다. 그리고 당시 TV뉴스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었는 지도.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허리를 펴고 꼿꼿하게 취재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지금의 MBC고, 이제까지의 PD수첩이었다. … 뭐, 아직 분명히 모자란 점도 많긴 하지만.

그런 MBC가, 오늘, 파업에 돌입한다고 한다. 1999년 통합 방송법 제정을 앞두고 실시한 총파업 이후, 9년만이다. 아니다. 그 정도가 아니다. MBC 뿐만 아니라, 전국언론노동조합 초유의 총파업이다. 왜? 한나라당이 시도하는 언론장악 7대 악법의 입법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재벌에게 방송을 넘기는 일을 막기 위해, 언론재벌에게 공영방송이 넘어가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 김주하, 박혜진 앵커도 이번 파업에 동참한다.

어떤 이는 말한다. IPTV 시대가 되면 어차피 MBC도 일개 채널의 하나일 뿐이라고. 국민소득 4만달러가 되면 몇집 걸러 요트가 한대씩 생기니, 대운하 파야한다고 주장했던 어떤 사람과 비슷한 소리다. 차라리 100% 보급률을 옛날옛적에 넘긴 TV에 내용을 공급하는, 지상파 방송의 영향력을 먹어삼키고 싶을 뿐이라고 솔직하게 말해라. 일개 채널은 개뿔이.

또 어떤 이는 말한다. 말만 공영방송이지 상업방송이나 마찬가지 아니냐고. 맞다. 상업적인 내용, 정말 많이 방영된다. 그래도 공영방송이란 틀을 갖추고 있으니까 이 정도 모양새라도 나오는 거였다. 그런데 재벌이 이런 방송사를 가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위의 성명서를 보면 대충은 짐작할 수 있겠다. 재벌, 권력의 비리는 제대로 방송에 나오지도 않을거고, 같은 계열사면 편들어 줄 것이며, 시민들의 목소리는 사라져 버릴 것이다.

굳이 그렇게 따질 필요도 없다. 그동안 학계의 연구에서,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가 발달할 수록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경향이 있으며, 그 주된 이유가 바로 미디어 독점, 미디어 재벌의 등장 때문이란 것은 입이 아프도록 밝혀진 사실이다. 베지키언은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소수의 기업이 장악하는 자본주의 미디어는 전체주의 국가의 미디어 상황과 다를게 없다고 규정한 바 있다. … 그런데 한나라당은, 그런 미디어 독점을 유도하는 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 92년 MBC 파업 당시 주동자로 몰려 구속됐던 손석희 교수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왜 이런 법을, 제대로된 토론도 없이, 밀어붙이려고 하는가? 간단하다. 이익을 보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 세력이 누구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대기업과 신문사의 방송사 경영 참여 전면 허용, 재벌이 지상파 방송을 소유 가능하도록 개정, 신문과 방송 겸영 금지 규정을 없애버린 것.. 이 모든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지킬 것은 지키고, 막을 것은 막아야 한다. 저들의 으름짱에 밀려버리면, 그 다음에 진행될 것들은 뻔하다. 안그래도 IMF에 버금가는 경제난국이 올지도 모른다고 모두다 얘기하고 있는 시절이다. 어려움을 핑계로, 재벌과 수구언론의 이익만을 챙겨주려는 꼴을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다. 그네들만 사는 나라가 아니란 것을 말해줘야 한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의 파업을 지지한다.

자료출처_<공정보도> 성명서-MBC뉴스의 자존심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MBC 노동조합, 97.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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