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블로그 하기 이전에 소통에 대한 고민을

처음에는 얼굴 사진도 내걸고, 자신의 소속도 밝혔기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 저 이런 블로그 좋아합니다. 청와대에 있건 경찰에 있건, 자신을 까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글 읽고나서, 댓글 읽고나서, 전체 블로그 한번 둘러봤더니… 좀 심하더군요. 제가 못 찾았을 수도 있지만

댓글에 대한 답글이 하나도 없습니다.

블로그는 글을 통해 나누는 대화입니다. 블로그 자체야 간편한 홈페이지 만들기 도구에 불과하지만, 그에 따른 댓글이나 트랙백등의 기술들은 블로거와 방문자간의 소통을 목적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물론 아주 유명한 블로그에선 너무 많은 방문객 때문에 블로거와 방문객의 소통이 원활히 일어나지 않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건 인기 블로그..에나 해당하는 이야기구요.

소통을 원하지 않는다면, 블로그 하지 마세요. 그건 당신 블로그에 기껏 찾아가 열심히 댓글 달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기만입니다. 자기 이야기만 하고 도망칠거면, 뭣하러 블로그 만드셨습니까? 악플도 많이 달리고 시간도 없어서 그렇다-라는 것은 대답이 되지 않습니다.

경찰이란 사실 밝혔을 때부터 그 정도는 각오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그 정도 리스크 정도는 감수하고서라도, 블로그 하고 싶어서 글쓰는 것 아닌가요? 그게 아니라면… 그저 홍보 채널 하나둘 정도 늘린 거라면, 그냥 블로그하지 말고 홈페이지나 충실히 관리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경찰관 개인-을 만나고 싶은 것이지, 경찰을 대신해 홍보해 주려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당신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지, 공식적인 문서나 다름 없는 홍보글을 읽고 싶은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소통 불능, 오해 만능의 홍보성 글들은 지금 이 정부에서 하고 있는 짓만 봐도 충분합니다.

▲ 블로그 ‘경찰관이 본 세상’ 첫 페이지

자의적 판단입니까, 경찰의 공식적인 의견입니까?

이 블로그의 문제점은 또 하나 있습니다. 소통불능을 떠나, 경찰의 공식적인 의견인지 개인의 자의적 판단인지 알 수 없는 내용이 뒤섞여 쓰여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내용들을 보면 아무리 봐도 경찰 공식 홍보글에 불과한데… 이번 「“촛불 산책이 왜 집시법 위반인가”에 대한 반론」같은 글을 읽다보면 이게 경찰 홍보실의 공식적인 견해인지, 그냥 경찰관 개인의 의견에 불과한지 헷갈립니다.

개인적인 의견이라면 당연히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하고 얘기해야 합니다. 안그러면 공식 의견과 구별하기 어려워 질테니까요. 경찰의 공식적인 해석이라면 윗 글에서 체포된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위반했는 지를 밝혀야 합니다. 벌써 연행자의 말로는 “10m 이상 떨어졌다”라고 하고, 피아르님은 단체로 우르르 몰려다녔다고 하는데, 이 둘의 차이는 이 사건에서 중요합니다.

피아르님의 주장에 따르면 “한밤중에 집회금지장소에서 우르르 몰려다녔으니, 집시법 위반이다”가 됩니다. 반면 허재현 기자는 “한 밤이었지만 사람들은 서로 떨어져서, 특정한 의사표현 없이 그냥 촛불 들고 걸어다녔다”입니다. 이는 집시법의 시위 규정을 적용하기 위해 해당하는 “다수인” 규정에 걸리는 것인가, 아닌가를 판단하기에 중요한 문제입니다.

논리 부재의 반론글, 쪽팔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에 대해, 위의 경찰관 블로그에서는 집시법을 대충 설명하더니, 글 말미에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촛불 들고 인도를 이용해 10m 씩 떨어져 걸어가는 것, 과연 집시법 위반일까요’라고 했는데 저도 하나 묻겠습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그리고 그곳은 청사 또는 저택의 경계 지점에서 얼마나 떨어진 곳입니까?”

유감이지만, 집회가 아니라면 그곳이 어디인지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법원은 이미 2002년에 “청와대 앞에서의 1인 시위도 무죄“라고 판결내린바 있습니다(하급심). 대체 집시법에 대해 이해는 하고 있습니까? 이런 질문을 한 다음, 그는 다시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경찰이 집회 허가를 안내주니 시민들이 궁여지책으로 이런 식의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인데’라고 했는데,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그것은 산책입니까? 퍼포먼스입니까? 아니면 또 다른 뭔가 입니까?”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법은 지켜야 할까요? 아닐까요?”

촛불만 들었을 뿐이지 그냥 걷는 것이 그럼 산책이지 뭡니까? 기껏해야 퍼포먼스지 그게 시위입니까?

집시법 제2조 2호에서는 분명히 시위를 “다수인(2인 이상)이 공동목적을 가지고 도로·광장·공원 등 공중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장소를 진행하거나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불특정 다수인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가하는 행위를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법원(‘08. 6. 26 2008도3014 판결)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상 경찰(관할경찰관서장)의 해산 명령 대상으로서의 집회 여부에 대한 판단에서, ‘집회’를 「특정 또는 불특정 다수인이 공동의 의견을 형성하여 이를 대외적으로 표명할 목적 아래 일시적으로 일정한 장소에 모이는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제가 법률적 판단을 내릴 위치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님이 보시기엔 저런 행위가, 상식적으로 시위에 해당한다고 판단됩니까? 불특정 다수인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가할 의도가 있어 보입니까? … 뭐 어차피 법정에서 가려질 문제지만,

물론 현재 경찰은 여러명의 릴레이 시위나, 20m 안에 동일한 목적의 사람들이 늘어선 인간띠 잇기는 1인 시위가 아니라고 판단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경찰의 지침일 뿐입니다. 1인 시위자 간의 간격등에 대해선 아직 이에 대한 판례 규정이 나온 적 없습니다.

오히려 하급심 판례(울산지법 2008.6.10. 선고 2008고정204 판결 : 항소【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각공2008하,1307])에서는 “그 주위에 모이기만 하고 전단지를 배포한다든지 구호를 외친 경우가 아니면 집시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대답이 나오겠네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법의 집행에는 신중해야 합니다.”

대화하지 않을 거면, 블로그 하지 마세요

다시 한번 말합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일방적인 홍보 멘트나 들으려고 블로그에 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글로 아까운 블로거뉴스 베스트글 자리 하나 낭비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소통의 의지가 없다면, 공식적인 홍보 글이나 올릴거면 블로그 하지 마세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당신이 알고 있는 유용한 정보, 그 정보를 믿을수 있게 해주는 당신의 솔직함, 그리고 그 정보를 통한 대화에서 얻을 수 있는 교감이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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