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개념 정리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은 것을 돌려주어야 하며 많이 맡은 사람은 더 많은 것을 내어놓아야 한다
– 누가 복음, 12장 48절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용어가 씌여지게 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역사적으론 19세기초 프랑스 작가 ‘가스통 피에르 마르크’가 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사회적 의무를 강조하면서 처음 쓴 것으로 알려져있다. 또한 노벨상 수상 작가인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에도 자주 등장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지배계급의 사회적 책무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온다.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의 2천년을 지탱해준 힘으로 지목하는 것도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이덕일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던 원동력으로 지목하는 것도 바로 신라 지배계급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왕족과 귀족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례(독일의 만프레드 폰 리흐토벤뿐만 아니라,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도 군대 운전사…-_-;로 복무했다는 것은 유명하다)야 두말할 것도 없고- 지금 미국을 이끌어가고 있는 힘의 원천을 카네기, 록펠러, 빌 게이츠등으로 대표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원칙에 입각한 기부 문화에서 찾는 사람도 많다.

▲ 故 유일한 회장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이다. 단지 그 관리를 개인이 할 뿐이다
– 유일한, 유한양행의 창업자

한국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자고로 지배계급이 자신의 이익만을 탐하는 사회는 결코 오래가지 못했다. 반면 역사가 오래 갔던 나라는 지배 계급의 원칙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관철됐던 사회라고 봐도 틀리지 않다. 자고로 민심을 얻지 못한 지배 계끕이 다스리는 사회가 오래 갈리가 없지 않은가.

가까이는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과 독립운동을 했던 많은 사람들을 비롯, 경주 최부자 가문이나 초대 부통령이었던 우당 이회영 가문,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최부자 가문의 육연이나 행동지침 여섯가지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을 다시 되새겨보게 만드는 좋은 문장이다. (관련글_경주 최부자)

▲ 앤드류 카네기

통장에 많은 돈을 남기고 죽은 사람처럼 치욕적인 인생은 없다. 재물은 남을 위해 사용될 때 더욱 빛을 발한다.
– 앤드류 카네기

노블레스 오빌리주는 구체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의 솔선 수범’과 ‘부의 사회적 환원’으로 나타난다. 어려운 상황에서의 솔선수범은 바로 ‘자기 한몸 챙기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로마는 포에니 전쟁 기간 16년동안 최고 지도자인 집정권의 전사자 수만해도 13명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 건국 이후 500년동안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1/15로 급격히 줄어든 것을 전투에서 귀족들이 많이 희생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부의 사회적 환원은 경주 최부자 가문의 행동지침중 하나인 ‘사방 백리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하라’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듯 하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부자들의 기부나 사회참여가 활발한 편으로, 특히 미국은 카네기(5억달러), 록펠러(3억 5천만달러), 포드(5억달러), 빌 게이츠(300억달러)등 그냥 부자들의 기부 문화가 미덕으로 자리잡고 있는 편이다. 특히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추진한 상속세 폐지 시도에 조지 소로스, 데이비드 록펠러, 빌 게이츠등 천문학적 부자들이 조직적으로 반대하고 나선 것은 유명한 일이다.

여기에서 볼 수 있듯, 노블레스 오빌르주는 지배계급의 ‘사회적 책무’를 의미한다. 굳이 진보와 보수로 나누자면 현 시대에선 보수의 입장에 서 있는 원칙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실은 그냥 ‘지배계급’의 사회적 책무-라고 부르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 드래곤 라자에서 “왕이란 등을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라는 후치의 말도, 바로 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가리킨다고 봐도 그닥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부자일수록 사회에 대한 책임을 의식해야 한다. 한국의 부자들이 그렇지 못해 비난을 받고 있다면 불행한 일이다.
– 테드 터너, CNN 창업자

그렇다면 이런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어떤 구속력을 가지는 것일까? 아니면 원하면 지켜도 그만이고 싫으면 버려도 괜찮은 그런 선택사항에 불과한 걸까? 당연히 어떤 법적 구속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 자고로 법을 어기지 않으면 아무거나 맘대로 해도 괜찮다는 규칙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_-;

…권한이 있는 사람은 그만큼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 그렇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어떤 법적 권한을 가진 사람에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사회적 책무는 윤리 차원의 문제다. 그리고 그 윤리를 지킴으로서 그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생겨나게 된다. 당신이라면 ‘부하 직원과 복도에서 뽀뽀를 해대는 직장 상사’나 ‘회사가 망하게 생겼을때 혼자 살겠다는 사장’을 과연 사장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그렇게따지면 6,25 전쟁당시 서울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라디오 방송을 틀어놓고 남쪽으로 도망간 이승만도 결코 욕을 먹을 이유가 없다. 그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가장 적절한 판단을 내렸을 뿐이다.(부적절한 사례라서 삭제합니다. 이건 노블이고 뭐고 그냥 뻘짓이었네요..)

▲ 칼레의 시민들

영국왕 에드워드3세는 시민 대표 6명에게만 책임을 묻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맨발에 홑옷만 걸치고, 목에는 밧줄을 건 채 성문 열쇠를 들고 와서 교수형을 받으라는 것이다.

도시는 불안에 떨었다. 누가 갈 것인가. 그 때 한 사람이 나섰다. 칼레에서 가장 부자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였다. 이어 법률가와 사업가 등이 목숨을 내놓겠다며 자원했다. 모두 칼레의 지도자이고 부유한 귀족이며 당시 삶의 절정을 구가하던 사람들이었다.

또 하나, 이 개념이 과연 ‘지배계급의 허영심’을 인정해주는 대신 ‘사회적 봉사를 요구’하는 데서 생겨난 개념일까? 앞뒤가 잘못됐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함으로써 신뢰와 존경을 얻게되는 것이지, 이 개념 자체가 ‘니가 이만큼 해주면 나도 이만큼 해줄께-‘에서 생겨난 개념이 아니다. 애시당초 어떤 댓가를 바라고 시작한다면 그것은 윤리에 해당하지 않는다. 윤리는 함께 지켜야할 규칙임과 동시에 자신의 마음에 내면화한 규범이다.

…뭐, 어떤 경제학자들은 모든 것을 경제학적 모델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하긴 하지만, 사람이 내리는 어떤 ‘결단의 순간’이나 희생을 각오하는 순간까지도 경제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그건 그 주장을 하는 몇몇 경제학자들의 오만에 불과하다.

그나저나… 이 얘기는 왜 쓸데없이 여기까지 흘러와야만 하는 걸까. 내가 보기엔 목수정은 목수정대로, 정명훈은 정명훈대로 잘한 것 별로 없어보인다. 그 시간에 안될걸 짐작해놓고 찾아간 목수정이나, 이것저것 싫은 소리 해댄 정명훈이나…어쨌든 그 사건과는 별개로(…그러니 목수정-정명훈 사건에 대한 리플은 달지말아주시길 부탁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개념 정리나 잠깐 해본다.

한줄 요약 하자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지배 계급의 용기와 솔선수범’에서 출발해, 현재는 ‘지배 계급(상류층)의 사회적 책무’라는 의미로 씌이고 있으며, 그걸 실행하는 거야 자기 맘이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는 사회는 그만한 댓가를 치뤄야만 한다는 것.

* 왠지 정리하다보니 저야말로 보수주의자가 된 듯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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