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의 자존심, 원혜영의 자존심

1.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했던 김용철 변호사가 책을 냈다.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이다. 이 책에 대한 소갯글에서, 삼성 일가가 여는 파티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봤다. 삼성 일가가 여는 파티에는 다양한 연예인들이 초청된다고 한다. 가수의 경우 보통 2~3곡을 부르고 3000만원쯤 받아간다. 이 파티에 초청을 거절한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딱 한 명 예외가 있었다.

…바로, 가수 나훈아다. 나훈아가 삼성가의 파티 초청을 거절하면서 한 말은 이렇다고 한다.

나는 대중 예술가다.
따라서 내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산 대중 앞에서만 공연하겠다.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공연장 표를 끊어라.

이 이야기를 듣는데, 뭔가 속에서 울컥 한다.
이 아저씨, 진짜 레전드급이구나.

2. 오늘 다음뷰에 글을 올리고 살펴보는데, 같은 미디어 카테고리에 민주당 원혜영 의원이 올린 글을 봤다. 제목이 ‘저에 대한 관심과 격려에 감사드립니다‘라기에 왠 자화자찬인가 싶어서 클릭했다. 뭐냐 이건, 전셋값이 없어서 동분서주 했단다. 뭔소리인가 싶어서 살펴보니 진짜다. 집주인이 전셋값 올려달래서, 그 돈 마련하지 못해서 잠시 분주했었다고.

…내가 알기론, 한때 풀무원 창업자였던 사람인데…(그래서 한때, 이 사람이 배두나 아빠인 것으로 착각한 적도 있었다.)

이 사람도 알고보니 김장훈-과다. 기부 중독자…랄까. 풀무원 퇴직 하면서 받은 돈 죄다 기부했단다. 어머니 장례식 치르며 받은 돈도 죄다 기부했단다. 그 밖에도 돈 생기면 죄다 기부하는 편이라고 한다. 차가 두 대 있는데 자기 차는 2004년식 그렌저, 안사람 차는 2002년식… 클릭이다.

기부하는 이유는 아버지 때문. 어릴 적 소원이 ‘식구들끼리만 밥을 먹어보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아버지가 밥 먹을 때마다, 다른 노숙자나 전쟁고아들을 데려다가 함께 밥을 먹였다고. 그런데 나이드니 그 사람들이 자꾸 생각나서, 기부를 안해야지 하다가도 자꾸 하게 된다고.

3. 나훈아가 지킨 것은 쟁이로서의 자존심이다. 나훈아 이야기를 들으며 울컥했던 것은, 그 한마디로 다른 딴따라- 또는 쟁이들의 자존심까지 함께 지켜줬기 때문이다. 돈 있는 사람이 부르면 부르는 대로 오고, 가면 가라는 대로 갈 수 밖에 없는 쌈마이 딴따라 인생. 그 인생들의 자존심을 지켜줬기 때문이다.

…봐라, 우리에게도 돈 주고 살 수 없는 자존심이 있다고, 우린 니네 맘대로 할 수 있는 사람들 아니라고-

원혜영의 아버지가 원혜영에게 가르쳤던 것도 그것이 아닐까. 인간에게는 자존심이 있다고.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거지들에게 밥을 그냥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집 밖에다 내놓고 밥을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아버지는 그 아이들을, 자기 아이들과 똑같은 자리로 불렀다.

지금 아무리 비루한 모습을 하고 있어도 똑같은 사람이라고, 사람이 혼자 사는 것 아니라고. 같이 먹어야 배부르고 같이 웃어야 행복한 거지, 나만 배부르고 나만 웃는다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고. … 원혜영의 아버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 까.

4. 인정한다. 우리는 돈 앞에 약하고 권력 앞에 비굴해진다. 그게 인생이고, 우리 같은 사람들이다. 노래 두 세곡 부르면 3천만원 준다는데 안 갈 사람이 어디 있으며, 거지들에게 동냥 주는데 같은 자리로 불러들일 이유도 없다. 그게 뭐 잘못됐는가.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거 아닌가. 내가 뭐 잘났다고 이리저리 다치면서 싸워야만 할까.

…그런데 가끔은, 어딘가에서 툭- 근데 그거 아니거든- 하면서 튀어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냥 목청 높여서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난 이렇게 싸우니까 잘난 사람임! 하면서 젠체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살면서,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 하나 지키면서 사는 것 뿐인데… 사람에게 힘이 되고, 용기가 된다.

참, 이상하지. 알고보면 가지고 있는 것 하나 없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에게 없는 걸로 우리는, 위로받고, 보듬으며, 마음에 쌓인 상처를 달랜다. 당신들이 그냥 이야기한 한 마디에, 그냥 행한 행동에, 내가 부끄럽지 않게 된다. … 실은 우리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맞아. 실은, 우리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조금 고맙다. 차마 많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래도, 조금은, 고맙다.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줘서, 자존심을 지켜줘서.

삼성을 생각한다 –
김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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