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세 잡스가 73세 이병철을 만나 무슨 말을 했을까?

때가 때인지라 이런 류의 기사가 흔해진 세상이 되었지만, 간만에 진심으로 손발이 오그러드는 기사를 만났습니다. 문화일보의 「28세 스티브 잡스, 73세 湖巖에 길을 묻다」란 기사입니다. 28살의 스티브 잡스가, 73세의 호암 이병철을 만나 ‘경영자로서의 길’을 물었다고 합니다.

이 기사가 풍기고 있는 분위기는 분명합니다. 이 기사 안에는 ‘세상 물정 모르는 콧대 높은 철부지’가, ‘동양의 어느 현자를 찾아가 인생의 지혜를 묻는다’라는 식의 스토리가 설정되어 있습니다. 잡스에 대해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새파란 젊은 사업가’, ‘참담한 실패로 인해’라는 식으로 묘사한 반면, 이병철에 대해 ‘삼성과 국가의 명운을 걸고’, ‘필생의 도전’, ‘세계적인 사업가’라는 묘사를 붙이고 있는데서 그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사는 다음과 같이 기사를 끝맺고 있습니다.

삼성전기 이형도 부회장은 “(잡스가 재기에 성공한 과정을)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호암이 잡스에게 전했던 3대 경영철학이 향후 애플의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반영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회고했다.

아주 그냥 손발이 오그라 들어서 더 할 말이 없을 지경입니다. 그런데 이 기사에는 중요한 것이 하나 빠져있습니다. 바로, 스티브 잡스-가 왜 한국에 와서 왜 이병철을 만났는가-하는 것입니다. … 솔직히 이때 스티브 잡스가 한국에 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기에, 놀랍기는 합니다만-

1983년 11월이라면, 애플의 야심작 LISA가 실패하고 맥킨토시로 전향할 무렵입니다(1983년 10월 발표, 1984년 1월 출시). 바로 이 시기에, 잡스는 왜 굉장히 낯선 이 나라까지 와야 했을까요? 게다가 기사와는 달리… 제가 알기론 삼성은, 당시, 별로 세계적인 기업이 아니었습니다..-_-^ (지금 중국 중소 가전업체 보는 느낌 정도라 생각하시면 될 듯)

게다가 당시 이병철이 도전에 나섰다는 회사는 삼성반도체. 당시에 미/일에 이어 64K D램을 개발한(83년 11월 개발 완료, 공장은 84년 3월 완공), 반도체 신생업체나 마찬가지 취급을 받던 회사. … 이상하잖아요? -_-a

▲ 문화일보 기자에게 실패한 기계 취급을 받은 불쌍한 맥킨토시
잡스가 LISA를 팔러 왔을리는 없고, 맥은 막 발표됐던 상황, 삼성은 공장도 없었고… 대체 왜 왔을까요? 맥에 들어갈 부품을 싸게 공급받으러 왔을 가능성은 낮고- 맥킨토시를 자랑했다는 상황으로 봤을 때, 예상할 수 있는 결론은 제가 보기엔 하나입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잡스가 한국에 맥킨토시-_-를 팔러 왔다는 것…
그리고 그런 젊은 친구에게 이 할아버지는 물건은 안사고 “허허..우선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확인하고, 인재를 중시하며, 다른 회사와의 공존공영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네” 하면서 돌려보냈다는 것. 안그래도 회사에서 궁지에 몰려있던 잡스는 물건도 못팔고 입술을 씹으며 돌아갔을테고, 그로 인해 지금까지 항상 한국에 대한 지원은 한 템포 늦게 나오게됐다는…(응?)

뭐, 당연히, 근거없는 상상입니다. ^^ 그래도 최소한, 그런 이병철의 이야기에 “잡스가 뒤늦게 가르침을 깨달아” 애플에 돌아와 그의 가르침대로 애플을 일으켜 세웠다-라는 근거없는 망상 보다는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안 그런가요?

* 그리고 문화일보 이관범/김만용 기자님(frog72@munhwa.com), 글 쓸 때 최소한 사실 관계는 확인하고 쓰자구요.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난 것은 1984년이 아니라 1985년입니다.

* 추가 정보. 그리고 나서 삼성에서 애플에 모니터와 디스크 드라이브…를 납품..했다고 하네요. -_-; 그냥 비지니스 미팅이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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