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최홍이 그리고 김상곤

1. 정말 농담처럼 던진 이야기였다. 지난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 후보와의 간담회 때, 내가 던진 이야기는. 무상 급식 예산이 삭감되었을 때 기분이 어땠냐고.

그가 대답한다. 참담했다고. 그래서 다시 얘기했다. 그 기사 보셨냐고. 그때 예산 삭감했던 교육위원들, 지금은 다 ‘그랬던 적이 있었나요? 허허허’하고 있다고. 간담회장에 웃음이 터진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말문을 연다.

“교육위원님들이 예산을 모두 삭감한 것은 아닙니다…”

쿵, 하고 머리에 뭔가 한대 맞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50% 삭감된 것에 분노하고 있는데, 그는 50%라도 남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비난하며 농담하려 했는데, 그는 남은 것을 다독이고 있었다. … 솔직히 진보라는 옷을 입고 있는 사람 가운데, 이런 사람은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이구나. 그날 참석한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이 사람, 참 다른 사람이구나. 남을 깍아 자기를 취하려는 사람이 아니구나. 선동하려는 사람이 아니구나. 자신이 어떤 것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구나…

2. 얼마전 집에 날아온 선거 공보물을 뒤적이고 있는데, 교육위원 후보중에 최홍이란 사람이 보인다. 솔직히 교육위원은, 뽑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왠지 낯익은 이름이라 언제 들어봤을까-하고 생각하는데, 뒷면에 신경숙 작가가 썼던 글이 보인다. 소설 『외딴방』에 실린 글이었다. … 아, 이 선생님이 이 선생님이구나… 하고 깨닫는다.

…어느 순간 마음 속에서 부르는 이름이, 이 사람이 아닌 이 선생님으로 바뀌었다.

학교에 나가지 않으면 나는 5시에 컨베이어 앞을 떠날 수 없을 것이다. 선생님은 버스 정류장에서 내일은 꼭 학교에 나오라고 한다.

“우선 학교에 나와서 얘기하자.”

버스에 올라탄 선생님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선생님의 손 뒤로 공장 굴뚝이 울뚝울뚝하다. 처음으로 공장 속에서 사람을 만난 것 같다. 버스가 떠난 자리에 열일곱의 나, 우두커니 서있다. 선생님의 손길이 남아 있는 내 어깨를 내 손으로 만져보며.

다음날 교무실로 나를 부른 선생님은 내게 반성문을 써 오라한다.

“하고 싶은 말 다 써서 사흘 후에 가져와 봐.”

반성문을 쓰기 위해 학교앞 문방구에서 대학 노트를 한 권 산다. 지난날, 노조 지부장에게 왜 외사촌과 내가 학교에 가야만 하는가를 뭐라구 뭐라구 적었듯이 이젠 선생님에게 학교 가기 싫은 이유를 뭐라구 뭐라구 적는데 어느 참에서 마음속의 이야기들이 왈칵 쏟아져 나온다. 열일곱의 나, 쓴다. 내가 생각한 도시 생활이란 이런 것이 아니었으며, 내가 생각한 학교 생활도 이런 것이 아니었다고.

나는 주산 놓기도 싫고 부기책도 싫으며 지금은 오로지 마음속에 남동생 생각뿐으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서 그 애와 함께 살고 싶다고. 반성문은 노트 삼분의 일은 되게 길어진다.

반성문을 다 읽은 선생님이 말한다.

“너 소설을 써 보는 게 어떻겠냐?”

내게 떨어진 소설이라는 말. 그때 처음 들었다. 소설을 써 보라는 말.

그는 다시 말한다.

“주산 놓기 싫으면 안 놓아도 좋다. 학교에만 나와. 내가 다른 선생들에게 다 말해 놓겠어. 뭘 하든 니가 하고 싶은 걸 하거라. 대신 학교는 빠지지 말아야 돼.”

그는 내게 한 권의 책을 건네준다.

“내가 요즘 최고로 잘 읽은 소설이다.”

표지에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라고 씌어 있다. 교실로 돌아와 책을 펼쳐본다. 뫼비우스의 띠 수학담당 교사가 교실로 들어갔다. 학생들은 그의 손에 책이 들려 있지 않은 것을 보았다. 학생들은 교사를 신뢰했다. 이 학교에서 학생들이 신뢰하는 유일한 교사였다.

최홍이 선생님. 이후 나는 그 선생님을 보러 학교에 간다. 어색한 이향으로 마음에 가둬졌던 그리움들이 최홍이 선생님을 향해 방향을 돌린다. 열일곱의 나, 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가지고 다닌다. 어디서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읽는다. 다 외울 지경이다. 희재언니가 무슨 책이냐고 묻는다.

“소설책.”

소설책? 한번 반문해 볼 뿐 관심 없다는 듯이 희재언니가 고갤 떨군다. 최홍이 선생님이 마음 안으로 가득 들어찬다. 정말 주산을 놓지 않아도 주산 선생님은 그냥 지나간다. 부기 노트에 대차대조표를 그리지 않아도 부기 선생은 탓하지 않는다. 주산 시간에 국어 노트 뒷장을 펴고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옮겨 본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쟁이였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 어머니, 영호, 영희, 그리고 나를 포함한 다섯 식구의 모든 것을 걸고 그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언제나 말할 수 있다. 나의 ‘모든 것’이라는 표현에는 ‘다섯 식구의 목숨’이 포함되어 있다.

……이제 열일곱의 나는 컨베이어 위에서도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옮기고 있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고.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고.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고.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도 같았다,고.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고. 그런데도 어머니는 모든 것을 잘 참았다,고.

그가 소설책을 써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말 대신 시를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으면 나는 시인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랬었다. 나는 꿈이 필요했었다. 내가 학교에 가기 위해서, 큰 오빠의 가발을 담담하게 빗질하기 위해서, 공장 굴뚝의 연기를 참아 낼 수 있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 신경숙, 외딴방 중에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 신경숙을 얼마나 부러워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지금 여기 있었다. 서울시 교육위원 후보란 이름을 달고. 괜히 반가웠다.

3. 어제 만난 한 친구는 자기는 투표하지 않겠다고 했다. 투표할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부탁했다. 교육감 선거를 위해서라도 꼭 투표해 달라고. 사실 이상하다. 교육감 투표를 꼭 해야할 사람은 지금 학교에 다니는데, 그 아이들에겐 투표권이 없다. 하지만 누가 교육감에 뽑히느냐에 따라, 가장 많이 바뀌는 것은 그 아이들의 삶이다.

…그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꼭 투표해 달라고.
엠비정권 심판? 이번 투표가 지나도 그는 자신의 태도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차갑게 얘기하자면, 설사 투표로 심판한다고 한들, 그 다음에 올 당신들이 잘한다고도 말 못하겠다. 정치인들은 아직까지 누구도 반성하지 않았다. 여전히 남탓만 한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무슨 죄인가.
…그러니까, 꼭 투표해 달라고.
사실 아이들을 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원칙을 지키며 살면 된다. 잘하는 것이 있으면 잘하도록 도와주고, 하지 말아야할 것은 하지 말도록 말리면 된다. 그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아이들이 믿을 수 있는 교사가, 교육감이 현장을 바꾼다. … 나는 저 두사람에게서, 다른 세상을 봤다.
4. 물론 두 사람이 완벽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내에겐 원망의 대상일지도 모르고, 속썩이는 자식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월급 적다고 타박당하는 가장일수도 있고, 속상해 포장마차에서 술 한잔 마시며 신세한탄을 늘어놓기도 할거다. 그렇지만 이들은, 서두르지 않는다. 그저 원칙을 지키고, 봐야할 것을 보고, 해야할 일을 한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이, 때론 세상을 바뀐다.
한 아이가 소설가가 되고픈 꿈을 꾸게 한다.
…솔직히 나는 지금도, 신경숙이 부럽다.
정말 내게도 이런 선생님이 한분 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누구에게나 꿈은 필요하니까. 참아내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이 지랄맞은 세상을 견뎌내기 위해서.
그래서 신경숙이 부러웠다. 꿈을 줄 사람이 있어서. 당신에게 소설을 써보지 않겠냐고 권했던 사람이 있어서.
꿈이 필요했던 것은, 신경숙만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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