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는 왜 블로거를 폄하했을까?

조선일보 방사장의 신년사 때문에 조금 시끄럽습니다. 그가 신년사에서 인용한 스티브 잡스의 말 때문입니다. 그 부분은 아래와 같습니다(출처).

사원 여러분.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민주주의에는 자유롭고 건강한 언론이 중요하다. 뉴스를 모으고 편집하는 조직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나는 이 나라가 블로거들의 세상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것은 신문 업계 종사자의 말이 아닙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가 남긴 말입니다. 단편적인 정보의 파편이 아니라 정보의 맥락과 중요도를 짚어주는 언론의 고유 기능을 평가한 것입니다.

이 내용은 2010년 6월 21일, 조선Biz의 “애플의 스티브 잡스, 블로거를 비난한 이유“에 실린 내용입니다. 해당 글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잡스는 “미국이 블로거들의 나라로 쇠퇴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I don’t want to see us descend into a nation of bloggers. 월스트리트저널 기사의 원문 인용)”고 했습니다. 발언의 이면에는 블로거의 글들은 불확실하고 무책임하다는 뉘앙스가 있습니다.

잡스는 곧이어, “우리는 예전보다 지금 더욱, (신문과 같이) 편집된 시각이 필요하다. 우리가 신문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신문들이 (자신들의 기사 콘텐츠에 대해) 대가를 지불받는 방법을 찾아주는 것이다. 나는 그 일을 할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의 이런 발언은 “애플의 태블릿PC 아이패드가 콘텐츠 창조자(신문·잡지 등을 지칭)의 구세주(savior)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면서 나왔습니다.

위 내용은 김정운 교수가 중앙 선데이의 연재 글에도 이렇게 인용되었습니다(출처).

“민주주의에는 자유롭고 건강한 언론이 중요하다. … 뉴스를 모으고, 편집하는 조직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나는 미국이 블로거들의 세상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편집자가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실제로 방사장의 말은, 김정운 교수의 글에서 가져온 셈입니다. 이 글은 올 띵스 디지털의 연례 컨퍼런스에서 잡스가 한 말로, 원문은 아래와 같습니다(출처).

▲ 1분 50초정도부터 잡스의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One of my beliefs, very strongly, is that any democracy depends on a free, healthy press…. Some of these papers — news and editorial gathering organizations — are really important. I don’t want to see us descend into a nation of bloggers myself. I think we need editorial more than ever right now.”

그리고 이 뒤에, 잡스는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Anything that we can do to help the New York Times, Washington Post, Wall Street Journal and other news gathering organizations find new ways of expression so they can afford to get paid, so they can afford to keep their news gathering editorial operations in tact, I’m all for. What we have to do is figure out a way to get people to start paying for this hard earned content.

So [the tablet industry] provides us an opportunity to offer something more than just a web page and to start charging something for that. I’m trying to get these folks to take more aggressive postures than what they traditionally charged for print because they don’t have the expenses of printing, they don’t have the expenses of delivery and to charge a reasonable price and go for volume. I think people are willing to pay for content.”

요약하자면, 아이패드를 통해 기성 신문들은 다시 살아날 기회를 얻게 되었으니, 좀 값싸게 콘텐츠를 공급해 달라. 그럼 사람들이 지갑을 열것이다-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애시당초 질문이 “아이패드가 언론을 살릴 수 있을 것인가?”였고, 그에 대한 대답이 “충분히 가능하다. 문제는 값이다. 좀 적극적인 자세로 나와달라”라는 것입니다.

…좀 더 요약하면, 값만 내리면 우리가 팔아주겠다-입니다. 예전에 아이튠즈 스토어를 통해 음악을 팔기 시작할 때와 똑같은 입장이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습니다. 물론 이런 발언은, 아무래도 블로거를 폄하한 혐의가 짙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블로거들에게 좀 까였습니다. -_-;

유감스럽지만, 잡스는 이 다음 있었던 대담에서도, 블로거는 저널리스트가 아니다-라는 시선을 드러냈습니다(링크). 그리고, 그렇게 불편한 마음을 갖게 된 것은, 다들 아시다시피, 며칠 후 발표될 아이폰4를 먼저 공개한 기즈모도 블로그의 행동 때문이었구요. 재미있는 것은, 나중에 드러났지만, 스티브 잡스가 원래는 기즈모도 블로그의 열렬한 팬이었다는 사실 입니다.

사실 딱히 반박할 말은 아닙니다. 훈련 받은 전문 저널리스트들의 역할은 과거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부분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방사장 말 그대로, “단편적인 정보의 파편이 아니라 정보의 맥락과 중요도를 짚어주는 언론의 고유 기능”은 지금도 매우 중요합니다. … 그것이 제대로 기능하고만 있다면 말이죠.

하지만 방사장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잡스의 저 말은, 결국 종이 언론을 애플 생태계로 끌어들이기 위해 곁들인 호객 행위였다는 것을. 종이 대신 앱을 통해 콘텐츠를 파는 대신에, 신문과 잡지 업계가 애플 생태계에 갇혀버리도록 만들기 위한 말이었다는 것을. 종이 신문이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러니 우리가 대신 팔아주겠다. 값 좀 싸게 매겨라-라는 말을 하기 위한 공치사.

그럼 딱 그만큼만 알아들으면 됩니다. 굳이 호들갑 떨면서 ‘봐라, 잡스도 블로그보다 언론을 더 높이 평가했다’라고 말할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애시당초 잡스가 블로그를 열심히 읽었다는 기록은 있어도, 신문을 열심히 읽었다는 얘기는 없으니까요. 아니, 애시당초 언론이라면 끔찍하게 싫어한 이가 또 잡스였다는 것, 알고 계시겠죠?

…뭐, 신년사는 잘 읽었습니다. 부디 거기서 말한대로, 진실 보도에 꼭 좀 힘 좀 써주시기 바랍니다. 왠지 당신이 알고 있는 ‘진실’이란 단어의 의미와,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이란 단어의 의미가 참 많이 다른 것 같아서 좀 그렇긴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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