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20세기 소년, 속물이 되지 않으려는 잉여의 이야기

1. ’20세기 소년’, 우리가 아는 그 만화책이 아닙니다. 소설입니다. 한국 작가가 썼습니다. ‘제5회 디지털 작가상’을 받은 소설이라고 합니다. 음, 실은 어쩌다 읽게 됐습니다. 리브로피아 앱을 뷰3에 등록하고 뭔가 테스트 해보려는데, 전자책 도서관 신간 목록에 들어있어서 읽게된 소설. 사실 끝까지 읽을 생각은 없었고 대충 앱 테스트용으로만 보려고 했는데, 그만 끝까지 정신없이 읽었습니다. 재미있냐고요? 예, 재미있습니다. … 그렇게 길지도 않구요.

그런데 읽고나니, 예전에 적어뒀던 이 말이 생각납니다.

아마, 미래는 어른들이 지배하는 세계인 것 같다.
그럼에도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너희들에게는 미래가 있다.”
실은 이 말처럼 악의가 가득 찬 위험천만한 말도 없다.
결국 너희들도 이제, 우리 세계에 동참하라는
감언이설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철로를 깔아 놓았으니 계속 앞만 향해서 달리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이제 너희 멋대로 행동하도록 가만있지 않겠다는 악의가 느껴진다.

…적어도 그들이 자신도 모르게 깔린 철로의 끝에
전 세계의 미래가 있다고 착각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 영화 <밝은 미래>의 감독 구로사와 키요시의 ‘감독 노트’ 중

그러니까 세상은 설국 열차. 우리는 그 열차의 탑승객. 자신들이 세상의 규칙을 만들어놓고, ‘이게 원래 규칙이니’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살아라’라고 말하는 것이 이 세상. 네가 속해 있는 곳은 꼬리, 내가 있는 곳은 머리. 머리에 오고 싶다면 그저 머리가 필요한 존재가 될 것. 누가 필요한 존재인지는 머리 맘대로 결정함.

2. 백욱인 아저씨께서 논문 큐레이션집을 내셨습니다. ‘속물과 잉여’라는, 여러 저자의 읽을만한 논문을 모은 책입니다. 이 책의 키워드가 제목인 ‘속물과 잉여’입니다. 여기서 ‘속물’은 ‘체제 내에 포섭되어 축적하고 소비하는 주체’입니다. 잉여는 ‘속물 지위를 얻고자 노력했으나 실패한 자들 가운데 속물되기를 유예하고 있는 존재’입니다. 다른 말로 ‘속물’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고, ‘잉여’는 이런 속물이 되고 싶은 ‘속물 워너비’입니다. 그리고 인터넷은 이런 젊은 잉여들의 시간과 활동을 흡수해서 이윤을 창출하는 서비스가 되어버렸습니다.

자신이 죽을 방법조차 인터넷에 검색해야하는 잉여들.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무엇이든 네이버 지식인에 의존하는 사람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해 끊임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봐야 하는 존재들. 얼굴/몸매가 조금만 예뻐진다면, 의사/판사/변호사가 된다면, 연예인이나 유명 쇼핑몰 사장이 된다면, 대기업 직원이나 공무원이 된다면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믿는 존재들.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하고, 성형을 하고, 몸매를 관리하고, 스펙을 쌓는 사람들. 인터넷 미디어와 포털 사이트가 만들어내는 공포, 클릭을 유도하기 위한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하면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그렇게 속물이 되고 싶은 잉여가 넘쳐나는 세상에 대해, 책에서는 이렇게 딴지를 겁니다.

“어떤 분야에서나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복근이 필요하다는 걸 호제는 잘 알고 있었다.
음식 잘하는 요리사는 그냥 요리사에 불과하다.
하지만 복근 있는 요리사는 영웅이 될 수 있다.
요리하는 데 복근이 무슨 상관이냐고?
그게 바로 내가묻고 싶은말이다”

하지만 소설속 주인공이 보기에 이 모든 것은 Y2K 버그나 다름없는 사기. 그래서 재미삼아 작은 저항을 시작하고, 그렇게 시작된 일들에 이런 저런 사람들이 꼬여들면서, 엄청나게 크게 번집니다. 그리곤 묻습니다. 21세기가 시작됐는데, 왜 세상은 멋진 곳이 되지 않았냐고. 니네가 하라는 대로 다하며 사는데, 우리는 왜 요 모양 요 꼴이냐고.

20세기 소년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Y2K는 잔뜩 겁만 주고 사라졌어
2000년이 되면 금융이 마비되고, 항공 사고가 나고
없던 고지서가 날아오고, 사무실마다 엉뚱한 팩스로 넘쳐날 거라고
잔뜩 겁을 줬지만-

결국 그런 대혼란은 없었어
밀레니엄버그는 바로 우릴 두고 한 말이지.

3. 책을 읽는데 무라카미 류가 많이 생각납니다. ‘세상에 버림 받은 자들의 복수’라는 면에선 ‘코인 로커 베이비스’가,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와 체재에 대한 장난 같은 저항이란 면에선 ’69’이. 이 두 종류의 틀은 알고보면 흔한 것이라- 달리 뭐라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야기들과는 달리, 의외로 같은 세대의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결국 훈장질을 한다고 느낄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내 이야기다- 싶은 부분들이 있어서, 재밌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뭐, 그런 훈장질도 알고보면 평범한 이야기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

지나야 잘 들어.
앞으로 중요한 건 스스로 판단하는 거야.
누구의 말도 듣지 마.
모든 건 스스로 판단해. 어떤 충고도 받지 마.
의심하는 것을 의심해야해.
어떤 상황이 와도 중립을 지키는 거야.

그런까 ‘이러면 성공한다’라는 말은 ‘이러지 않으면 실패한다. 경쟁에서 낙오한다’라는 말이나 같다는 것. 하지만 그 말이 다 진실은 아니고, 많은 부분 당신을 겁줘서 뭔가를 팔아먹으려는 것에 불과하니, 쉽게 믿지 말라는 것. 스스로 생각하는 것. 이야기가 갑자기 거창해지는데요- 아무튼 재미있습니다. 결말은 갑자기 산으로 가는 느낌이 있지만(…데우스 엑스 마키나?), 너무 신경쓰지 마시고 편하게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P.S 그런데 써놓고 보니 소설 주제가 잡스가 한 말이랑 뭔가 비슷…-_-;

속물과 잉여 –
김상민 외 지음, 백욱인 엮음/지식공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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